정약전, 정약용 두 형제 이야기
‘정약전’이란 조선 시대의 인물을 알게 된 건 겨우 몇 년 전이었어요. 『현산어보』『자산어보』라고도 함라는 책 덕분이었죠. 『현산어보』는 바다에 사는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바다 생물학 책으로 꼽히죠. 정약전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직접 물고기도 잡고 배를 갈라 보기도 했대요. 그 당시 점잖은 양반으로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지요. 조선 시대에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이 참 놀라웠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정약전이 ‘정약용’의 형이라는 사실이에요. 정약용은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인물이잖아요? 수원의 화성을 쌓을 때 썼다는 ‘거중기’를 발명했을 뿐 아니라 『목민심서』 같은 이름난 책을 많이 남긴 대학자였지요. 옛말에 “형만 한 아우 없다.”모든 일에 있어 아우가 형만 못하다는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분의 형이라면……. 이런 호기심은 정약전․정약용, 형제 모두에게로 번졌어요.
책장 넘기기
정약전․정약용, 형제의 삶은 많이 닮았어요. 누구보다 새로운 학문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지요. 뒷날 천주교를 알게 된 것도 학문적인 호기심이 컸기 때문이었어요.
형제는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함께 유배죄인을 외딴곳으로 보내 살게 한 벌를 떠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었어요. 1801년, 두 사람은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어느 주막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유배 기간 내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학문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서로 의지했답니다.
『물고기 소년 과학자 되다』(청어람미디어)의 주인공은 정약전이에요. 그는 물과 인연이 많아요. 고향인 경기도 소내 마을에는 집 앞으로 한강이 유유히 흘렀고, 뒷날 유배를 떠난 곳은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섬이었으니까요.
정약전은 아는 것을 직접 해 보는 실험 정신이 강했어요. 이 책에는 신기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정약전이 새로운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는 걸 보여 주는 장면들이죠. 예를 들어, 마당에 사람을 앉혀 놓고 자신은 방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거예요. 방 전체를 깜깜하게 만들고 한 곳에만 구멍을 뚫어 유리를 대고 조금 떨어진 곳에 종이를 두면 바깥 풍경이 종이 위에 그대로 비친대요. 그럼 비친 모습대로 그림을 그리는 거죠. 바로 바늘구멍 사진기렌즈 대신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은 금속판을 댄 초보적인 사진기의 원리를 따라 해 본 거였어요. 또 정약전은 한 번도 보지도 못한 지구의지구를 본떠 만든 모형를 나무로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해요. 북극을 기준으로 경도지도의 세로선와 위도지도의 가로선를 계산해 그려 넣으면 된다나요? 그가 천문학과 수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걸 보여 주는 장면이죠.
정약전은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했어요. 실학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지요. 유배지인 흑산도에서도 뱃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지냈어요. 정약전이 『현산어보』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성격 때문일 거예요. 어보바다 생물의 이름을 적은 책는 그냥 책상에 앉아서 연구만 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정약전은 물고기를 직접 잡고 해부도 하고, 뱃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아주 생생한 어보를 만든 것이지요.
정약용의 이야기는 『다산의 아버님께』(보림)로 읽어 보세요. 제목에서 ‘다산’은 정약용의 호친한 사이에 편하게 부르기 위해 만든 이름이자, 유배지인 강진 땅에서 살았던 초가집(다산 초당)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이 책은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쓰여 있어요.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정약용은 아들이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이에요. 그것도 18년 동안이나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모습……. 그런 까닭에 화려한 날의 정약용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요. 실제로 정약용은 유배를 간 뒤에도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편지를 받은 자식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가슴이 저렸을 거예요. 이 책은 그런 자식들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았어요.
책의 첫 부분은 7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러 떠나는 학유의 설렘으로 시작해요. 그 길을 나서며 학유는 온 집안이 풍비박산사방으로 날아 흩어짐이 나던 시간들을 생생하게 떠올리죠. 그는 아버지가 계신 ‘다산 초당’으로 공부를 하러 가요. 그곳에 가서 아버지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쓰시는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지요.
정약전이 섬에서 뱃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어보를 만든 것처럼 정약용 역시 유배지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최선을 다했답니다.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규모나 양이 매우 큰 책도 대부분 그때 썼어요.
정약전과 정약용은 끝없는 탐구 정신으로 평생을 산 형제예요. 또한 학문을 함께하던 동지목적이나 뜻이 같은 사람이기도 했지요. 정약전은 『현산어보』를 쓰며 정약용에게 의견을 들었고, 정약용은 책을 쓸 때마다 정약전에게 맨 먼저 보였다고 해요. 정약전 속에 정약용이, 정약용 속에 정약전의 숨결이 살아 있다고 해도 좋겠지요?
『물고기 소년 과학자 되다』(전신애 글, 이진우 그림, 청어람미디어 펴냄.절판)
『다산의 아버님께』(안소영 글, 이승민 그림, 보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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