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현실이 되다!
《커졌다!》(서현 글, 그림/사계절/2012년)
아이들은 빨리 크고 싶어 한다.
혼자 걸어 다니며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생겼을 때는 기쁨으로 가득 차지만,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작은 몸 때문에 할 수 없을 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는 키가 안 닿아서 못하는 일들을 어른들은 척척 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주눅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자기도 어른들처럼 빨리 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크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고, 그 번호에 따라서 많은 활동이 이루어진다. 또 이쯤이면 또래 간에 체격도 제법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괴롭히는 모습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아이일수록 ‘크고 싶다’는 욕망은 점점 강렬한 소망이 된다.
이 책은 아이들의 이런 소망을 신나는 상상력으로 풀어낸 그림책이다. 글은 최소한으로 절제되었고, 그림으로 많은 걸 보여준다.
본문의 시작은 ‘나는 작아요’라는 다섯 글자뿐이다. 얼마만큼 작은 지는 그림으로 보여준다. 여자와 남자의 긴 다리가 한 쪽씩 보이고 그 사이에 어른들 다리의 종아리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가 보인다. 아이가 진짜로 그렇게 작을 리는 없다. 아이가 스스로를 얼마나 작게 느끼는지 그 심리를 보여준다. 그러니 ‘나는 작아요’라는 말 외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다음 장을 넘기면 이번엔 ‘얼른 크면 좋겠어요’라며 아이는 희망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림은 키가 크는 데 효과가 있다는 온갖 방법을 보여준다. 우유 마시기, 철봉에 매달리기, 일찍 자기, 잘 먹기, 몸을 잡아당겨 늘이기……. 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현실적인 방법도 있지만 발바닥에 신발을 잔뜩 붙이는 방법, 천장에 매달리는 방법 등 한 번쯤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해 보지는 않는 방법까지 다 동원한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이 다 신통치 않다. 이 모든 방법을 사용하는 아이의 얼굴도 괴롭기만 하다.
아이는 책에서 놀라운 방법을 발견한다.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는 곧 나무가 된다. 발을 땅에 묻고 두 팔을 가지처럼 펴고 햇빛과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것이다.
그러자 아이는, 점 점 점 크고 크고 크고 또 커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버스를 롤로스케이트처럼 밀고 다닐 만큼 커지고,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일 정도로 커진다. 커지는 만큼 금방 배고프고 목도 마르고, 비가 오니까 또 자꾸 자꾸 커진다. 이제 아이는 구름 위까지도 커지고, 마침내 우주에서 별똥별 사탕을 받아먹을 만큼 커진다.
기발한 상상력이다. 나무처럼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이렇게 우주까지 뻗어나갈 줄이야! 키가 작아 주눅 들어 있던 아이들에게 이만큼 신나고 짜릿한 상상은 더 이상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리 신나는 상상이라도 끝없이 계속 될 수는 없는 법! 우주에서도 뭐든지 삼켜대던 아이는 지구까지도 삼켜버리고 그동안 먹었던 모든 걸 다시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모든 걸 토해낼 때마다 아이는 다시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집으로 돌아온다. 크고 싶은 소망을 우주 끝까지 펼칠 순 있어도 삶의 터전인 지구까지 삼켜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것도 신이 나지만, 상상력이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선을 긋는 것 또한 분명하다.
커지고 싶던 아이는 다시 작아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럼 변한 건 없는 게 아니냐 싶을 지도 모른다.
그 답은 앞뒤의 면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앞쪽 면지에는 세 번째 칸에 있는 책을 뽑아 보려하지만 까치발을 하고도 손이 닿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뒤쪽 면지에는 까치발을 하지 않고도 거뜬하게 그 책을 손에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있다. 상상은 드디어 현실이 된 것이다.
너무 작기만 했던 아이, 크고 싶다는 아이의 희망은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신나는 상상력을 통해 극복하고 자라난다. 마침내 책을 뽑아 들고 활짝 웃는 아이처럼 독자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기분 좋은 책이다.
- 《기획회의》336호(2013. 1. 20)에 '2012년 주목할 만한 그림책'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참고로 여기에 실린 그림책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모르는 척 공주』 최숙희, 책읽는곰
2. 『열두 마리 새』 김희경, 창비
3. 『커졌다』 서현 글그림, 사계절
4. 『흰곰』 이미정, 아이세움
5. 『빨간 목도리』 김영미 글, 윤지회 그림, 시공주니어
6. 『동물들의 첫 올림픽』 문종훈 글그림, 웅진주니어
7. 『칭찬 먹으러 가요』 고대영 글, 김영진 그림, 길벗어린이
8. 『춤추고 싶어요』 김대규 글그림, 비룡소
9. 『엄마꼭지연』 최재숙 글, 김홍모 그림, 보림
10. 『수달이 오던 날』 김용안 글, 한병호 그림, 시공주니어
11. 『북극곰 코다』 이루리 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 그림, 북금곰
12. 『마이볼』 유준제, 문학동네
13. 『비 오는 날에』 최성옥 글, 김효은 그림, 파란자전거
14. 『공부는 왜 하나』 조은수 글그림, 해나무
15. ‘일과 사람’ 시리즈(사계절)
16. 『장수탕 선녀님』백희나, 책읽는곰
17. 『매호의 옷감』김해원 지음, 김진이 그림, 창비
18. 『서로를 보다』윤여림 지음, 이유정 그림, 낮은산
19.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노인경, 문학동네
20. 『한양 1770』 정승모 글, 강영지 그림,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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