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물 그림책 두 권
여성 인물을 다룬 그림책 두 권을 봤습니다.
《점동아, 어디 가니? - 당나귀 타고 달린 한국의 첫 여의사 김점동》(길상효 글/이형진 그림/씨드북/2018)
《나, 화가가 되고 싶어! - 화가 윤석남 이야기》(윤여림 글/정현지 그림/웅진주니어/2008)
두 권 모두 다른 인물 그림책들과는 차별되는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먼저 《점동아, 어디 가니?》를 살펴볼게요.
‘그림책다운 글!’
이 책을 보고 제가 가장 먼저 느낀 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점동아, 점동아, 어디 가니?”
하고 묻는 문장을 앞세우고 김점동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김점동이 움직일 때마다
“점동아, 점동아. 어디 가니?”
라는 문장은 반복되고,
이어서 ‘~ 한단다.’ ‘~ 간다.’ ‘~ 할 거다.’ 라는 짧은 문장으로 김점동의 삶을 보여주지요.
짧고 간략하면서도 반복되는 운율이 입에 착 달라붙어 읽는 맛을 줍니다. 또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문장은 김점동의 움직임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점동아, 점동아, 어디 가니?”
라는 문장을 따라 가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김점동의 삶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김점동이 얼마나 바쁘게 살았고, 어떤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또 김점동이 병이 들어 더 이상 어딘가를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는지까지, 마치 옆에서 보는 듯 생생하게 다가오지요.
또 하나,
이 책은 글과 그림이 서로 어우러지며 이야기의 감동을 높여줍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의사에게 몸을 보이지도 못하고 죽어야 했던 금순 엄니의 꽁꽁 묶인 몸은 단순히 죽은 사람을 염습한 모습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몸을 결박당한 채 살아야 했던 쓸쓸한 당시 여인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또한 김점동이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할 때는 김점동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뿐 아니라 김점동을 뒷바라지하며 열심히 일하는 김점동 남편의 삶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또 남편이 폐결핵으로 죽은 뒤 홀로 남은 김점동의 절망감, 또 그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은 그림만으로도 큰 울림을 줍니다.
인물이야기 그림책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글과 그림 모두 그림책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인물의 삶을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점동아, 어디 가니?》가 그림책다운 글의 매력이 넘쳤다면 《나, 화가가 되고 싶어!》는 여성주의 관점이 도드라진 글의 매력이 넘쳐났습니다. 첫 장면의 글만 살짝 살펴보지요.
옛날 옛날에 남자와 여자가 살았어요.
어느 날, 여자는 엄마가 되어 첫째 딸을 낳았어요.
또 둘째 딸을 낳았어요.
아버지가 된 남자가 말했어요.
“셋째는 아들이면 좋을 텐데.”
그러나 셋째도 딸이었어요.
드디어 엄마가 아들을 낳은 날,
아버지는 셋째 딸을.
번쩍 안아 올렸어요.
“남동생이 태어났단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구나.
딸아, 너도 좋지?”
셋째 딸은 까르르 웃었어요.
셋째 딸은 자라고 자라……
내가 되었어요.
굉장히 독특한 문장입니다.
‘여자는 엄마가 되어 첫째 딸을 낳았어.’라는 말이 인상에 남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되어 아이를 낳았다니요! 아이가 태어난 뒤에야 아버지가 되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결혼과 함께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 굴레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서 엄마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은 어른이 되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됩니다.
엄마는
세상의 엄마를 낳았고
세상의 모든 딸을 낳았고,
세상의 모든 아들을 낳았고,
세상의 모든 생명을 낳았고,
나를 낳았다는 것을요.
그리고
나는 작품을 낳는다는 것을요.
결국 엄마란 이 세상 모든 것을 낳고 사랑으로 키워나가는 존재인 셈입니다.
이 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존재감 없이 살아가야 했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성주의 관점이 도드라지는 문체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지요.
여자는 어려서는 나름 꿈을 꿀 수 있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 남자 형제를 위해 먼저 꿈을 접어야 했고, 결혼을 하고난 뒤에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기를 돌보는 일만 뺑뺑이 돌듯 하며 살아야 했지요.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는 점점 찾기 어려워집니다.
주인공도 그랬지요. 그리고 자신이 점점 작아져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순간, 어렸을 적 꿈을 찾습니다.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지요. 화가 윤석남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화가 윤석남은 그림으로 세상의 여자들을 보살피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여자(아이)들에게만 의미 있는 책은 아닙니다.
윤석남은 어려서부터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아이였습니다. 어쩌면 윤석남이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도 ‘마음 가는 대로’ 열심히 사는 것일 거라 여겨집니다. 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것은 자기 멋대로 엉망진창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날개를 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한없이 작아질 때라도 다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책의 그림은 윤석남의 작품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윤석남의 작품을 감상하며 견줘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마음에 꼭 드는 인물 그림책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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