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이수지 글, 그림/비룡소/2004)
아이와 엄마아빠가 함께 동물원에 갑니다.
그런데 아이와 엄마아빠의 시선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엄마아빠를 비롯해 동물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심드렁합니다.
아이의 호기심어린 표정과는 너무나 대조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른들이 열심히 바라보는 동물원 우리 안에는 그 어디에도 동물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모두 왜 사라졌고, 어른들은 무얼 보고 있는 걸까요?
전체적으로 청회색으로 그려진 그림은 아마 동물원을 대하는 어른들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반면 아이의 표정은 밝습니다.
청회색 화면 가운데 유일하게 화려한 빛깔을 띠고 있는 공작새를 따라 아이는 청회색으로 가득 찬 동물원을 벗어납니다.
공작새를 따라간 그곳은 동물 우리에서 보이지 않던 여러 동물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이는 그곳에서 동물들과 신 나게 놀지요. 그림도 청회색이 아니라 화려한 천연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동물원에서 어른들이 느끼는 것과 아이들이 느끼는 것의 차이를 분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와 엄마아빠의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요소는 또 있습니다.
글의 서사와 그림의 서사가 서로 다르지요.
글은 아이의 서사입니다.
오늘 나는 엄마 아빠랑 동물원에 갔어요.
우리는 고릴라 집에도 갔고요,
곰 동산에도 갔어요.
글은 이렇게 아이가 둘러본 여러 동물 우리들을 차례대로 알려주고 동물원이 신 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림은 다릅니다.
곰 동산에서 엄마아빠가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아이는 아빠 손을 놓고 공작을 따라 갑니다.
이후 아이가 갔다는 하마 수영장이랑, 코끼리 궁전이랑, 기린 마을, 물새 장까지의 장면에서 엄마아빠는 아이를 찾느라 당황한 모습으로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숭이 나라에서야 벤치에서 잠들어 있던 아이를 발견하지요.
아이를 안고 동물원을 나서는 엄마아빠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빠 품에 안겨서 동물원 입구에서 자신과 함께 놀았던 동물들의 배웅을 받으며 밝게 웃고 있지요.
아이는 동물원에 충분히 만족을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는 묻습니다.
엄마 아빠도 재미있었죠?
엄마 아빠는 뒤돌아 동물원을 바라보지만 동물원 입구는 텅 빈 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와 엄마아빠는 동물원이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느낀 것이지요. 동물들과 신 나게 놀이를 즐긴 아이와 달리 엄마아빠는 동물원의 그 어떤 것에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무미건조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어쩌면 엄마아빠는 아이에게 동물원을 한번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의무방어전을 치르러 나왔다가 혼쭐이 난 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앞뒤 면지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앞쪽 면지에는 우리를 뚫고 나오는 고릴라를 원숭이와 코끼리가 기다리고 있고,
뒤쪽 면지에는 원숭이가 우리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고릴라를 억지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고릴라 손에 분홍색의 뭔가가 보입니다. 바로 아이가 떨어뜨린 신발 한 짝입니다. 아마도 고릴라는 아이를 잊지 못하는 듯 싶습니다. 아이들과 동물의 관계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고릴라 집은 아이가 동물원에서 첫 번째로 갔던 곳입니다. 그리고 원숭이 나라에서 아이는 엄마아빠와 다시 만나지요.
그런데 왜 원숭이는 고릴라를 우리 안에 넣기 위해 노력하는 걸까요? 원숭이가 이 책에서 상징하는 것은 뭘까요?
혹시 원숭이는 동물원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른들은 동물원에 오는 아이들에게 동물들과 재미있게 놀라고 하지만, 일과가 끝나면 다시 동물들을 우리 안에 가둬두고 싶어 하지요.
동물원 동물들의 슬픔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고 보면 동물원 입구 간판에 그려 있는 눈이 없는 동물들의 그림은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영혼은 없이 껍데기만 남아 있는 듯합니다. 아마 동물원 동물들의 신세를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반면 아이와 만나서 자유롭게 지내는 장면에서는 동물들도 아이처럼 행복해보입니다. 이런 행복을 맛본 고릴라가 다시 우리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당연하겠지요.
이 책은 내용뿐 아니라 그림책의 형식적인 면에서도 재미있는 볼거리와 장치들이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곰 동산에서 아빠 손에 쥐어졌던 새 풍선은 기린 마을에서 아이를 찾으러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아빠 손에서 놓여져 아이가 동물들과 놀고 있는 판타지 세계로 날아옵니다. 그리고 물새들과 날아 갈 때 함께 날아가고 원숭이 나라에서 잠든 아이의 손에 들려있지요. 새 풍선은 동물의 모습을 한 인위적인 물건이란 점에서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새 풍선을 다시 잡음으로써 엄마아빠와 다시 만나게 됩니다.
또 아이가 들렀던 동물의 순서와 판타지 세계도 규칙성이 있습니다.
아이는 동물원에서 고릴라 - 곰 - 하마 - 코끼리 - 기린 - 물새 순서로 방문을 합니다.
공작새를 따라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건 하마부터지요. 그리고 다음엔 코끼리와 곰, 기린과 고릴라, 물새와 풍선 순서로 진행됩니다. 즉 판타지 세계에서는 하마를 중심으로 앞뒤의 동물들과 차례로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물새와 날아가는 장면에서 아이가 한쪽 신발을 떨어뜨리는데, 오른쪽 하단에서 그 신발을 받으려는 고릴라의 손이 삐죽 나와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뒤쪽 면지의 고릴라의 손에 든 바로 그 신발이니까요. 고릴라가 그 신발을 들고 있으니 아이의 판타지는 이제 현실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아리송해집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있습니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동물들과 함께 한 판타지가 현실이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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