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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논픽션

곰 씨족 소년 사슴뿔이, 사냥꾼이 되다

by 오른발왼발 2019.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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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로 보는 역사
《곰 씨족 소년 사슴뿔이, 사냥꾼이 되다》
(조호상, 송호정 글/김병하 그림/사계절/2009년)

 

 

 

 

아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다루고 있는 역사책을 과연 본 적이 있었나? 아쉽게도 번역물에서는 본 적이 있지만 우리 역사책에서 아이들의 삶을 다룬 책은 본 기억이 없다.
왜일까? 이는 역사책에 백성들의 이야기가 많지 않은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즉, 한 시대는 주로 힘 있는 자들이 이끌어나갔고 따라서 남겨진 기록도 힘 있는 자들 중심으로 써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역사 속 아이들 모습은 관심사가 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역사책은 늘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다. 아이들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끔 만든 과거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 속에 자신과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없을지라도 모르고 있던 과거의 역사를 알게 된다는 기쁨만으로도 역사책에 빠져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는 아이들에게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다가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다. 역사 속 인물은 자신과 동일시할 수 없었다. 간혹 아이들이 역사책에 등장하는 경우도 타임머신 같은 걸 타고 과거로 날아가는 수준이기 때문에 관찰자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이 책은 아이의 일기 형식이다. 일기란 그날그날의 기록이다.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다 기록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나 인상 깊게 남은 일들은 그대로 기록하기 마련이다. 마치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사료의 구실을 톡톡히 할 수 있다. 더구나 보통의 역사에서는 빠지기 쉬운 생활사에 중심을 맞추기에 안성맞춤이다.
일기는 기원전 3000년 3월 24일부터 11월 28일까지 이어진다. 일기의 주인공 사슴뿔이의 나이나 살던 곳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나이는 그림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설사 짐작할 수 없다 해도 상관없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5000년도 더 된 옛날에 살았던 아이지만 ‘아이’라는 공통점만으로도 통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또 정확히 어느 곳에 살았는지는 몰라도 일기를 통해 사슴뿔이가 살았던 곳이 암사동 선사 유적지처럼 강에서 가까워 농사와 고기잡이가 동시에 가능했던 곳이라는 건 얼마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일기 형식이 갖는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역사라는 것이 실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일기란 것이 그렇듯이 이 책에는 아이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째진눈이와의 갈등, 사냥을 나갔다가 실수를 하는 이야기, 밭을 열심히 일구다가도 꾀를 피워볼까 생각하는 것, 또래 여자 아이에 대한 관심, 도토리를 많이 주워서 상을 타고 싶은 마음 등 마치 지금의 일상과도 통하는 이야기들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을 사슴뿔이와 동일시하며 당시의 상황에 빠져들 수가 있다. 자연스럽게 당시의 생활 모습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게 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일기와 정보가 아주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날 일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묽게 쑨 도토리 죽을 나누어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겨우 내내 사냥을 제대로 못 해 물고기와 고기는 동이 나고, 수확한 피와 기장도 다 떨어지고 남은 건 도토리와 말린 나물뿐이기 때문이다. 즉, 첫날 일기는 당시의 먹을거리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 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채집과 사냥, 고기잡이, 농사의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거리를 구했는데 주로 채집하던 나물과 열매, 사냥감이 된 동물들, 물가에서 잡은 물고기와 조개류, 농사를 지었던 곡식의 종류를 그림과 함께 보여준다. 또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음식에 대한 정보도 보여준다. 죽을 만들기 위해 낟알을 갈판에 놓고 갈돌로 문질러 껍질을 벗기는 모습, 나물이나 고기를 돌자르개로 잘게 써는 모습은 물론 조개구이 하는 방법, 도토리묵을 쑤는 방법, 불 피우는 방법들을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각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동시에 설명을 해 주고 있어서 쉽게 다가온다.
결코 적지 않은 정보의 양이지만 차지하는 분량은 한쪽이 조금 넘는 정도다. 전체 상황을 일기로 보여주기 때문에 정보 글의 양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또 자세한 모습을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기와 정보를 연결해 하나의 펼침면으로 이어냈다.  정보의 양이 많지 않을 때는 펼침면의 오른쪽 한 부분만 자리를 차지하고, 정보의 양이 많을 때는 같은 분량을 날개로 접어 펼쳐 볼 수 있게 했다.
이런 편집의 장점은 필요한 정보를 보기 위해서 쪽수를 다음 장으로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정보가 완전히 다음 장으로 넘어갈 경우는 앞의 내용과 분리되는 느낌이 있고, 필요할 경우 앞뒤로 넘겨가며 왔다 갔다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처럼 접혀있던 날개를 펼칠 경우는 이야기부터 정보까지 그대로 한 눈에 들어온다.
아쉬움이 있다면 일기와 정보의 연계성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검게 빛나는 돌을 찾아서’라는 일기의 경우가 그렇다. 사슴뿔이의 아버지가 ‘검게 빛나는 돌’(흑요석)을 구하러 떠난다. 검게 빛나는 돌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지만 사냥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사슴뿔이는 흙멧돼지 목걸이를 아버지에게 건넨다. 그러자 아버지는 허리춤에 있는 호랑이 이빨이 있으니 괜찮다고 한다. 일종의 부적이라 할 수 있는 멧돼지나 호랑이 이빨이 나오긴 하지만 검게 빛나는 돌에 대한 절실함이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부분의 정보는 ‘신앙과 예술’이다. 사냥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사슴 그림이나 흙으로 만든 짐승들, 그리고 아이를 많이 낳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임신한 여인상, 마을의 제사나 축제 때 사용한 조개 가면을 소개하고 있다.
만약 신석기 시대의 신앙과 예술을 소개하고자 했다면 마을의 제사나 축제와 관련되 이야기를 넣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검게 빛나는 돌에 대한 이야기는 일기에 네 번이나 나온다. 정보도 ‘교역’과 ‘돌과 석기’ 두 번이나 나온다. 일기에서도 좀 줄이고, 정보도 한 곳에 모았으면 좋았겠다 싶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이 책은 재미있고 의미있다.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이 돋보인다. 외국 정보책에서는 이미 시도했던 방식이지만 새롭고 신선하다.
이 책은 ‘역사 일기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앞으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현대 남북한까지 모두 열두 권이 나올 예정이다. 기존의 통사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책이 나오리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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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66호(2010년 1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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