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가득찬 세상, 거짓말 같은 진실
《거짓말 학교》(전성희 글/소윤경 그림/문학동네/2009년)
거짓말 하지 말아라!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도 거짓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이 불리하거나 혹은 자신을 절실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곤 한다. 어린 아이들처럼 사회적으로 약자일수록 이런 모습은 도드라진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거짓말의 경우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는 분명 거짓말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진심을 담은 소망인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럴 경우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야단칠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옹호할 수는 없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 그 도를 넘는 순간, 거짓말은 다른 사람들과 세상 모두를 속이며 자신만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엔 상대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위험한 거짓말을 일부러 배우러 오는 학교가 있다!
공식 명칭은 메티스 스쿨(MERTIS SCHOOL), 일명 거짓말 학교. 거짓말도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그런 거짓말이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고, 새 역사를 만들, 그런 위대한 거짓말을 배우기 위한 곳이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 학교장 추천을 받아 몇 차례의 시험과 면접을 거쳐야 한다. 모두 전교 1, 2등을 하던 아이들이다. 이른바 최고 수준의 특목중이라고나 할까?
입학을 했어도 공부를 제대로 못하면 중간에 탈락이다. 대신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온갖 특혜가 있다. 방학동안 어학연수는 물론이고, 대학까지도 전액 장학금과 용돈을 받으면 다닐 수 있다. 대신 졸업 후에는 무조건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 거짓말 학교를 운영하는 곳은 다름 아닌 정부이기 때문이다.
아니, 정부가 왜?
의문이 든다. 그런데 정부가 거짓말을 부추기는 상황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 까닭은 이 학교에서 조회 시간마다 제창하는 ‘거짓말 헌장’ 덕분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이 거짓말 헌장은 아주 익숙하다. 유신 정권 시절 모든 교과서 앞장을 차지하고, 누구나 외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이 학교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 첫 번째 받은 과제는 이 거짓말 헌장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국민교육헌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웠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유신 정권의 정당성을 맹신했던 것처럼 이 학교도 거짓말 헌장을 외우고 제창함으로써 아이들이 거짓말을 맹신하게 하고 있다.
거짓말헌장이 국민교육헌장에 거짓말이라는 말로 조금 변형을 했을 뿐 기본적으로 똑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를 뒤흔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 위대한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른바 국가 이데올로기에 절대 복종할 수 있는 자만이 최고의 인재가 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거짓말 학교를 운영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과연 이런 학교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학교가 아무리 최고 수준이고, 졸업 후에도 취직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라지만 거짓말을 가르치는 학교에 오고 싶은 아이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읽고 또 읽으며 든 생각이지만,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학교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고 많을 것만 같다.
무조건 최고를 지향하는 경쟁 논리 속에서는, 최고들이 모인 곳에서 최고가 되는 게 중요하지 무엇을 가르치느냐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 굳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이 이런 선택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이 책의 화자인 인애와 나영이처럼 말이다.
인애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학교를 선택한다. 나영이는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면서 이곳을 선택한다. 두 사람 모두 거짓말을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두 사람을 이 학교로 몰아넣었다. 물론 거짓말 학교에 절대 다니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두 사람의 처지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두 사람의 처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데에는 이 책의 서술 방식이 큰 몫을 차지한다. 이 책은 거짓말 학교에 대한 모든 걸 나영이와 인애가 번갈아가면서 일인칭 시점으로 보고 느끼며 이야기한다. 때로는 같은 사건에 대해 두 아이의 시점에서 보게 되면서 학교와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더 잘 알 수 있고, 또 나영이나 인애가 일인칭 시점에서 풀어놓는 각자의 상황이나 고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나영이나 인애가 실은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책을 읽는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아이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결국 거짓말 학교란 특별한 아이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이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긴 해도 어린이들이 쉽게 볼 수 있을만한 내용은 아니다. 어찌됐건 주인공들도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다니는 중이고, 주제도 무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독자를 잡아끄는 매력이 대단하다.
누구나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누구나 때때로 강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거짓말이라는 소재, 그리고 최고가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 여기에 학교를 둘러싼 미스테리가 더해지면서 매력은 더욱 배가된다.
멀쩡하던 아이들이 쓰러지고, 교장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극구 숨기려 한다. 사실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나왔다는 의사 선생님도, 이 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왔다는 진실학 선생님도 모두 의문투성이다.
친구가 쓰러지는 걸 보고 난 뒤 아이들은 조금씩 뭔가 이상한 미스테리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꼭 이 미스테리를 풀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사건에 빨려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거짓이라고 믿었던 사실과 사실이라고 믿었던 거짓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진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사이에서도 거짓과 진실이 혼란스러워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혼란스럽다.
이제 선택만이 남겨졌다. 거짓말 학교에 순종할지 말지. 이 결정은 나영이나 인애의 몫이 아니라 바로 독자들의 몫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64호(2010년19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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