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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도둑님 발자국

by 오른발왼발 2019.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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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건 무엇일까?
《도둑님 발자국》(황선미 글/최정인 그림/베틀.북/2009년)


 


“엄마, 이 책 봤어?”
“아니.”
“그럼 내가 이 책 추천할게.”
4학년 아이가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이 책을 꺼내면 말했다.
“그래? 그럼 오늘 밤에 엄마도 볼게.”
이 책은 이렇게 읽게 됐다. 책을 사다 두고도 한참을 못 읽고 지냈는데, 아이의 추천 덕에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처음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마음 저 깊숙한 곳이 짠해 왔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책꽂이에 꽂아두지 못하고 며칠을 두고 봤다. 그리도 다시 책을 집어 들고 봤다.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 저 깊숙한 곳이 짠해 왔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 주방 쪽 작은 창문이 반쯤 깨져 있었고, 바닥에 유리 조각이 떨어져 있고, 창문턱과 가스레인지에는 물결무늬 신발 자국이 선명하다. 경찰도 두 명이나 왔다. 경찰은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묻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도둑이 든 건 확실한데 도둑맞은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도둑은 증거만 남기고 아무 것도 훔쳐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가고 난 뒤 없어진 물건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도연이가 책 사이에 꽂아뒀던 돈 가운데 만 원이다. 이상한 건 돈이 더 있었는데, 그 가운데 만 원만 가져갔다는 점이다. 책 사이에 꽂아둔 돈 가운데 삼만 원은 원래 동생 상연이 돈이었다. 성연이는 도연이가 그 돈을 잘 맡아주겠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다가 야론이 있는 곳의 전화번호가 적인 공책을 받고는 돈을 도연이에게 넘겼다. 야론은 상연이 개였다. 이모부가 준 개였지만 지저분하고 말썽이 심해 골목 사람들은 물론 집주인까지 싫어하는 바람에 이모부가 다시 데려갔다.
다음에 발견한 건 박하사탕통이다. 박하사탕은 아빠가 담배 끊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엄마가 사다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담배가 떨어졌을 때만 먹었고, 박하사탕을 몰래 먹어치우는 건 언제나 동생 상연이와 야론이었다.
없어진 건 또 있었다. 냉동실에 넣어둔 냉동볶음밥이다. 냉동볶음밥은 엄마가 없을 때 데워먹으라고 엄마가 한꺼번에 만들어 넣어둔 것이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뭘 하는지 집을 비우고 어두워져서야 들어왔다. 하지만 도연이나 상연이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컵라면을 더 좋아해서 냉동볶음밥은 언제나 야론 차지였다. 그런데 그 냉동볶음밥이 한꺼번에 다 사라졌다.
아무 것도 없어지지 않았는데 없어진 게 있었다. 만 원, 박하사탕, 냉동 볶음밥……, 그리고 또 있었다. 바로 동생 상연이다. 야론이 있는 곳의 전화번호가 적인 공책을 상연이에게 주고 맡아둔 돈, 상연이와 야론이 즐겨 먹던 박하사탕, 언제나 야론 차지였던 냉동볶음밥. 상연이와 없어진 물건과는 분명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밤 아홉 시가 다 되어가도록 상연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깜짝 놀라 상연이를 찾아나선 가족들이 상연이 친구 영기로부터 들은 말은 ‘상연이가 집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상연이가 집을 나간 까닭은 무엇일까? 영기 말은 이렇다.
상연이가 집을 나간 건 잘못해서 유리를 깼기 때문이고, 유리를 깬 것은 집 열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란다. 여기까지만 듣자면 뭐 이런 것 가지고 가출을 하나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이렇게 되기까지 가족들이 방조한 흔적이 보인다. 일단 상연이는 요즘 들어 설사를 많이 했고, 이 날도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할 것 같았다고 한다. 춥다고 했다는 거다. 하지만 엄마는 이런 사정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도연이도 마찬가지다. 도연이는 바이올린 학원을 빼먹고 피시방에 가면서 혹시나 상연이가 와서 귀찮게 할까봐 일부러 다른 동네 피시방으로 갔다. 열쇠를 잃어버린 상연이가 도연이를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한 건 이 때문이다. 허구한 날 취해 들어오는 아빠도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엄마, 아빠, 도연이. 세 사람은 서로가 원망스럽다.
그리고 도연이 눈에 없어진 물건이 또 하나 보인다. 장식장 선반에 있던 가족사진. 액자는 그대로지만 그 속에 들어 있던 가족사진이 안 보인다. 작년 소백산 천문대로 별자리 구경을 갔다가 근처에 사는 이모네서 야론을 얻고 찍은 사진이다. 야론까지 끼어서 찍은 가족사진. 그 가족사진이 마지막이었다. 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같이 해 본 것은. 처음엔 집안에 도둑이 들어와 생긴 한바탕 소동처럼 보이던 이야기는 어느새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가족들은 상연이를 찾으러 떠난다. 상연이는 단양에 있었다. 상연이는 도연이가 넘겨준 야론이 있는 곳 전화번호가 적인 공책을 보고 무작정 단양까지 간 것이다. 물론 터미널에서 오도가도 못하다가 지구대로 가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대신 상연이는 야론을 만났다. 음식점에서 도망쳐 나온 야론이 상연이 냄새를 귀신 같이 맡고 찾아왔다.
단양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세 사람은 비로소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된다. 엄마는 농원에서 미니 화분 만드는 작은 화초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상연이와 자신을 내팽겨치고 돌아다니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도연이는 엄마한테 미안해진다. 취직했다고 말을 했으면 엄마를 도와줄 수도 있었는데 싶어지기도 한다. 집에만 있는 엄마보다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가 더 멋지고 좋으니까 말이다. 엄마가 일을 하게 된 건 우연히 아빠가 회사를 쉬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몰랐던 게 있다. 아빠가 회사를 쉬려고 했던 건 아빠가 위암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늘 술에 취해 들어왔었고, 없는 형편에 무리를 해서 카메라를 산 것이었다. 해 보고 싶었지만, 부자가 되면 해야지 하고 미뤄놨던 걸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함께 터놓고 나누지 못하는 바람에 생겼던 오해는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이제 마지막 가족사진에서처럼 모두 다 모였다. 엄마, 아빠, 도연, 상연, 야론까지. 이제 도연이네는 다시 예전처럼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상연이 덕분에 가족들은 잊고 있었던 가족의 소중함을 되찾았다. 고약한 도둑놈인줄 알았는데 도둑맞았던 가족의 소중함을 되찾게 해 준 도둑님이었던 셈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60호(2009년 11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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