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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박뛰엄이 노는 법

by 오른발왼발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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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실컷 뛰어 놀으렴

《박뛰엄이 노는 법》(김기정 글/허구 그림/계수나무/2008년)

 


아이들은 자고로 뛰어 놀아야 한다. 뛰어놀지 못하면 좀이 쑤셔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하지만 뛰어놀지 못한다고 반드시 못 노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고 그 상황에 맞는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즐긴다. 아이들은 놀면서 큰다. 때론 혼자서 놀기도 하지만 여러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다 보면 몸도 튼튼해지고, 무엇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운다. 이렇게 배운 것들은 머리로만 배우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
하지만 아무나 이렇게 놀 수 있는 건 아니다. 놀아본 아이들이나 놀 수 있다. 친구나 형제들과 어울려 놀 기회가 적고, 놀 때도 장난감이나 컴퓨터 같은 도구를 가지고만 논 아이들은 이런 놀이의 재미를 모른다. 장난감이나 컴퓨터가 사라지면 바로 심심해지고 만다. 어울려 노는 방법도 모른다. 노는 게 어려워지는 기가 막힌 경우도 생긴다.
이 책은 뛰엄 할아버지가 외증손자인 주먹이에게 보내는 편지다. 많은 자손들 가운데 주먹이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물가물할 정도지만 굳이 주먹이에게 편지를 쓰는 데는 까닭이 있다. 집 안에서는 요상한 컴퓨터 놀이에만 빠져 있고, 집 밖에서는 여러 동무한테 못된 짓만 일삼는다는 주먹이가 제대로 잘 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 이제 날이 밝으면 꼭 백살이 되는 뛰엄 할아버지는 섣달그믐밤을 밝히며 주먹이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이 어떻게 놀았는지를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면서 말이다. 덕분에 한 통의 편지는 뛰엄 할아버지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되었고 분량은 120여쪽이나 되는 책 한 권 만큼이 되었다. 꽤나 긴 편지지만 편지글이라는 걸 잊게 할 만큼 재미있다.
도깨비한테 뛰엄병을 파는 대신 백 살까지 신나게 놀게 해 달라고 했던 뛰엄 할아버지다.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가 재미가 없을 리가 없다. ‘에이~ 뻥! 말도 안 돼!’ 할 만큼 허풍스러워 보이지만 듣다 보면 허풍만은 아닌 듯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기발하고 생기가 넘친다.
뛰엄 할아버지가 박뛰엄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부터가 그렇다. 집이라곤 달랑 한 채밖에 없는 산골 외딴 마을에서 날마다 혼자 집을 지키느라 심심해, 심심해를 외쳤더니 어느 날 범이 찾아와 놀자 하는 바람에 냅다 뛰어 다니게 됐고 덕분에 뜀박질을 잘 하게 되어서 이름도 뛰엄이가 됐단다. 처음에는 마구 뛰기만 하는 마구뛰엄만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펄쩍뛰엄, 깡충뛰엄, 쏜살뛰엄, 살짝뛰엄, 성큼뛰엄 등 가지가지의 뛰엄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게 108가지나 된다고 한다. 범이랑 뛰어 놀았다는 것도 그렇지만 뛰엄 종류가 108가지나 된다니 믿기지는 않지만 놀 때는 죽기 살기로 뛰면서 놀아야 한다는 말이며 줄줄이 늘어놓는 뛰엄 이름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괜히 여기 나오지 않은 다른 뛰엄 종류는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 많은 뛰엄 방법 대로 뛰어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병이 되기 때문일까? 뛰엄 할아버지는 범이랑 삼 년 동안이나 뛰어다니던 후휴증인지 그만 뛰엄병에 걸리고 만다. 어느 결에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자기도 모르게 무조건 뛰어다니는게 된 것이다. 결국 뛰엄병 때문에 밭일도 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지내며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한번 놀이의 재미를 알게 되면 언제 어디서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심심해지지 않는 법도 터득하는 법이다. 뛰어 놀지 못하니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결국 뛰엄 할아버지는 동물의 말을 알아듣게 된다. 처음엔 찌르레기 소리를, 나중엔 외양간 소가 하는 말, 두꺼비가 하는 말, 기러기 떼가 하는 말까지 알아듣는다. 그리고 이들의 말을 통해 세상 소식을 듣는다. “심심할 때는 가만 귀를 기울이거라. 요리조리 살피기도 하거라. 재미난 게 얼마나 많은 줄 알게 될 거다. 알겠느냐?”
하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뛰엄 할아버지는 그 재미를 일에서도 찾아냈다. 물론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은 달라서 일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늦봄에 심었던 감자 한 쪽이 가을이 되어 수십 배로 늘어나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신기하고 배부르고 신나는 경험은 단박에 농사짓는 재미로 이어진다. 이제 한 사람 몫을 너끈해진 것이다.
뛰엄 할아버지는 장가를 가기 전에 바깥세상에 나가 실컷 더 놀아 보고 싶어 금강산 구경도 나서지만 삼십 년만에야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신선들의 장기 구경을 하며 신선놀음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가지가지 노는 것을 다 놀아 본다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 했는데, 당시는 놀 욕심에 신선놀음에까지 빠져 버린 것이다. 결국 열 여덟 살에 금강산 구경을 나섰던 뛰엄 할아버지는 마흔 여덟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뛰엄 할아버지는 죽기 살기로 뛰어 노는 것부터 가만히 앉아서 귀 기울이며 재미난 걸 찾아내며 노는 일, 일에서 재미를 찾는 기쁨, 아까운 시간을 다 버리고 노는 신선놀음까지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해 본 것이다. 여기에 장가가서 오순도순 사는 재미까지. 뛰엄 할아버지는 이 모든 이야기를 주먹이를 위해 펼쳐 놓는다. 자신의 모습 속에서 주먹이가 어떻게 놀아야할지를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일 터이다.
아마 주먹이가 이 편지를 받을 때면 뛰엄 할아버지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편지를 쓰던 섣달그믐날은 뛰엄 할아버지가 편지를 쓸 수 있던 마지막 날이다. 백 살까지 살며 신나게 놀게 해 달라고 도깨비와 약속한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기 잘하는 뛰엄 할아버지는 역시 다르다. 편지를 마칠 무렵 찾아온 저승사자랑 장기 내기를 해서 내리 세 판을 이긴다. 저승사자가 열 받아서 “내일 한 판 더!”하고 외치게 만들고 만다. 역시 잘 놀던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다르다.
이 책에는 특별하게 이야기 중간중간에 각주 번호 같은 것이 붙어 있고, 그 내용은 책 뒤에 ‘숨은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있다. 여기에서 본문에서는 빠진 또다른 이야기를 볼 수 있는데 그 재미가 특별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주먹이가 뛰엄 할아버지의 어느 위치쯤인지를 알려주는 내력에 대한 설명이며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를 알 수 있는 설명들이 보인다. 옛날이야기와 집안 내력과 우리의 근현대사가 엮여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전작인 『해를 삼킨 아이들』이 연상된다. 하지만 확실한 차이라면 이번 작품이 훨씬 가볍다는 점이다.  그건 무게 중심이 역사에서 아이들의 삶으로 훌쩍 넘어왔기 때문이다. 아마 그만큼 아이들도 뛰엄 할아버지의 이야기 보따리에서 얻어가는 것도 많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20호(2008년 3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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