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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호랭이 꼬랭이 말놀이꼬랭이 말놀이

by 오른발왼발 202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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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에서 건져올린 말놀이 이야기

《호랭이 꼬랭이 말놀이》(오호선 글/남주현 그림/길벗어린이(천둥거인)/2006년)

 

 

이 책은 말놀이 책이다. 그런데 여느 말놀이 책과는 다르다. 옛날이야기에서 건져 올린 말놀이다. 옛날이야기 그대로는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옛날이야기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더 많은 이야기는 작가의 창작이다. 하지만 옛날이야기를 씨실과 날실 삼아 엮어냈다는 점에서 다른 창작과는 확실한 차별이 있다.
문장도 눈여겨 볼만하다. 옛날이야기나 동화처럼 산문투가 아니다. 동시같다고나 할까? 동시라고 단정 짓기엔 산문투의 문장이 걸리지만, 어쨌든 새로운 시도는 틀림없다. 덕분에 이야기는 아주 신선하게 다가온다. ‘옛날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꾸며서, 이런 말투로 들려줄 수도 있겠구나’하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준다고나 할까?
이 책이 말놀이 책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운문투의 문장은 아주 제격이다. 말놀이는 같은 말이 반복되거나 앞선 말과 이어지는 말이 또다른 이미지로 연결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운율이 생기고 노래가 되곤 한다.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가볍고 경쾌해진다.
작가의 이런 시도가 가장 돋보인 작품은 「기다란 사람」과 「노래하는 장승」이다.
「기다란 사람」은 ‘기다란’이란 시각적 언어와 ‘고소한 깨’란 후각적 언어를 말놀이에 걸맞게 재구성했다. 기다란 사람, 기다란 도끼, 기다란 길, 기다란 산, 기다란 막대기, 기다란 밤……. ‘기다란’이란 말은 반복되며 자연스럽게 리듬감이 생겨난다. 자꾸자꾸 나타나는 ‘기다란’ 무언가를 기다리게 하는 맛도 난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 기다란 것 찾기 놀이하자!” 며 여기에 없는, 또다른 기다란 걸 찾아내는 놀이를 즐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다란 깨송이가 톡, 톡톡, 톡톡톡, 톡 토독 토도록 터지는 장면은 더욱 신난다. 깨송이 하나가 톡 터지고, 이에 질세라 나머지 깨송이들이 터지는 소리는 경쾌하고 신난다. 정말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듯 하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말놀이에 끼어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노래하는 장승」은 우리가 흔히 아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다. 혹은 떼주는 인물은 도깨비가 아닌 장승이다. 판본에 따라서 혹을 뗀 혹부리 영감을 따라 했다가 오히려 혹 하나를 더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혹을 뗀 혹부리 영감 이야기로 끝난다. 하지만 전혀 허전하지 않다. 아니, 그 반대로 아주 흥겹다. 장승 밑에서 잠이 든 혹부리 영감이 밤새 장승들이 벌이는 ‘헐랭이’ 놀이에 동참한다.
헐랭이 헐랭이, 헐랭이 헐랭이 짝짝, 헐랭이 헐랭이 으쓱으쓱, 헐랭이 헐랭이 빙글빙글. 두 장승과 혹부리 영감은 밤새도록 서로 주고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점층적으로 반복되는 노랫말에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고 싶어질 듯하다.
「옥순이네 찍순이네」도 말의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옥순이네는 오그락오그락 살고, 찍순이네는 찌그럭찌그럭 산다. 오그락, 찌그락은 ‘오그라들다’ ‘찌그러지다’의 의미일 것이다. 옥순이네랑 찍순이네는 오그라들고, 찌그러진 고단한 삶을 사는 백성들의 표상이다. 큰비에 오그라지고 찌그러진 집을 버리고 깊고 깊은 산골로 들어가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코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그곳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힘차게 사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오그락오그락’ ‘찌그럭찌그럭’이란 말의 반복이 주는 유희와 힘 덕분이다.
「아기 이와 엄마 이」는 말놀이의 맛은 잘 느껴지지 않지만 대신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살이 통통하게 찐 엄마 이가 아기 이를 업고서 머리카락 숲 속으로 산책을 나와 바람이 솔솔 부는 오솔길을 찾는다! 바람 솔솔 부는 오솔길이란 가르마를 뜻할 게다. 그런데 하필 오늘따라 가르마가 보이질 않는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 반들반들한 이마로 나와 주르르 미끄러지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다. 징그러운 머릿니마저도 사랑스러워지고 만다. 다만  ‘이제 그만 울고 / 집에 돌아가야지요?’ 하며 갑자기 화자가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개입만 없었다면 더 좋았겠다. 재미나게 읽던 이야기가 갑자기 교훈이 담긴 우화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타이르는 말이 무조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말놀이 책에서는 별 필요가 없다. 말놀이란 말에서 오는 유희를 맘껏 즐기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느낌이 자주 목격된다. 「장에 가는 개구리」에서 개구리는 함께 장에 갈 친구를 찾지 못하고 터덜터덜 장에 간다. 이때도 화자가 등장해 말한다. ‘그런데 포기하면 안 돼요.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일이 시작된답니다.’ 라고.  뒤이어 개구리는 마침내 함께 장에 갈 친구를 만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만약 화자의 이런 개입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개구리가 친구를 찾지 못할 거라 여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친구를 찾아나서고, 마침내 친구를 만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이런 점에서 「장에 가는 개구리」 속의 개구리 모습은 좀 의아스럽다. 보통 아이들은 장에 가는 일보다는 친구들과의 놀이에 더 큰 관심이 있다. 그런데 개구리는 자신이 할 일, 즉 장에 가는 길에 동참할 친구만을 찾는다. 장에 가는 길에 만나는 다른 친구들이 놀이에 빠져 있어도 그 놀이에는 관심이 없다. 옛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갈 뿐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다지만, 그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결국 개구리가 만나게 되는 친구가 자신과 같은 종족(!)인 개구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장 큰 아쉬움이 남는 작품은 「날씬한 뼈다귀」다. 이 작품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선명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여성으로 표현된 뼈다귀, 뼈다귀를 고추에 대 보고, 괜히 그 뼈다귀에 오줌을 누는 설정 등이 아무래도 거북하다. 성적인 부분을 모른 척 넘어간다해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옛날이야기에서 길가에 뒹구는 뼈다귀는 돌봐줄 이 하나 없는 불쌍한 영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움받은 각편 자료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이야기처럼 뼈다귀를 속이면 잡아먹히고 말지만, 뼈다귀를 잘 거두어 주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소금 장수의 행동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도움을 받은 각편 자료까지 밝힌 마당이라면 그 의미에 대해서도 좀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이 있더라도 이 책은 여러 모로 소중한 의미가 있다. 이 책에 실린 15편의 작품 모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할 이야기들이 많다. 이 책이 시도한 여러 가지 실험 정신을 계속 되씹어보고 싶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08호(2007년 9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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