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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새끼 서 발

by 오른발왼발 2021.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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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새끼줄에서 시작되었다!

 

‘새끼 서 발’은 나에게 특별하다. 옛이야기가 가진 의미를 이런저런 의미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을 싸는 게으른 아이가 엄마가 야단을 치자 새끼를 꼬게 볏단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꼰 새끼는 서 발뿐이었고, 엄마는 아이를 내쫓는다. 그리고 새끼 서 발을 가지고 길을 가던 아이는 교환을 통해 색시와 재물을 얻는다.
그런데 궁금했다. 총각은 왜 새끼를 꼬겠다고 했을까? 

1. 가난한 집. 게으른 아들

총각은 늙은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가난한 집안의 게으른 아들이다. 아들이 하루라도 빨리 한 사람의 몫을 해주길 바라는 엄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들은 어머니의 억장을 무너뜨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답답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한소리를 하고 만다.

“야야 다른 집 아들은 일도 잘 해서 부모 걱정 없이 하든데 너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밥만 먹고 지내느냐?” 하고 나무랬어. 그러니까 이넘이 “나 새끼나 꼬게 짚이나 한 단 갖다주어요.” 하드랴. 그래서 어머니는 짚은 한단 사다 주었지.
이넘이 새끼를 꼰다고 낑낑거리며 꼬았는데 밤새도록 꼬아 논 것이 서발 밖에 안 되드랴. 어머니가 이걸 보고 기가 막혀서 “에잇! 이놈으 자식 나가 빌어먹던지 죽던지 해라!” 하고 내쫓았가덩.(《한국구전설화 5-경기/205)

나이가 차도록 게으르고 제 몫을 못하는 아이. 옛이야기에는 이런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부모의 눈에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바보 같아 보이기만 한다.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하루라도 빨리 한 사람 몫을 해주길 바라는 엄마에게 아들은 게으르고 무기력해 보이기만 한다. 그래 아들에게 한소리를 늘어놓자 아들은 새끼를 꼬게 짚이나 한 단 가져다 달라고 한다. 하지만 집에는 짚이 없다. 아마도 농사지을 땅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이라 짚단 같은 것도 없기 때문일 거다. 겨우 짚단을 사다 주니 밤새도록 꼰 것이 새끼 서 발뿐이다. 결국 총각은 집에서 내쫓기고 만다.
아들은 새끼를 서 발밖에 못 꼴 만큼 능력이 없던 걸까? 아니면 그만큼만 있으면 충분하다 생각해서 서 발만 꼰 것일까? 이야기 뒤로 갈수록 달라지는 총각의 모습을 보면 어쩐지 후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건 그렇고, 아들은 왜 하고많은 일 가운데 새끼를 꼰다고 했던 것일까? 집안엔 새끼를 꼴 짚단도 없는데 말이다.

 

새끼나 매듭은 전 세계적으로 생명과 죽음, 그리고 운명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신화와 민담의 제재로 등장한다.《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이나미/민음인/223)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선 떠오르는 건 아이를 낳은 뒤 치는 금줄이다. 이때 새끼줄은 신성한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이다. 또한 《탯줄 코드》(민속원)를 보면 새끼줄은 탯줄을 상징하는 금줄이라 말하고 있다. 새끼 줄은 자궁 속에서 자라는 새끼와 어미를 연결하는 줄이고, 이는 곧 탯줄이고, 생명줄이라고 한다. 또 하나, 새끼줄의 모양은 탯줄의 모양과도 닮았다고 한다. 
새끼줄의 상징, 그리고 총각이 집을 나온 뒤의 상황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괜히 새끼줄이 등장한 것이 아닌 게 분명하다. 
탯줄의 길이는 평균 55cm이지만 긴 경우 3m 정도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탯줄이 너무 길 경우는 혈액 순환에 장애가 생겨 태아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혹시 총각은 게을렀던 것이 아니라 너무 긴 탯줄 탓에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성장이 느렸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총각이 새끼줄을 들고나왔다는 것은 어머니로부터 탯줄을 온전히 끊고 독립적인 삶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2. 거래 - ‘산 것’과 ‘죽은 것’ 그리고 수수께끼

 

산 것 죽은 것
벼(이삭+짚단) 짚단
새끼줄 옹기 장사의 끊어진 새끼줄
새끼 서 발+끊어진 새끼줄  
옹기 깨진 옹기
쌀 서 말 죽은 말
산 말 죽은 처녀
산 처녀  
수수께끼  

이야기는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집에서 쫓겨나는 과정.

둘째는 새끼 서 발->옹기->쌀 서말로 바뀌는 과정.

셋째는 쌀 서 말->죽은 말->산 말->죽은 처녀->산 처녀로 바뀌는 과정.

넷째는 수수께끼로 비단 장사를 이기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이야기들과는 다른 특이한 지점이 보인다. 죽은 것과 산 것이 계속 교차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엄마한테 인정받지 못했던 총각은 집에서 쫓겨난다. 중요한 건 총각이 집에서 쫓겨날 때 들고 나간 새끼줄이다. 새끼줄은 엄마한테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는 큰 역할을 해내는 잠재력을 지닌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새끼 서 발은 옹기로, 다시 쌀 서 말로 바뀐다. 총각의 의지가 아닌 상대방의 필요에 따른 거래다. 새끼줄은 끊어진 옹기 장사의 새끼줄에 생명을 불어넣어 줬고, 그 대가로 받은 물동이는 물동이가 깨져 어쩔 줄 모르던 색시의 눈에 띄어 쌀 서 말과 바꾸게 된다. 총각이 쌀을 얻게 된 것은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볏단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1차 과제가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물동이는 아주 중요하다. 물은 재생의 의미가 있다. 또한 물을 담는 그릇인 물동이는 자궁의 이미지를 갖는다. 이렇게 볼 때 두 번째 과정은 총각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이전까지는 상대방의 제안에 따라 거래하다가 이후 자신이 먼저 제안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총각의 태도가 변화하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쌀 서 말->죽은 말->산 말->죽은 처녀->산 처녀로 바뀌는 과정이다. 총각은 쌀 서 말을 죽은 말과 바꾼다. 그리고 죽은 말을 속임수와 억지를 써서 산 말로 바꾼다.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꿈 상징 사전》(한국심리치료연구소)의 말의 상징 가운데 눈에 띄는 내용이 보인다. 말이 상징하는 것이 ‘성(性)의 상징’, ‘본능적인 활력’, ‘감정’, ‘무의식이나 정신 전체’라는 점이다.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할 수 있게 된 총각에게는 새로운 감정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총각은 처음엔 그 감정을 알지 못한다. 쌀 서 말을 죽은 말로 바꾸는 과정이다. 하지만 사춘기 호르몬이 자신을 걷잡을 수 없게 하듯이 이성에 대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 속임수와 억지를 써서라도 죽은 말을 산 말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후 총각은 산 말을 죽은 처녀와 바꾼다. 죽은 처녀는 아마도 총각의 ‘아니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총각이 무의식 속에 품고 있던 이상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총각은 죽은 처녀를 지게에 얹어 놓고 가다가 어떤 마을 우물가에 받쳐놓는다. 그런데 동네 처녀들이 우물가에 왔다가 이 처녀를 툭 쳐서 우물에 빠뜨리고 만다. 총각은 처녀를 살려내라 야단을 치고 결국 처녀의 부모가 제 딸을 데려가라 해서 그 처녀를 데려간다. 즉, 죽은 처녀가 산 처녀로 바뀐 것이다. 죽은 말을 산 말로 바꿀 때처럼 억지를 쓰는 모습이 살짝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죽은 처녀가 총각 무의식 속의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마음은 곧 사라진다. 누구나 다 마음속에 이상형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이상형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마음속의 이상형은 현실의 진짜 짝을 만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이상형은 계기가 없으면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게 되지만, 계기가 생기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우물가 처녀가 툭 치는 바람에 죽은 처녀가 물속에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또 물이다! 죽은 처녀는 물에 빠지고 총각은 산 처녀, 즉 진짜 자기 짝을 지게에 지고 길을 떠난다. 총각은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첫 번째 생물학적 탄생과 함께 두 번의 다시 태어남. 모두 세 번의 탄생을 겪은 총각은 이전의 총각이 아니다. 이는 이후 만나는 비단 장사와의 수수께끼내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 판본 가운데는 산 처녀를 지게가 아닌 궤짝에 넣어 길을 떠난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진다. 궤짝 속의 처녀가 비지로 바꿔치기 되고 만다. 죽은 처녀를 총각의 아니마, 이상형이라면 산 처녀는 현실의 진짜 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산 처녀는 당연히 무의식의 영역에서 나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처녀를 궤짝에 넣고 간다는 것은 아직까지 총각이 무의식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 처녀를 누군가에게 뺏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총각이 얻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니고 콩에서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비지뿐이다. 콩은 여성의 상징이고, 두부는 콩으로 만든다. 비지는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다. 비지도 나름 무언가를 해 먹을 수 있는 재료가 되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제대로 짝을 찾지 못한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단계에서 총각은 비단 장사를 만나 수수께끼 내기를 하게 된다. 비단 장사는 어리숙해 보이는 총각이 예쁜 처녀를 데리고 있으니 욕심이 나서 빼앗으려 얕잡아 보고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총각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먼저 수수께끼를 낸다. 총각이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나선 것일 수도 있고, 총각을 얕잡아본 비단 장사가 먼저 하라고 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총각이 선수를 잡은 것이고, 총각은 자신의 삶을 재료로 삼아 비단 장사는 절대 맞출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낸다는 점이다. 총각은 자신의 인생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된 것이다. 

** 이번에 '새끼 서 발' 이야기를 보기 전, 저는 좀더 다른 의미로 이 이야기를 봤습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는 점이 농사일과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비슷한 듯 다르게요.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다시 보면 또 다른 의미가 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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