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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논픽션

얘들아, 학교 가자

by 오른발왼발 202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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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만나는 세상

《얘들아, 학교 가자》
(안 부앵 지음/상드린·알랭 모레노 사진/오렐리아 프롱티 그림/푸른숲/2006년/절판)

 

“엄마, 학교 안 다니고 그냥 내가 배우고 싶은 것만 학원에 가서 배우면 안 될까?”
지난 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불쑥 이렇게 물어왔다. 아이가 학교에서 적응을 못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불안하기는 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
“왜? 학교 다니기 싫어?”
“아니. 그게 아니고 학교에 가면 내가 정말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배워야 하잖아. "
내가 생각했던 만큼 심각한 고민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편으론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역시 학교는 학교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내가 학교에 다닐 때와 지금, 학교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학교라는 틀이 갖는 공통된 요소는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다닐 때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 불렸고, 아이들에 따라 차등 부과되던 육성회비를 냈다. 그때도 여전히 국민학교는 의무 교육이었지만 육성회비를 몇 달간 밀리게 되면 비록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지만 대신 선생님한테 불려가 곤혹을 치루곤 했다. 한 반 학생 수는 80명도 넘는데다가, 선생님이 사정이 생겨 오랫 동안 나오지 못하면 그 반은 갈갈이 찢겨서 다른 반에 조금씩 끼어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지금 아이들은 이런 학교의 모습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학교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르긴 해도 아이들에게 이 시절 학교 이야기를 해줄 때 그저 딴세상 이야기처럼 낯설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건 아무리 학교의 모습이 달라졌다지만 학교가 갖고 있는 공통점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키워나가거나, 친구들을 사귀는 것 같은 일 말이다. 물론 때론 벌을 받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다툼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세대를 뛰어넘어 학교를 함께 공감하게 한다. 학교에 대한 이런 공감은 세대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공간을 뛰어넘어 낯선 다른 나라의 학교에서도 똑같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이들과 학교’에 관한 책이다. 글은 꼭 필요한 정보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정도이고 큼지막한 사진으로 아이들과 학교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학교에 가는 모습도 있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도 있고, 점심 시간의 모습도 있다. 세계 30개 나라를 다섯 개 대륙별로 묶어서 보여주는데,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들이 많다. 이는 이 세 개 대륙이 가장 넓고 나라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듯 싶다. 여기에는 그 대륙을 대표하는 나라들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학교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학교라기 보다는 특별한 학교의 모습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책을 펼치자 마자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학교는 이스라엘의 ‘평화학교’다. 이곳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함께 다닌다. 사진에는 이스라엘 남학생과 팔레스타인 여선생님이 다정하게 웃으며 공부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뉴스를 통해 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을 보아왔던 입장에서는 ‘어, 정말?’ 하고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학교의 모습은 이스라엘에서도 아주 특별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학교는 이스라엘에 있는 ‘유일한 평화 학교’다.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과 학교를 보여주되 그냥 겉모습만 담지는 않으려는 작가의 생각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음에 소개되는 학교들도 평범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경우에 따라서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학교도 있지만 적어도 그 나라의 상황을 학교를 통해서 읽어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다소 낯설어 보이긴 하지만 대신 아이들의 생활을, 그 나라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이란에서는 차도르를 두르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도르는 이슬람이 국가의 가장 높은 가치를 차지하는 이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자, 여자들의 족쇄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의 꿈을 이루는 데 차도르가 장애가 되지는 않아요’라는 분명한 메세지를 전함으로써 사진 속 아이의 현실을 이해함과 동시에 학교가 아이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인도의 경우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여러 종류의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자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지역에서도 용기 있는 여자 아이들은 ‘저녁에 열리는 학교’에 다닌다. 아이들은 책걸상도 없는 교실에서 각자 작은 칠판과 분필만 들고 자리에 앉아 늦은 저녁 시간 동안 공부를 한다. 또 ‘부자 학교와 가난한 학교’는 처음부터 배우는 내용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직업을 갖게 될 때도 가난한 학교 아이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또 고아나 버려진 아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 도로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거리의 학교’를 다닌다.
아프리카의 카메룬에서는 이동 생활을 하는 피그미족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여주는 건 학교가 아니라 숲 속에 있는 피그미족의 모습이다. 유럽 선교사들이 피그미족을 위해 세운 학교도 있지만 굳이 학교를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데, 이 언어로는 피그미족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피그미족이 숲을 통해 배운 지혜가 이렇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학교가 이렇게 무겁기만 한 건 아니다. 비록 책가방이 없어서 상자를 머리에 이고 다니지만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상관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잠비아의 여자아이들, 또 칠판 앞에서 벌을 서고 있는 러시아 아이의 모습 같이 웃음을 짓게 하는 장면들도 많다. 한편 이 책에서는 틀에 박힌 학교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대안이 되는 학교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보스와나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지은 학교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프랑스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마누슈(집시)족을 위해 트레일러 학교가 방문하거나 집에서 홈스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책을 쭉 훑어가다 보면 학교는 사회와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때론 자기 의지에 따라 새로운 학교를 적극 만들어나갈 수도 있고 말이다. 이 모든 게 사진을 통해 쉽게 공감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고, 세계를 향해 열린 시야를 갖게 해 준 글의 힘이라 여겨진다.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괜히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어진다.

“얘들아, 학교 가자!”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194호(2007년 2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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