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읽는 알짜배기 철학책
《인간이란 무엇인가?》(세실 로블랭, 장 로블랭 글/웅진주니어/2007년)
인간이란 무엇인가?’
꽤나 딱딱한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딱딱한 질문을 피해가기 어렵다.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 인간에 대해 던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많은 철학책에서 같은 질문을 발견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다만 딱딱한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 또한 딱딱한 게 이런 책들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인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임에도 이런 질문이 담긴 책들은 일단 제쳐놓기 일쑤다. 가끔 용기를 내어 도전을 해 보기도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 딱딱한 제목과는 달리 꽤나 재미있다. 재미만 있는 게 아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조금은 심각해지게 만든다. 인간이란 무엇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해 왔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어렵지도 않다. ‘철학’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 개념어도 나오지 않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도 않다.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스스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재미와 내용이 모두 잘 살아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똘똘한 개 레오와 철학자의 대화’라는 부제다 붙어 있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담긴 책에 개가 등장하다니? 그것도 철학자보다 앞쪽에 등장한다. 게다가 철학자와 대화를 한다고? 맞다. 이 책은 개 레오와 한 철학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형식이야 말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딱딱한 질문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며 재미를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개 레오 앞에는 ‘똘똘한’이란 형용사가 붙어 있고, 철학자 앞에는 아무 것도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다. 이는 인간이란 만물의 영장이라 생각하는 인간의 자만심을 깨고 보다 냉정하게 인간의 모습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에 대한 책을 써야 하는 철학자가 있다. 하지만 책은 잘 써지지 않았다. 철학자는 생각에 잠겨 왔다 갔다 하다가 책을 꺼내 주의 깊게 읽곤 했지만 일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이때 개 레오가 나타나 말한다. 인간에 대해 거창한 질문을 던져 보겠다면서 정작 동물은 관찰할 생각도 안 한다고 말이다. 철학자는 개가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놀란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건 개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해서 책을 써야 하면서도 레오의 말마따나 동물은 관찰도 하지 않고 책과 머리로만 모든 걸 해결하려는 철학자의 모습일 것이다.
철학이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철학이야말로 인간과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현실과 밀접한 학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철학의 바탕은 생각지 않고, 사유의 결과만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다 보니 철학은 머리로 생각하는 어려운 학문이요, 현실과는 거리가 먼 학문이라 여기게 된다. 나와는 별 관계가 없는 학문이라 여기기 때문에 별 관심도 없고 의문도 갖지 않는다. 자연을 한 번도 관찰하지 않고 책만 열심히 보고 외우고는 자연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어쨌든, 철학자는 철학자로서 근본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었고, 개 레오는 철학자에게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실마리를 풀어나가게끔 한다. 그러니 개 레오에게 ‘똘똘한’이란 형용사는 얼마든지 붙여도 좋을 듯 하다.
이렇게 조금 부족해 보이는 듯싶은 철학자와 똘똘한 개 레오의 만남은 철학을 ‘저 높은 곳에 있는 특별한 것’에서 끌어내린다. 길거리를 헤매던 레오지만 철학자와의 논쟁에는 결코 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철학자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허점을 파고든다. 철학자가 책상머리에서 생각한 것과는 달리 레오는 길에서 자신의 동료인 다른 개들, 또 다른 여러 동물들, 그리고 인간들을 보면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사는 존재라면 왜 서로 두려워하고, 남의 것을 훔치곤 하느냐는 식이다. 누구나 다 공감을 할만한 문제이기 때문에 독자 역시도 철학자가 레오와 논쟁을 벌이듯 그 답을 생각하게 한다.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나름 심각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재미있는 건 철학자가 점점 레오에게 의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엔 레오가 철학자 앞에 일방적으로 등장했지만 철학자는 레오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일부러 현관 밖에 나가 레오에게 인사를 걸기도 하고 결국엔 고백을 한다. 레오의 이야기가 꽤 도움이 되었고, 함께 토론을 하고 싶다고. 이렇게 해서 철학자와 레오의 토론은 계속된다. 철학자와 레오의 토론은 아주 팽팽하다. 누구 말이 맞는다고 딱 골라 말하기 어렵다. 이렇게 해서 철학자와 레오가 논쟁을 벌인 주제는 모두 아홉 가지다.
1. 인간이 정말로 사회적 동물일까
2. 인간은 왜 함께 어울려 살까
3. 동물도 일을 할까
4. 일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까
5. 동물도 말을 할 수 있을까
6. 인간이 정말로 이성적일까
7. 문화가 좋을까, 자연이 좋을까
8. 인간이 자유롭다고?
9. 인간이 좋아, 개가 좋아?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에 책을 써야 했던 철학자에게 레오와의 토론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레오야말로 진짜 철학자, 아니 철학자라고까지는 하기 어려워도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떻게 철학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론이 팽팽해지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생각해 볼 문제 O를 보시오’라는 작은 글씨를 볼 수 있다.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웬 문제? 하며 해당 쪽수를 찾아가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철학자가 미덥지 않아서 레오는 직접 철학 책들을 들춰 봤어요. 여러분도 레오처럼 해 보세요.’ 라는 설명과 함께 철학자와 쟁점이 됐던 문제에 대한 다른 철학자들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다. 정말 대단한 레오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18호(2008년 2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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