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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외국 동화

안녕, 캐러멜!

by 오른발왼발 202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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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에서 소통으로

《안녕, 캐러멜!》

(곤살로 모우레 글/페르난도 마르틴 고도이 그림/배상희 옮김/주니어김영사/2006년)

 

 

이 책의 주인공 코리는 스마라에 산다. 스마라는 알제리의 사하라 사막에 있는 사하라위족 난민촌 가운데 하나다. 그곳은 자갈과 끊없는 모래뿐인 광활한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 천막과 허름한 진흙집만이 덩그마니 있는 곳이다. 바깥 세상에서 이곳을 바라본다면 마치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고립무원의 섬처럼 느껴질만 하다. 이 거친 곳을 아랍말로 하마다라고 하는데 이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난민 생활을 하는 사하라위족의 생활이 어떠할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을 이곳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이곳에서마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 아이가 있다. 코리. 코리는 듣지 못하고 그래서 말을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서로 소통해야 하는데 코리에게는 이 두 가지 길이 막혀 있다. 요즘에야 보청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수화를 배우기도 하고, 입술 모양을 보고 상대가 말하는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코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코리가 학교에서 기껏 배울 수 있는 건 신발끈을 묶는 것 같은 아주 간단한 일뿐이다.
그런 토리가 스스로 터득한 것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입을 움직인다는 점이다. 엄마는 코리를 가리키며 입술을 크게 움직였는데, 엄마 입이 동그랗게 되었다가 옆으로 벌어지면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엄마 이름인 마후다는 벌린 입술, 오무린 입술, 벌린 입술이 되는 걸 알았다.
그런 코리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낙타다. 낙타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이, 조그만 우리에 갇혀 있어도 잘 참아내는 차분함이 코리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 이유만은 아닐 듯 싶다. 조그만 우리에 갇혀 있으면서도 잘 참아내는 낙타의 모습에서 코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코리는 낙타 캐러멜과 친구가 된다. 삼촌네 낙타가 새끼를 낳자 캐러멜이라 이름짓고 날마다 캐러멜을 찾아온다. 처음엔 막연히 낙타가 좋아서 찾아오게 된 거지만 차츰차츰 달라진다. 결정적인 계기는 코리가 캐러멜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이 입술을 움직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코리는 캐러멜도 사람들처럼 입술을 움직이는 걸 보고 자기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캐러멜이야 되새김질을 하기 위해서 입술을 움직인 것이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코리는 자기식대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코리는 캐러멜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저 입술을 움직이고 있으니 무슨 말인가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 코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세상을 만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범주 내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리는 캐러멜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차츰차츰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아니라고 할 수만도 없다. 이는 둘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코리의 머릿속에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생각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캐러멜이 입술을 움직이며 하고 있는 말은 곧 코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코리의 내면 세계는 시의 세계가 되고, 코리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글자를 배운다. 글자를 배우고 글쓰기를 하는 건 코리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세상에 자신을 내보이며 소통하는 수단이 생겼음을 뜻하기도 한다.
일식이 있던 날 코리는 처음으로 캐러멜의 말을 글로 옮겨 적는다.
‘해와 다리 사랑해서 하느레서 만나지요.’
틀린 글씨가 눈에 띄지만 그 의미만은 충분히 다가온다. 그리고 이는 캐러멜의 입술을 통해 코리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코리는 캐러멜을 통해 자신을 완벽하게 투영하고 있었기에 날마다 저녁 때면 캐러멜의 입술을 읽고 받아쓴다. 그리고 그 종이를 캐러멜이 먹는 것도 이해한다. 캐러멜이 글을 읽는 방식이라고.
시간이 흘러 캐러멜은 크고 힘센 낙타가 되지만 이는 곧 코리와 작별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배고픈 난민촌에서 숫낙타는 불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캐러멜은 희생 제물로 결정이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코리는 캐러멜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광활한 사하라에서 탈출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국 코리와 캐러멜은 삼촌에게 발견되어 다시 돌아간다.
캐러멜이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날, 코리는 숨지 않는다. 도살자가 캐러멜의 목을 베었을 때 뛰어가고 싶은 마음, 도망치고 싶은 마음, 보지 않으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캐러멜 곁에 쭈그리고 앉아 캐러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모두 받아적었다.

내 생명이 꺼진다고
눈물짓지 마.
우리가 함께 산 날을 생각해.

난 죽음을 받아들였어.
난 너의 기억을 안고
하늘의 초원으로 가는 거야.

네가 사는 동안
난 항상
너와 함께 있을게.

넌 아직 알 수 없지만
네가 밤을 맞으면
너도 그것을
이해할 거야.

작은 코리, 내 하나뿐인 친구……

캐러멜은 죽었지만 평생 코리의 마음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코리가 이제는 세상과 단절된 상태가 아니라 충분히 소통을 할 수 있을만큼 성장한 것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이쯤 되고 나니 코리와 더불어 코리가 살던 난민촌이 다시 떠오른다. 광활한 사하라 사막에서 고립된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하라위족도 힘을 얻었으면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프리카 지도에서 반듯반듯 자로 잰 듯 그어진 국경선을 볼 때마다 국경선을 이렇게 그어버린, 그래서 결국 비극을 만들어 낸 사람들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생기곤 한다. 서사하라의 국경 역시도 그렇게 그어졌다.
이 책을 쓴 곤살로 모우레는 적어도 일년에 한 차례씩은 이 이야기의 배경인 사하라 난민촌을 여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 한 민족에 대한 애정 때문에 사하라위족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곤살로 모우레는 서사하라 비극의 시작이 바로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 추천사를 쓴 주한 알제리 대사의 글을 읽다보면 모로코의 잘못으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스페인이 이 지역을 모로코로부터 빼앗아 통치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코리가 캐러멜의 마지막을 지키고 입술을 읽어냈던 것처럼, 혹시 곤살로 모우레는 서사하라의 입술을 읽고 있는 것일까?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188호(2006년 11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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