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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나라 미국 이야기》(정병진.허용우 글/정수연 그림/아이세움/2004년/절판)
어린 시절, 어떠한 문제 제기도 해서는 안 되는 금기가 몇 가지 있었다. 미국에 대한 것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이란 우리의 맹방이며, 미국이 없으면 우리는 언제 북한 공산당에게 또 당할 수도 있다는 게 그 논리였다. 분단이라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겠지만 단지 그 때문이라고 하기에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금기란 원래 누구에게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깨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결국 깨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요즘엔 뉴스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반미 감정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자주 나온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가 금기시하던 미국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 대해 마냥 칭찬만 해 주는 그런 책이 아니다. 그 동안 금기시 되면서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미국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역사에서부터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미국의 모습,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 등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우리의 문제로서 미국을 바라보게 해준다.
2-3년 전만 해도 『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짓말』(평민사) 정도를 빼고는 미국의 왜곡된 역사를 다룬 책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에 관한 책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때는 요 1-2년 사이다. 이런 점에서 이렇게 미국을 정면에서 들여다보는 어린이 책이 나왔다는 건 굉장히 놀랄만한 일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들은 먼저 성인물에서 검증을 받고 난 뒤에야 어린이 책으로 나오곤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은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그 가운데 1장과 2장은 미국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장 ‘미국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에서는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를, 2장 ‘미국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가 되었을까?’에서는 양 대전을 통해서 가장 힘센 나라가 된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을 자처하며 세계를 움직이려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속에서 그 동안 우리가 교과서에서 정답처럼 알고 있던 미국의 모습이 사실과 많이 달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에서 몰려든 유럽인들에 의해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고 쫓겨나게 됐는지, 남북전쟁이 흑인 노예제 때문에 불거진 게 아니라 사실은 남과 북의 서로 다른 경제 기반에서 비롯됐고, 링컨이 남북전쟁을 불사하며 흑인 노예를 해방하려 했던 건 흑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예제 때문에 국가의 기틀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또한 양 대전을 거치고 난 뒤 세계 최고의 부와 힘을 갖게 된 미국이 소련과 대립하며 냉전 체제로 몰아간 것이 미국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라는 것, 그리고 동서 냉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은 미국의 경제를 위해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관여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미국의 오만이 9.11 테러와 같은 엄청난 비극을 부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작가의 노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미국의 역사란 게 워낙 복잡하고, 또 다른 나라와 관련된 부분이 많아서인지 중간중간엔 쉬운 말로 풀어놓긴 했지만 사실은 앞 뒤 사정이 생략되거나 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눈에 띄는 게 아쉽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귀동냥이 아닌 다음에야 어디에서 이처럼 미국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3장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서는 미국 사회에 대해 궁금해할 만한 미국의 현재 모습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은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통령을 뽑는 미국의 선거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그런데 단순히 어떻게 다른가에서 그치지 않고, 왜 이렇게 뽑는지를 연방국가인 미국의 특징 속에서 이해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미국에서는 왜 총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지를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선 누구나 총을 자유롭게 지닐 수 있기 때문이긴 한데 그렇다면 캐나다 역시 개인이 자유롭게 총을 지닐 수 있는 나라인데 왜 캐나다에서는 총기 사고가 별로 일어나지 않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원인을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찾아낸다.
이런 서술 방법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흔히 알고 있는 상식 선에서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왜?’라는 의문을 통해서 좀더 깊이, 그리고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4장과 5장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는 장이다. 먼저 4장 ‘미국은 우리나라의 친구일까?’에서는 우리와 미국의 수교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미국과 수교의 역사는 우리의 근대사와 그대로 일치되기도 한다. 이는 그만큼 미국이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우리의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미국에 대해 짝사랑만 해 왔던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미국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을 보고 우리 식으로 해석하고 믿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필리핀을 대가로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겼음에도, 그 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라는 말에 속아서 “아메리카 합중국 대통령 윌슨 씨여,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독립 선언을 받아들여 세계 여러 나라에 선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헛된 호소를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미국에 대한 짝사랑과 숭배는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의 말처럼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미국 유학의 기회를 얻었고 미국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이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에 대해, 세계 정세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게 아닐까 싶다. 미국이 친구일지 아닐지는 오랫동안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일 것이다.
마지막 5장은 ‘우리 속의 미국 문화를 생각하며’이다. 콜라, 청바지,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햄버거, 영화,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프로그램, 영어 문제 때문에 생기는 조기 유학, 주한미군의 문제까지,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조금은 먼 나라의 문제인 듯 싶었던 미국의 역사는 어느 순간 우리 역사 속에, 그리고 우리 문화 속에서 생활 속의 문제로 다가온다.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갈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있는 책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19호(2005년 4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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