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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논픽션

사계절 생태놀이

by 오른발왼발 202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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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친구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

《사계절 생태놀이》(붉나무 글, 그림/돌베개어린이/2005년)

*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나눈 책도 있습니다!*

 

 

흔히 ‘자연’ ‘생태’라는 말이 나오면 보통의 일상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숨쉬는 공기, 발을 딛고 있는 땅, 도로 변의 가로수, 화단에서 자라는 식물들……, 그 어느 것 하나 자연의 품을 떠나 있는 것은 없다. 하다못해 우리 사람들까지도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자연’ ‘생태’라고 할 때 떠올리는 것들이다. 잘 가꿔진 숲과 호수, 그리고 그 속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이거나 도시가 아닌 깊은 산촌의 모습, 혹은 ‘동물의 왕국’ 시간에 나온 동물들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 기껏 생각해내는 건 아이들과 동물원에 가서 사자, 호랑이, 곰, 뱀, 원숭이 같은 동물을 보여주는 게 다라고 여기기도 한다. 아니, 우리 주변의 자연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우리 주변의 자연이란 그 한계가 분명하다고 여기곤 한다.

도감 이상의 효과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면 생각이 좀 바뀌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체계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도감도 아니고, 심각하게 자연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생태환경의 중요성 같은 건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그저 우리 주변에 있는 자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재미나게 놀 수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아! 이런 게 다 놀이가 될 수도 있구나. 정말 재밌겠다’ 하며 책장을 들추다 보면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자연의 모습을 불쑥불쑥 만나게 된다. 놀이를 위해서 이것 저것 필요한 정보를 익히는 과정은 도감 이상의 큰 효과가 있다.

흔히 밖에 나갈 때 도감을 들고 나가지만 도감을 보고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식물의 이름을 찾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식물에 초점을 맞추고 그 특징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제비꽃의 경우 꽃의 색깔도 다르고, 줄기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또 잎사귀의 모습도 다 다르지만 왜 같은 제비꽃이라고 말하는지를 쉽게 보여준다. 반면 소나무처럼 가시잎을 갖고 있는 곰솔이나 잣나무 등을 가시잎이 몇 장인지를 통해서 구분할 수 있게 해 주고, 서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신갈나무와 떡갈나무의 나뭇잎의 모양도 단숨에 구별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 각각의 차이와 공통점을 한눈에 살펴나가다 보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곰실곰실 일어난다. 전문적인 도감도 필요하겠지만, 이제 마음을 먹고 생태 체험을 나선 이들에겐 도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반적인 도감이 대상을 다루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연이랑 노는 법

이 책에는 1년 12달 내내 즐길 수 있는 생태놀이가 가득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그 계절에 따라 그 계절에만 해 볼 수 있는 놀이다. 봄에는 나물을 뜯으면서, 여름엔 무성해지는 나뭇잎을 가지고, 가을엔 갖가지 열매를 가지고, 겨울에는 나무 껍질로 논다. 또 우리 주변의 벌레는 얼마나 많은지. 봄에는 봄에 볼 수 있는 벌레들을 우선 만나고, 여름이면 시원한 냇가에서 벌레들을 만나고, 가을이면 흙속에 숨어 있는 벌레를 만나기도 한다. 겨울이면 산새와 들새들의 겨울나기를 보면서, 혹은 겨울 철새를 떠나보내면서 놀이를 즐긴다. 계절마다의 특색이 살아있다. ‘정말 이렇게 놀 것이 많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 때로는 갖가지 나물요리에 화전도 만들고 또 진달래 화채도 만드는데 이럴 땐 요리 역시도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뭇잎으로 가면을 만들어 써보기도 하고, 나뭇잎 배를 접어서 물 위에 띄워 보기도 하고, 벌레를 잡는 과정 자체도 즐거운 놀이다. 밖에 나가서뿐 아니라 집에 돌아와서도 놀이는 계속된다. 돌멩이나 철사, 열매, 휴지 같은 걸 이용해서 벌레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색종이로 나비나 물고기를 접어볼 수도 있다. 때로는 민들레나 제비꽃 같은 걸 캐와서 직접 키워보거나 물고기나 벌레를 집에서 길러볼 수도 있다. 물론 더 이상 키울 수 없을 땐 아무 데나 풀어주면 안 된다는 전제 하에!

자연,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놀이’가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자연이나 환경의 소중함 같은 걸 소리 높여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주변에 있는 놀랍도록 풍성한  자연의 모습을 깨닫게 되고, 이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운다.

‘흙에서 놀자’에서는 두꺼비 집 짓기, 흙 덜어내기, 흙 그림 그리기 같은 흙놀이와 함께 흙 속에 사는 벌레를 잡아서 관찰해 보기도 한다. 그 속에는 그동안 우리 눈에 띄지 않던 아주 작은 벌레들이 그득하다. 때로는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돋보기로 관찰을 해야할 정도로 작은 벌레까지. 흙 속에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신비로움과 함께 우리가 그저 눈에 띄는 것들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곤충 흔적 수집 또한 의미있다. 흔히 곤충에 관한 책에는 채집에 대한 방법을 전문가 수준에서 설명해주는데 반해 이 책에서는 곤충 채집 대신 곤충 흔적 수집을 제안하고 있다. 곤충 흔적 수집이란 곤충이 탈바꿈을 할 때 벗은 허물, 사체, 곤충이 먹은 나뭇잎, 나뭇가지에 달린 벌레혹 같은 걸 수집하는 것이다. 폼이야 좀 덜 나지만 이 방법이야말로 자연 속에서 곤충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붉나무

이 책을 쓰고 그린 이는 ‘붉나무’다. 붉나무는 아빠 강우근, 엄마 나은희, 그리고 두 사람의 아들 강나무와 강나단 한 가족의 이름이다.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는 아빠와 어린이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엄마, 그리고 생태놀이를 즐기는 두 아이가 함께 만든 책인 셈이다.

월간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되었던 걸 묶어 낸 책으로 훌륭한 도감이자, 놀이책이고, 또 환경책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책 한 권이면 누구나 이 책에 실린 놀이에 빠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래서 때로는 풍성한 놀이가 너무 빽빽하게 담겨 있어 숨이 가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놀이에 빠지면 숨이 가쁠 정도로 노는 아이들과 닮아있다고 여기고 싶어진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27호(2005년 8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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