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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논픽션

초등학생을 위한 맨 처음 한국사 1-3

by 오른발왼발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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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만화의 가능성을 열다!

《만화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3》(전국역사교사모임 원작/윤종배 글/이은홍 그림/휴머니스트/절판)

《어린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3》(전국역사교사모임 원작/윤종배 글/이은홍 그림/휴머니스트/절판)

《초등학생을 위한 맨 처음 한국사 1-3》(전국역사교사모임 원작/윤종배 글글/이은홍 그림/휴먼어린이)

 

* 세 권은 모두 같은 책입니다. 출간 순서는 왼쪽부터 차례대로 입니다.* 

 

이 책은 만화로 만든 우리 역사책이다. 그렇다면 학습만화? 그냥 겉으로만 보자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학습만화라고 하기는 좀 곤란하다. 다른 학습만화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할 목적으로 쓰여진 모든 학습만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들 학습만화는 내용이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복잡한 지식을 쉽게 전달해주는 건 좋지만 마치 생선 뼈 바르듯이 다 발라내고 살의 일부만을 건네주고 이 생선이 무슨 생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아이들은 이 생선 맛은 대충 느끼지만 그 생선의 모습을 그려낼 수도 없고, 또 이렇게 받아먹는데 익숙해져서 그냥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만다.
문제는 이런 책들이 굉장히 인기가 많다는 사실이다. 학습만화는 단권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여러 권으로 나오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한번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면 순위를 싹쓸이하다시피 하기도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는 많은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보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아니, 학습만화를 보지 않는 아이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요즘에는 지식책뿐 아니라 문학 작품까지, 거의 모든 책들이 학습만화로 나오면서 바야흐로 학습만화의 천국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만화로 재미있게 보면서 뭔가 지식도 얻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학부모들은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특하고, 출판사는 이런 현상을 이용해 모든 걸 학습만화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봤을 땐, 또 하나의 학습만화가 나왔구나 하고 말았다. 그나마 이 책을 펼쳐들게 했던 건 『역사야, 나오너라』(푸른숲)에서 우리 역사의 모습을 아이의 현재 상황을 통해서 보고 느끼게 해줬던 이은홍에 대한 믿음과 이 책의 원작인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2』(휴머니스트)가 갖고 있던 실험정신과 진지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을 펼쳐들고 나자,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학습만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학습만화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들을 바꿔야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결국 몇 달간을 학습만화에 대한 고민을 싸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은 다른 학습만화와 이 책을 '만화'라는 형태만으로 학습만화의 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학습만화는 학습, 즉 공부라는 개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당장의 효과를 위해서 지식은 단순하게 가공되고, 단순한 정보로 남은 지식은 아이들의 관심을 잡아끌기 위해서 과장된 만화로 포장된다. 당연히 책의 호흡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책을 보면서 생각할 거리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지식책으로 분류하는 역사를 만화로 구성했지만 학습만화와는 달리 만화라고 해서 내용을 생선가시 발라내듯이 몇몇 장면을 중심으로 사건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면서도 과거의 역사를 알아가는데 멈추는 게 아니라 역사를 지금의 '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게다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책을 보면서 그냥 지식을 습득하고 마는 게 아니라 어떤 입장이 올바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이 책의 원작인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2』보다 더 쉽게 접근하면서도 어떤 면에서 보자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더욱 깊다. 결국 나는 이 책을 학습만화와 구별해서 '논픽션 책의 서술방식의 하나로써 만화라는 양식을 이용한 책'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주인공이 있다. 5학년  한솔이가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한솔이 가족인 할아버지와 부모님, 누나가 나온다. 또 한편으론 학교 선생님과 반 친구들도 나오고 한솔이 이모도 등장한다. 이야기는 한솔이가 역사를 알아보기로 결심하면서 시작한다. 이렇게 결심을 하는 과정 속에서 역사라는 게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고, 또 역사를 안다는 게 단순히 위인들 몇 사람을 안다고 해서 알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한솔이의 역사 공부는 집과 학교에서 함께 이루어진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수업을 중심으로, 집에서는 예습을 하거나 여행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한 만화의 특성을 맘껏 살려서 때로는 역사 속의 인물이 나와서 그 시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나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처럼 논쟁 거리가 있을 때에는 당시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던 인물들이 나와서 자기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라 말기에는 최치원과 최승우, 최언위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당나라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붙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인물이다. 최치원은 당시 혼란스럽던 통일신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책들을 펴냈고, 최승우는 골품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며 견훤의 밑으로 들어가 후백제를 이끌었고, 최언위는 고려가 세워진 후 태자의 선생님이 된다. 그리고 당시의 처지를 이렇게 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본 뒤 "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여러분이라면 이 세 최씨들의 길 가운데 어떤 길을 택했을까요?"하고 묻는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 인물의 각기 다른 길 가운데 한 길을, 혹은 또 다른 길은 없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단순히 그 시대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현실로 이어져서 순간 순간 자신의 삶이기도 한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판단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의 미덕 가운데 또 하나는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나라는 늘 외적의 침입 때 적은 군사력으로 외적을 물리쳤다고 하는데 실은 귀주대첩 당시 거란군 10만명을 맞서 싸운 군사 수는 뜻밖에도 20만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또 무신의 난 당시 천민 출신으로 정권을 잡았던 이의민의 경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이의민의 존재는 "왕과 장수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외친 만적에게로 이어져 신분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이의민에 대해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해주기도 한다.
또 때로는 고려 시대 여자 호주의 호적을 보여주면서 오늘날 남성위주의 호주제는 일본이 만들어 놓은 엉터리 전통이라는 걸 확인시켜 주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은 때론 교실에서, 역사의 현장에서, 또 아이들이 꾸미는 텔레비전 뉴스 진행 방식으로 다양하게 주제에 접근하지만 결코 허튼 곳으로 빠지지 않는다. 정말 반가운 책이다. 내용 면으로도 그렇지만, 학습만화가 아닌 논픽션의 새로운 방식으로서 만화의 가능성을 열어제친 소중한 책이다.

 

 

- 이 글은 2005년 3월 20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격주간지《기획회의》 17호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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