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어디로 갔을까》(이상권 글/유진희 그림/창작과비평사/절판)
《똥이 어디로 갔을까?》(이상권 글/권문희 그림/현암주니어)
1.
눈물이 찔끔 났다. 너무 웃기고 재밌어 마구 웃음이 나오다가도 찔끔 나고, 그러다 갑자기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며 또 찔끔 났다. 그리곤 기분이 유쾌해졌다. 뿌듯해졌다. 반가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이런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기는 정말이지 흔치 않은 일이다. 빨리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랑 같은지를. 그래서 주위 여러 사람에게 책을 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어쩌다 전화를 하며 이 책 이야기가 나오면 '어땠어?'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가슴을 졸이며 들었다. 마치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과, 대체로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사람의 반응이 좀 시원찮았던게 걸리지만……그러면 어떠랴. 작품에 대한 감상은 저마다 다를 수 있으니 강요할 순 없지 않은가!
2.
이 책은 저학년 동화다. 사실 그래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저학년이 읽을만한 좋은 창작동화가 너무나 부족한 현실에서 그야말로 단비 같았다. 여기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가 어느 것은 1학년이 읽기에도 충분하고, 또 어떤 이야기는 3학년 정도가 읽을만 하기도 하지만 또한 모든 이야기가 어떤 아이들이 읽어도 재미있어할만 하다.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것 가운데 하다가 바로 '똥'이라는 일관된 주제이다. 표제작인 <똥이 어디로 갔을까>부터 <아빠의 똥 이야기>, <똥 먹는 개>, <똥개 생각>, <개똥 참외>까지 일단 제목만 봐도 '똥'이 안 들어가는 작품이 없다.
'똥'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아이들은 '똥'이나 '방귀' 얘기는 무조건(!) 좋아한다. 하긴 이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대개 어른들도 '똥' 이야기를 하면 '아이∼' 하며 눈쌀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얼굴에 웃음을 띄곤 한다. 모두 '똥'이 더럽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똥'을 못 누면 병이 나고, 건강하게 살려면 '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똥'이 안 좋으면 걱정들을 한다. 특히 엄마들은 아기의 똥 기저귀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고 심지어 만져보기도 한다. 아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똥'은 이렇게 건강과 관련되서만 생각되는 게 보통이다. 언제부턴가 '똥'은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거라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수세식 변소를 사용하는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똥'말고는 볼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니 '똥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라고 물으면 아마도 '정화조'라고 대답하는 게 보통일 것이다.
이 책은 '똥'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똥'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똥이 어떤 과정을 통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지도 볼 수 있고, 똥이 거름도 되고, 약도 되고, 다른 짐승(개)의 먹을 거리가 되기도 하고, 또 똥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그저 더러운 걸로만 느껴지던 똥은 어느듯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와 하나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이 생각났다.
3.
표제작인 <똥이 어디로 갔을까>은 똥에 대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단후가 눈 똥을 본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다. 유치원 아이들, 언니 오빠, 아주머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례로 나타나는데 그 반응을 견주어 보는 맛이 재미나다. 유치원 아이들은 냄새만 맡고도 사라지고, 언니 오빠들은 거의 똥 가까이 와서 놀라 달아난다. 아주머니들은 단후의 똥 옆에 앉아서 과일까지 먹은 뒤에야 똥을 발견하고 도망간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좀더 느긋해 보인다. 할아버지는 단후의 똥을 보며 '귀엽다'고까지 한다.
다른 하나는 단후의 똥이 흙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인데, 똥파리, 집파리, 말벌, 쇠똥구리, 노래기, 개미, 버섯이 등장하며 그 과정을 빠르게 보여준다. 자연의 위대한 정화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쉬움이라면 이 두가지 이야기가 좀 어정쩡하게 결합되어서 처음엔 좀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빠의 똥 이야기>는 아빠가 어릴 적 있었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똥통에 빠진 동수 아저씨', '똥 때문에 부지깽이로 맞은 일', '그럼, 똥술 가져온다'는 3편의 작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앞에 '맛보기'라 해서 가장 유명한 옛날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 할머니가 할아버지 똥을 된장으로 국을 끓인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맛보기'일뿐이고 진짜 이야기는 그 뒤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아빠의 똥 이야기는 아련한 옛날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모두 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인데, 똥통에 빠졌다 겨우 살아났는데 그 뒤부터 키가 안 자랐다는 동수 아저씨 이야기나, 이웃 집에 가서 똥을 눴다가 똥을 애지중지하는 할머니한테 부지깽이로 얻어맞는 이야기, 또 아이들 똥이 가장 좋은 약이라 믿고 쓰는 할머니와 그걸 보고 기겁을 하곤 했던 이야기. 이야기마다 지금은 사라진 시골의 모습과 똥을 귀중히 여기는 조상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똥 먹는 개>는 강아지 똥을 먹는 개를 보고 더럽다고 여기는 단후와 엄마의 대화가 중심이다. 단후가 작가 이상권의 아이기 때문에 늘 지켜봤기 때문일까? 단후가 엄마에게 묻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아이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소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드는 엄마의 모습을 상큼하게 상쇄시켜 준다. 그리고 단후는 엄마의 친정한(!)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개가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피한다. 아이다움이 느껴진다. 이 작품이 살아남은 건 아무래도 단후 덕인 것 같다.
<똥개 생각>은 가슴이 찡해오는 그런 이야기다. 아이들이 똥이 마려울 때마다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찾아와서 아이들 똥을 말끔히 먹어 치우고 똥구멍까지 혓바닥으로 깨끗하게 핥아주는 똥개 벅구와 아이들의 모습이 재밌다. 어느 아이나 똑같이 겪는 일이지만 아이들은 벅구와의 일은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는다. 서로의 비밀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서로 어색하면서도 쑥스러운 모습을 짓기도 한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벅구가 똥구멍을 닦아줄 때의 느낌과 비밀스러움은 어느 아이라도 다 기분좋은 추억이리라.
그런데 어느 날 밥상에 올라온 고깃국이 문제다. 동네 사람들이 벅구를 잡아 나누어 먹은 것이다. 고깃국 속에 든 고기가 벅구란 걸 안 순간, 그걸 먹을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이제 아이들은 동네 개들에게 똥을 못 먹게 하느라 난리다. 동네 개들은 점점 야위어 가고. 어른들은 그 까닭을 모르지만 아이들은 안다. 벅구와의 소중한 추억을 깨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개똥 참외>도 시골의 정겨운 표정과 함께 아이들다운 행동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다. 학교에 가는 길에 똥을 밟아 졸지에 '똥쟁이'란 별명을 갖게 된 시우가 성동이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성동이네 울타리 밑에 있는 개구멍에다 속이 후련하게 설사를 하는데, 성동이는 그 똥을 밟지도 않고, 오히려 그 똥에선 참외 순이 나와 성동이네 집엔 참외가 주렁주렁 열린다. 억울한 시우는 성동이가 없는 날 밤, 참외를 따려고 개구멍에 손을 넣지만, 잡힌 건 '똥' 뿐이다. 속상해진 시우는 침을 뱉으며 돌아서서 외친다.
"에이, 더러워, 퉤, 냄새 나는 참외야, 거저 줘도 안 먹는다아!"
시우의 감정 변화가 재미있다.
4.
'이야기꾼'이란 말이 떠오른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사람은 구수하고 재밌게 잘 풀어가는데, 어떤 사람은 똑같은 이야기를 정말 썰렁(!)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야기꾼이란 말을 하는 것 같다. 이야기꾼은 같은 이야기라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처음부터 타고난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터득되고, 또 점점 기술도 발전하게 된다.
이상권은 '이야기꾼'이라 할만 하다. 천연덕스럽게 옆에 있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상권도 처음부터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 단후를 키우면서 이야기꾼의 기질도 더 잘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에게 들려주며, 아이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 그런 느낌이다.
앞으로 단후에게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면 들려줄수록 더 좋은 작품들도 많이 나올 거라는 기대가 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사람만이 진짜 아이들의 맘을 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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