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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신통방통 왕집중

by 오른발왼발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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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억압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성숙한 모습

《신통방통 왕집중》(전경남 글/김용연 그림/문학동네어린이)

 

 

 

"왕집중, 공부!"
하고 외치기만 하면 아이들이 꼼짝 않고 공부만 하는 그런 약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이 약이 공부에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 바라는 거라면 뭐든지, 청소나 심부름…… 그 어떤 거라도 외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더욱더!
어른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생각일 뿐, 아이들 생각은 다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뭐든지 어른들 생각대로만 자신을 움직이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은 여기서부터 서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어른들은 아이가 잘 되기 위해서 뭐든지 남들보다 잘 하기를 바라며 뺑뺑이로 학원을 돌린다. 무조건 책을 보며 책상에 앉아있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사회 관계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때론 일탈을 꿈꾼다.

이 책은 네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5월 5일」은 어린이 날이어서 더 슬픈 아이의 이야기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엄마는 일을 하느라 동생을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겼다. 줄거리만 본다면 새로울 게 하나 없다. 하지만 새로움이 느껴진다. 슬픈 이야기지만 슬프게만 느껴지지도 않는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발견해내는 섬세함 덕분이다.
「뒤로 걸은 날」, 「살려줘, 제발」, 「신통방통 왕집중」은 부모의 통제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이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뒤로 걸은 날」에서 민구는 뒤로 걷는다. 얼굴을 향해 불어오는 찬바람 때문이라고 하지만 엄마 아빠가 나가버리라고 하는 바람에 나와서 그렇게 된 거니 일종의 반항이랄 수 있다.  
「살려줘, 제발」은 집에 가자마자 피아노, 미술 등으로 이어지는 학원 스트레스를 겪는 아이의 이야기다. 하나라도 빠져볼까 하는 아이의 소박한 마음은 그대로 쥐에게 투사된다. 쥐를 잡으려는 아이들을 피해 쥐가 써 놓은 희미한 흔적은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다.
「신통방통 왕집중」은 압권이다. 아이들을 어른들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은 욕망은 '신통방통 왕집중'이라는 약을 만들지만 그게 진짜 효과가 있을까? 아이에게 먹이려던 약을 대신 먹게 된 엄마는 아이 말대로 공부만, 치료만, 청소만 할뿐이다. 집중해서 뭔가 해내는 것 같지만 허상일 뿐이다.
한바탕 난리 끝에 모두 제자리를 찾는다. 아이는 집에 들어오고 엄마는 제 모습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한층 성숙해진다. 「신통방통 왕집중」의 마지막 장면, 엄마는 이번엔 하루에 3시간만 자면서도 8시간의 놀라운 수면 효과가 있다는 '노8 예스3'을 사게 될 듯하다. 하지만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엄마 마음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 이 글은 2004년 8월 20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격주간지《기획회의》 3호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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