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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무기 팔지 마세요!

by 오른발왼발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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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팔지 마세요!》

(위기철 글/이희재 그림/현북스)

 

1.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이 사용한 열화우라늄탄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열화우라늄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면서 말이다. 열화우라늄탄이란 원전 연료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열화우라늄을 사용해 만든 폭탄이다. 즉 원자력 발전소에서 쓰고 남은 핵폐기물을 재활용(?)한 첨단 무기이다. 핵폐기물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래서 얼마나 엄격하게 관리를 하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이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열화우라늄탄이 처음으로 사용된 전쟁은 91년도 걸프전쟁이다. 미국은 걸프 전쟁 때 열화우라늄탄의 막강한 위력을 인정받아서 전 세계에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걸프전에 참가한 군인들 사이에는 ‘걸프증후군’이라는 정체불명의 병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전쟁 당시 죽은 미군의 수는 얼마 안 되지만 ‘걸프증후군’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기형아가 될 확률은 더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문제는 점점 겉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해 미국으로부터 열화우라늄탄을 구입한 나라들, 또 열화우라늄탄을 자체 개발한 나라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문제를 전혀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는 눈에 확연히 보이는 열화우라늄탄의 놀라운 성능이 먼저 들어오고, 이 무기를 사용해 얻을 수 있는 전쟁의 가능성, 또 전쟁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각종 이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와 그 이후에 발생할 다른 문제점들은 보지 못하게 눈을 가려버리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눈을 감아버리는 것일 터이다.
무기란 전쟁에서 상대에 힘을 가해 승리를 얻어내기 위해서 쓰이는 물건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을 통해 그 성능을 인정받은 무기는 그때부터 시장성을 갖는다. 한 나라에서 가공할 무기를 가지면 이를 꺼리는 다른 나라들도 그 무기를 다 가져야 한다. 그래서 무기 시장이 형성된다. 그 무기 시장의 주축은 당연히 처음으로 그 무기를 생산한 국가다. 그러다보면 처음 무기를 생산한 국가는 그 무기의 경쟁력 덕분에 경제 체제가 무기 생산 산업을 중요한 축으로 삼게 되고, 또 새로운 무기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면, 바로 그 무기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쟁을 일으키곤 한다. 이렇게 만든 전쟁으로 무기를 시험하고, 무기를 팔아먹고, 전쟁에 이긴 대가로 경제적인 이권을 챙긴다. 이래저래 부는 몰리고 세계의 중심이 되고 만다. 그리곤 말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악의 축을 물리치겠다고.

2.

이 책은 감히 그 무서운 ‘무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처음 출발은 진짜 무기는 아니다. 일명 ‘비비탄’이라 불리는 장난감 총으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요즘엔 한풀 꺾였지만 한동안 이 비비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었다. 콩알보다 더 작은 하얀 플라스틱 총알이 바로 비비탄이다. 총은 이 비비탄을 장전해 쏘는 건데 명중률도 좋지만 총알 퉁겨 나가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래서 맨살에 맞으면 아프기도 하지만 혹 잘못해서 눈 같은 데 맞기라도 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한다. 또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 나에게 총을 겨누고 그 총알을 맞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총 모양도 실제 총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처음 이 총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비비탄총을 들고 강도짓을 벌이고, 이걸 보고 속아 넘어가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 책도 보미가 비비탄에 이마를 맞으면서 시작한다. 화가 난 보미가 비비탄을 쏜 경민에게 따졌고, 마침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이 교실 바닥에 떨어진 비비탄을 발견하면서, 보미는 경민이와 남자아이들의 적이 되고 만다. 남자아이들은 보미는 물론 보미와 노는 아이들에게까지 비비탄을 발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보미는 처음엔 남자아이들이 학교에서건 밖에서건 총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총을 가지고 노는 일이 왜 나쁜 일인지는 생각지 못하고, 다만 그저 못된 악당 녀석들한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총을 학교 안에서건 밖에서건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근거가 필요했다. 총을 가지고 노는 건 나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 사실을 빤히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보미의 문제 의식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결국 보미는 ‘전쟁은 놀이가 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벽보를 붙이고, ‘무기 수거함’을 만든다. 보미와 민경이가 시작한 일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평화 모임’으로 알려지고, 함께 일을 하자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3.

그런데 장난감 총하고 무서운 무기와는 무슨 상관일까? 혹시 너무 지나친 비약은 아닐까? 옛날부터 전쟁놀이는 늘 있었는데……. 그럼 전쟁놀이를 안 하면 이 세상에 전쟁은 사라지는 걸까?
 이 책이 아이들다운 발상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장점은 인정하지만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그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다. 옛날에는 막대기 하나가 칼도, 총도 되고…… 모든 게 됐다. 그땐 지금처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놀이는 대개 놀이로 끝났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엔 모든 장난감이 실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자기가 가지고 놀던 무기 장난감과 똑같은 걸 전쟁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서 또 다시 만난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도시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며 불꽃놀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 무기와 똑같은 무기의 활약에 반가워하고, 그 전쟁 속에서 돋보이는 또 다른 무기를 장난감으로 갖고 싶어 한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문의 한 기사는 분당의 대형 할인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가 부모에게 이라크전에서 본 아파치 헬기가 멋있어 갖고 싶다며 떼를 쓰고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렇게 전쟁에서 성능을 과시하며 새로운 상품으로 등장한 무기는 바로 아이들 장난감이 돼 새로운 상품으로 아이들 곁으로 다가온다.
무기를 통한 세계 경제 질서나 무기를 장난감으로 만들어서 돈을 버는 거나 기본 경제원리는 똑같은 셈이다. 당장이라도 그 위력을 발휘해 전쟁에서 상대를 물리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만 다를 뿐이다.
맞다. 그러고 보니 보미가 민경이랑 진만이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주고받은 말이 떠오른다. 보미가 수류탄을 든 사람이 지하철에 탔을 때의 예를 들었을 때, 진만이 어머니 말을 이어받아 민경이가 했던 말 말이다.

  “수류탄은 코앞에 닥친 문제이고, 장난감 총은 한참 뒤에 일어날 문제야.”

확실히 무기는 코앞에 문제고, 장난감 무기는 한참 뒤에 일어날 문제다. 무기는 당장에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장난감 무기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은 전쟁을 당장 일으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문제는 언제 일어나느냐 하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인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당장 문제가 될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열화우라늄탄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 문제도 안 일어난다고 하는 것처럼.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된 고엽제가 당시 아무런 해가 없다고 말하던 것처럼. 다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에만 정신을 놓고 있다.

4.

결국 보미가 막았던 건 무기 장난감에만 한정되는 건 아닌 셈이다. 작가는 이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야기를 크게 두 갈래로 잡아 전체에서 앞부분은 보미 이야기로, 그리고 뒷부분은 미국의 제니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 책의 2부라고도 할 수 있는 제니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제니는 발표 숙제 준비를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사진 한 장을 보게 되는데 그 사진 설명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한국 평화모임 어린이들이 “무기 팔지 마세요!”라고 적은 푯말을 들고 가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물론 보미가 푯말을 들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보미가 말한 무기란 장난감 무기를 뜻하는 것이지만 진짜 무기가 판을 치는 미국에 사는 제니는 여기서 말하는 무기가 진짜 무기로 알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두 나라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일종의 해프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학교 총기 사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제니는 무기를 팔지 말자고 나선 보미의 용기에 감동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주제 발표를 멋지게 한다. 그리고 이날의 성공적인 발표 덕에 어른들의 모임에서도 발표를 하고, 무기 판매를 반대하는 어른들과도 만나게 된다.
이후의 과정은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이야기를 빌어가며 진행되는데, 그 덕에 무기 산업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미국 사회의 본질이 우화의 성격을 띄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예를 들면 제니의 아버지는 은행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그 은행에 큰돈을 맡긴 고객들은 대부분 ‘무기자유협회’랑 관련이 되어 있어 제니의 활동으로 아버지가 은행을 그만두게 된다거나 하는 식이다. 결국 제니는 “무기 팔지 마세요!”라는 푯말을 든 보미의 모습에 힘을 얻어 ‘진짜 엄마’에게 늑대의 횡포를 알려 준 막내 염소가 된다. 그리고 막내 염소들은 늑대 손 가려내기 운동을 한다.
늑대 손 가려 내기 운동!
이건 말로는 평화를 말하며 정의의 수호자로 나서지만 그 뒤에서는 무기 산업으로 부를 축적해나가며 약한 염소들을 잡아먹는, 겉과 속이 다른 늑대를 막아내기 위한 기본이자 본질을 꿰뚫는 운동이다. 그러고 보니 책의 표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염소들은 바로 늑대 손을 가려내는 진짜 엄마와 막내 염소다.
아마 손에 밀가루를 묻히고 선량한 척하는 늑대가 남아있는 한 늑대 손 가려 내기 운동은 미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계속될 듯 싶다.

5.

이 책은 무겁고 어려운 주제인 전쟁을 재미있고 쉽게 썼다. 그 까닭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능력 덕분일 게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으면서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문제 해결을 향해 하나 하나 앞으로 나아가는 전개는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물론 한계도 있다. 특히나 보미의 문제 의식이 바뀌는 과정은 무리한 부분이 있다. 갑자기 같은 작가의 작품 《반갑다 논리야》가 눈앞에 펼쳐진 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또 모든 일이 걸림돌 하나 없이 다 이루어지는 것도 현실감이 조금은 떨어지는 듯 하다. 그래도 난 이 책을 주저 없이 권하고 싶다. 읽는 사람을 충분히 설득할만한 힘이 이 책에는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재미있는 기사를 봤다. 이 책에 실린 것처럼 진짜로 무기 수거함이 등장한 것이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상임대표 문규현) 주최로 무기 장난감 버리기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탱크, 총, 전쟁 게임 시디 따위 전쟁과 관련된 장난감을 가져오면 평화의 상징인 꽃과 책, 학용품으로 바꿔주는 행사다. 평통사는 94년부터 무기도입저지운동, 평화군축운동 따위를 전개해 온 곳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번 행사만큼 그 운동의 의미가 어린이들에게까지 잘 전달된 행사는 없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어린이들이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장난감 무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담 우리는 전쟁은 끝나도 이 땅에서 무기가 사라질 때까지, 평화가 올 때까지 “무기 팔지 마세요!”라는 계속 외쳐야 하는 게 아닐까?

무기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쓰레기!
몽땅 가져와서 여기에 버리세요!

 

- 이 글은 2003년 4월 24일 어린이도서연구회 출판문화위원회에서 주최한 월례강연 '동화로 보는 전쟁 이야기'에서 발표한 발제글입니다. 발표 당시, 이 책은 청년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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