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문화 • 인물 논픽션의 시각 자료에 대하여
이 지 수(ibooknet@hanmail.net)
1. 시각 정보의 중요성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만한 이야기가 있다. 선덕여왕과 모란꽃에 얽힌 이야기 말이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아직 공주였을 때였다. 당나라 태종이 예물로 홍색, 자색, 백색의 모란꽃 병풍과 함께 그 씨앗 석 되를 보내왔다. 진평왕이 덕만 공주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자 공주는 모란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말하였다. 계절이 바뀌어 궁전 뜰에 심은 모란꽃이 피었는데 과연 향기라곤 없었다고 한다.
선덕여왕이 죽기 전, 신하들이 왕에게 어떻게 모란꽃에 향기가 없는가를 아셨는지를 물었다. 이에 선덕여왕은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하고 답하였다. (『삼국유사』기이편,『삼국사기』신라본기 중 선덕여왕 부분 요약정리)
선덕여왕은 그림만으로 모란꽃의 특징과 함께 그 그림에 숨은 뜻까지도 알아냈다. 이처럼 그림이 때로는 웬만한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논픽션 책에서 그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각 자료의 중요성을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바로 이 이야기였다. 제대로 된 그림 하나가 글과는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실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책이 어린이 논픽션 책일 경우 시각 자료는 지식을 더욱 폭넓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사진이나 그림 자료가 갖는 의미는 더 크다. 때론 수많은 글보다 하나의 시각자료 이미지가 아이들의 인식에 큰 영향 끼치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린이 논픽션 책에서 이들 시각 자료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니, 어쩌면 논픽션 책들의 시각 자료들은 사람들 관심의 밖에 놓여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실 여부를 가리면서도 시각 자료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논픽션 책들의 시각 자료들은 때론 글에 그 내용이 있으면 이에 해당하는 비슷한 사진 자료를 기계적으로 가져다 쓰기도 하고, 그림의 경우 표현해야 할 대상에 대한 충분한 자료 조사도 없이 멋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엉뚱한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이렇게 될 때 아이들에게 시각 자료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지 의문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각 자료로 보이거나 사실에 대한 왜곡으로 인해 잘못된 지식을 습득할까 우려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시각 자료를 바탕으로 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 나오는 책들은 물론 이전에 나왔던 책들도 ‘개정판’으로 다시 나오며 사진과 그림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시각 자료에 익숙한 아이들 취향에 맞추려는 의도 때문이겠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각 자료가 발굴되고 인쇄기술, 비용면에서 제한받던 요소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각 자료는 그 비중만 높아졌을 뿐 질적인 차원에서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시각 자료의 활용도는 높아졌는데, 작가와 출판사 모두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 없이 알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이렇게 시각적인 자료들이 있기만 하면 만족하고 보게 될 것이라는, 아이들을 얕보는 태도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논픽션 책에서 시각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제부터라도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까지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2. 그림
옛이야기책의 경우에는 그림의 사실성이나 고증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옛날 호랑이가 담배피던’ 먼 옛날이 아니더라도 이야기가 중심적인 구조를 갖기 때문에 그림은 정보로서의 성격보다는 이야기의 전개를 지원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옛날이야기 책의 주된 시대적 배경은 그냥 ‘옛날’일 경우가 많다.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고 옛날이야기의 그림들을 대충 그린다거나 쉽다는 뜻이 아니라 그림의 성격이 서로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이다.
역사.문화, 인물 논픽션의 경우 시대적 배경이 뚜렷하고 역사적 사실을 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림이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과학사를 주제로 하는 그림은 과학기기의 모양뿐만 아니라 작동원리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림이 잘못 표현되기도 한다. 살아보지 않은 과거를 그린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작업과정에서 오로지 그림작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글작가나 출판사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는 문제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그림 문제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 되는 것이 전문작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역사물의 그림은 상당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한두 번의 답사나 사진 몇 장으로 그려내기는 어렵다. 지금부터 역사, 문화, 인물의 논픽션 그림에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지 몇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가) 함정에 빠진 그림
『장영실』(산하, 2002)의 57쪽에는 동헌 앞 마당에 꿇어앉은 장영실의 모습이 보인다. 문제는 ‘동헌(東軒)’이라고 쓴 현판이다. 동헌은 지방관이 공식 업무를 집행하는 건물을 일컫는 말이지만, 동헌의 당호(堂號)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림과 같이 동헌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지 않다. 동헌의 당호는 백성을 잘 다스리고 보살피고자 하는 유교적 이념을 담고 있는데, 청녕헌(淸寧軒-충주, 태인), 양민당(養民堂-곡성), 근민헌(近民軒-청주)등이 그 예이다.
동헌은 많은 이야깃거리의 무대이기도 하다. 춘향이 잡아다가 수청을 들라고 강압을 하던 곳도 동헌이고 암행어사가 출두하여 못된 사또의 죄를 다스리던 곳도, 백성들이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던 곳도 동헌 앞마당이다.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함정에 빠진다. 별 다른 생각 없이 당연히 동헌이라고 써넣었겠지만, 서울의 숭례문을 우리가 흔히 남대문이라고 부른다고 그림에서도 남대문이라고 써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그림을 하나 더 살펴보자.『다시 쓰는 이야기 한국사 1』(꿈소담이, 2002)의 201쪽을 보면 세종이 집현전에서 늦게까지 책을 보다 잠든 신숙주에게 곤룡포를 덮어주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곧이곧대로 해석해본다면, 세종이 신숙주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장면이 된다. 왜냐하면 곤룡포와 곤룡포에 새겨진 용은 왕의 상징으로 어느 누구와도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옷이 신분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물론 브랜드나 차림새가 그 사람을 나타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로지 황색 옷을 황제만 입을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과 지위에 따른 엄격한 차별이 있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있었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에는 옷의 의미가 지금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결과이다.
게다가 글에는 ‘털옷’을 벗어 덮어준다고 되어 있다. 이전에도 곤룡포를 벗어주는 그림들이 간혹 있었고, 잘못된 그림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옷’이라 하지 않고 ‘털옷’이라고 쓴 듯하다. 그림 작업 도중에 글이 수정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림작가들이 글을 더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글과 그림이 다른 것은 이 책의 227쪽에서도 보인다. 인조가 마룻바닥에 머리를 ‘쾅쾅’ 박으며 청나라에 항복하는 장면인데 인조가 굻어 앉은 바닥은 그냥 흙바닥인 것이다.
나) 이야기를 가로 막는 그림들
역사물을 오랫동안 그린 홍성찬 선생님이 한 잡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역사물에는 고증이 절대적입니다. 저는 어린이가 보는 책이라고 해서 대충 그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가 보는 책이라도 어른이 본다고 생각하고 그리지요. 사실 어른이라 할지라도 역사적인 부분들에 관해서는 어린아이의 눈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디테일 묘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정희「역사를 그리는 마르지 않는 붓 홍성찬」『월간 일러스트』 2004년 2월호)
『지킴이』(문학동네어린이, 2003)는 시골 할머니 댁을 배경으로 지킴이들을 아이들에게 소개해주는 논픽션 그림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그림을 보면 아이들 책이라고 그림을 너무 안이하게 그리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할머니댁 장독대의 항아리가 세 개였는데 네 개가 되었다가 다섯 개로 늘어난다. 이것만이 아니다. 헛간으로 보이는 건물의 벽과 건물폭이 달라지고, 방문의 미닫이문이 한쪽이었다가 두 쪽으로 늘어나고, 업신(집안의 재물을 지키는 귀신)을 덮는 볏짚이 한 개였는데 두 개로 늘어난다. 개정판에서는 그림을 수정하였으나 눈에 보이는 문제점만을 고치려다보니 또다른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칼로 오린 자국이 남고, 고친 부분의 색상도 달라졌다. 원화를 다시 그리기 전에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림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편집할 때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본문에 사용한 그림을 표지나 새로 시작하는 장(章)의 배경그림으로 사용하기곤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똑같은 그림을 본문에서 한 번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국사 따라잡기 1』(바른사, 2004)의 72쪽을 보면 말을 타고 강가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이 들어가 있는 부분의 글이 “알에서 태어난 주몽, 고구려를 세우다”이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사람은 가장 앞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을 주몽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데 106쪽에도 똑같은 그림이 나온다. 이 부분의 글은 “동북아시아를 주름잡은 우리나라 최고의 정복 군주 광개토대왕”이다. 주몽이 광개토대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다) 의미 없는 그림들
텔레비전을 보면 시시때때로 나오는 인기 연예인이 있듯이 역사 관련 책에는 빼놓지 않고 얼굴을 내미는 그림이 있다. 역사상 의의가 크거나 위대한 인물, 또는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유물들이 그 주인공이 있다. 예를 들자면 광개토대왕비나 세종대왕, 측우기 등이다. 거중기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거중기는 우리나라의 과학사뿐만 아니라 정약용이나 수원 화성을 주제로 하는 경우 빠지지 않고 나오며, 그때마다 사진이나 그림이 같이 등장한다. 그런데 거중기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화성성역의궤』를 보고 그려도 동작원리를 고려하지 않아 그림을 잘못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중기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움직도르레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옮기는 기중기다. 그런데 기중기가 물체를 드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옮기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요즘 사용하는 기중기는 붐(물건을 들고 있는 팔이라고 생각하면 쉽다)의 길이나 각도를 조정하여 정해진 범위 내에서 수평이동을 할 수 있다. 아니면 골리앗 기중기처럼 기중기가 레일을 따라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거중기는 어떻게 사용했을까? 그냥 돌을 제자리에서 들었다가 놓을 리는 없을 없다. 여러 책에서 화성을 쌓으며 거중기를 이용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데, 그림에서 거중기는 공사장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저 혼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거중기에 매달린 커다란 돌을 어떻게 할지가 몹시 궁금할 정도로 이후 공사 장면을 상상할 수가 없다. 차라리 거중기의 설계도면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설계도면은 실제 모습을 생략하기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기본 구조와 작동원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무수히 외침을 받았던 우리 역사 때문인지 전쟁장면이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 중에서 ‘짠’하고 독사진을 찍듯이 폼을 재고 있는 장군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인물의 개성을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지면을 메우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그림들은 서로 바꾸어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구체적인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을 배치하기 전에 꼭 필요한 그림인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3. 사진
사진은 실물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오래된 사진의 경우 구한말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 말 그대로 ‘백문이 불여일견’인 셈이다. 그러나 1차 사료(史料)로스의 사진은 책, 건축물, 무덤과 부장품, 서예나 그림 등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일부 유물이나 유적에 한정되며, 1910년대 이전의 것은 거의 없다는 시대적인 한계도 가지고 있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사진 자료는 대체적으로 책, 건축물, 무덤, 비석 등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사진들을 연속적으로 배치할 경우 시각자료로서의 의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요즘 흔하게 쓰이는 옛날 책의 표지나 본문사진을 보자. 텍스트에서도 책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의미 있는 사진이라고 여기는 탓인지 꽤나 빈번하게 쓰인다. 심한 경우 한두 쪽을 건너서 계속 책 사진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옛 책들은 한문으로 씌어져 있어 관련 전문가가 아니면 해석을 할 수 없고, 그나마 본문의 경우 글자가 깨알같이 작아 제대로 읽는 것도 힘들다. 그러니 한두 번 눈길을 주다가 결국은 검은 것은 글씨고, 누렇게 바랜 것은 종이로 밖에 여겨지 않는다.
일부 사진의 경우 너무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도 문제이다. 사진 자료는 일부 필자나 전문연구가들이 가지고 있는 사진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보통 도록에 있는 사진을 많이 사용한다. 특히 일부 국.공립 박물관 도록의 경우 너무 빈번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이 책 저 책에서 자주 눈에 띤다. 물론 박물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 하나 밖에 없는 경우에는 사진을 다 같이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다양한 사진 자료의 제공처를 찾을 필요가 있다. 또한 도록에 있는 사진은 유적이나 유물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글의 설명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90년대 중반이후 사진자료들은 컬러로 인쇄하는 경우가 흔하고, 사진의 크기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지면을 차지한다. 그러나 빈번한 사진 자료의 활용 속에서도 여전히 개선해야 하는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에서 사진의 좌우를 바꾸는 것과 실물의 크기 표시와 배율 문제에 대해 검토해보기로 하자.
가) 거울에 비친 듯한 사진들
사진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사진의 좌우가 바뀐 경우다. 다음 두 장의 사진은 좌우가 바뀌어져 있어 서로 거울에 비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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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속 인물은 1980년대 초 충북 청원군 두루봉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후기 구석기시대의 사람 ‘흥수아이’의 사진이다. 왼쪽의 사진은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휴머니스트, 2002)의 46쪽의 사진이고, 오른쪽의 사진은 『아! 그렇구나 우리역사 1』(고래실, 2002)의 40쪽의 사진이다(두 사진의 대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지면에 있는 사진의 배율과 방향을 일부 조정했다). 자세히 보면 머리뼈 부분과 방향표시가 뒤집혀 있는데, 본디 왼쪽 사진이 제대로 된 것이고 이와 같이 견주어 보기 전에는 오른쪽 사진의 좌우가 바뀐 것을 알기 어렵다. 사진자료에 한자든 한글이든 글자가 있거나 불상과 같이 패턴이 정형화 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자들은 보통 모르고 지나간다.
어떻게 사진의 좌우가 바뀐 것일까? 대략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실수로 필름(슬라이드 필름)을 뒤집어 스캔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편집 때 그래픽 에디터에서 수평대칭이동(Flip Horizontal)한 것이다. 처음에는 뒤집힌 사진들을 보고 편집상의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책들을 확인한 결과 디자인하면서 의도적으로 바꾸는 경우가 훨씬 많아 보였다. 편집상의 실수라면 사진의 크기나 배율이 작아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 문제가 발생해야 하는데 오히려 지면에 크게 배치되는 사진의 좌우가 바뀐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국사 따라잡기 2』(바른사, 2004)의 88쪽에 나오는, 말을 타고 달리는 강감찬 장군의 동상도 좌우가 바뀌어져 있다. 책에 사진을 배치할 때 인물의 시선이 지면의 안쪽을 향하게 배치하는 것이 안정적인데, 이를 위해 강감찬 동상 사진의 좌우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바꾼 것으로 판단되는 이유는 사진의 구도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똑 같은 사진이 221쪽에서 또 한 번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크기만 작게 나올 뿐 좌우가 바뀌어 있지 않다.
또 다른 경우도 살펴보자. 『한국사 편지 5』(웅진닷컴,2003)에서도 좌우가 바뀐 사진이 몇 장 보이는데 그 대부분이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쪽이다. 65쪽, 79쪽, 103쪽의 좌우가 바뀐 사진들은 거의 한 면을 다 차지하는 큰 그림들이다(출판사에서는 4쇄본을 내면서 사진들의 좌우를 바로잡아 실었다). 물론 편집상의 실수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좌우가 바뀐 사진들이 구도가 훨씬 안정적이며 보기 좋다는 점에서 의도적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사진속의 글자들은 모두가 뒤집혀 있어 읽을 수가 없다. 이유와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제대로 바로 잡혀야 할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을 위해 사진의 좌우를 바꾸는 것은 사실에 대한 왜곡으로 논픽션이라는 장르가 무색해진다. 사진은 단순히 지면을 보기 좋게 메우는 수단이 아니다. 사진 자료는 글과 어울러지는 또 하나의 정보이기 때문에 보기 좋다는 이유로 자료를 왜곡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 사물의 크기와 배율의 문제
자연.환경에 대한 어린이 논픽션물에서는 요즘들어 사물의 크기에 대한 설명이 따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실제크기’나 ‘×2’와 같이 배율을 표시하거나, 실물옆에 크기를 적어주거나 눈금자를 넣어주기도 하며, 친절하게 실물의 윤곽선을 그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 문화 논픽션에서는 사계절의 『한국생활사박물관』(2002~)씨리즈나 고래실의 『아! 그렇구나 우리역사』(2002~)시리즈 정도만 그렇게 하고 있다.
『살아있는 한국사교과서 1』의 31쪽에 있는 ‘농사짓는 남자 청동조각(농경문 청동기)’의 경우 사진은 구체적인 쓰임새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사장이 몸에 붙이는 의례용구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몸에 붙일 수 있는 고리가 뒷면에 있고 모양이 방패와 비슷하기 때문에 언뜻 그 크기를 방패 크기 정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 크기는 너비가 12.8cm 정도로 책에 인쇄되어 있는 것보다 약간 큰 정도이다.
역사.문화 논픽션에서 다루는 사물은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크기나 길이, 무게 등을 알게 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물의 성격에 따라 크기 등의 정보를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옷이나 신발, 모자등과 같이 사물의 크기를 설명해 주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두 장 이상의 사진을 모아서 하나의 사진 자료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각각의 사진 배율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작은 유물을 크게 사진 찍거나 여러 유물들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는 경우에는 실제 사물의 크기가 사진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무런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는 사진은 실물의 실제 크기를 반영한다고 오해를 하게 된다.
『한국사 따라잡기 1』의 37쪽의 각종 청동기 도구들은 원래 두 개의 사진이다. 윗 부분의 청동검과 창은『국립중앙박물관』(통천문화사, 2000) 46쪽의 ‘청동창과 꺽창집’ 사진이고, 청동 방울 아랫부분은 같은 도록의 54쪽 ‘대곡리출토 일괄유물’이다. 원래 출처에는 위쪽의 가장 긴 창의 길이가 46.6cm, 아래쪽의 큰 거울의 지름이 18.0cm로 각각 적혀있다. 두 사진을 배율 조정 없이 하나로 합치면 사진 윗 부분의 청동창들은 아래 부분에 비해서 15% 정도 크게 보이는 문제가 생기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에 원래 그 정도의 크기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5.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림을 위해
지금 우리 논픽션 어린이책에서 시각 자료들이란 그저 아이들의 눈을 끌어들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글의 내용만 문제가 없으면 시각 자료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실수(!)는 변명을 늘어놓거나 실수를 인정하는 정도만으로 슬그머니 넘어가곤 한다. 글의 내용에 잘못이 있거나 오타나 탈자가 있다는 지적을 받으면 출판사에서는 이를 적극 수용해서 말끔하게 고쳐서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시각 자료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하다. 진짜 실수로 사진이 뒤집힌 경우 정도를 빼고는 문제는 알지만 일단 그냥 간다는 식이다. 특히 그림의 경우 문제가 생기면 완전히 새로 그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림작가가 새로 작업을 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손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시각 자료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함께 전문성의 결여에서 출발한다. 이는 글작가, 그림작가, 편집인 모두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일이다. 먼저 글작가는 책의 내용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글에 필요한 시각 자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시각 자료를 제시하고 제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늘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림작가는 실제 고증을 거쳐 그림을 그려내는 당사자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논픽션은 그림작가가 글작가의 글을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고 맘껏 그릴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그보다는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통해 가장 사실에 부합하도록 그리는 게 가장 기본이다. 거기에 더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충분히 도울수 있도록 그려야 한다. 책에 나오는 한 장면이라고 그저 삽화처럼 그려넣을 경우 그 그림은 엄밀한 의미에서 시각자료로써의 의미가 전혀 없다. 편집인의 경우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총 책임지는 사람이다. 글작가와 그림작가, 디자이너와 의견을 모으고,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최종적인 책의 꼴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다. 그러니 책이 나오는 과정 동안 편집인은 그 분야의 준전문가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출판사다. 출판사의 경우 책에 문제가 제기될 경우 시간과 비용을 감수하고 이를 진행할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된다. 논픽션 책들이 점점 비주얼화되면서 시각자료의 비중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렇기에 시각 자료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경우 책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때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바로 출판사다. 시간과 비용, 그리고 출판사 이미지를 감수하고라도 결단을 내릴지, 아님 대충 손을 본 흉내를 내는 정도에서 끝낼지, 아님 일단 무시하고 말 것인지를 최종 판단하는 곳이다.
결국 시각자료의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이나 단위가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출판 씨스템 전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특히나 고증 문제의 경우 그 책임이 글작가든 그림작가든 작가에게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라고 하더라도 한 두 사람이 공부를 해서 모든 것을 다 알아내기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차원에서 좀더 체계적이고 정확한 고증 작업이 필요하다’는 홍성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마지막으로 더 많은 독자와 비평가들의 논픽션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어린 비평을 부탁드린다.
이 글은《창비 어린이》 2004년 가을 제6호 '지식정보책의 가능성을 찾는다'라는 특집 기사로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이지수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제 남편이기도 합니다. 어린이 역사, 인물책에 관심을 갖고 출판 기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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