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하타사와 세이고. 구도 치나쓰 글/다른/절판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며 고통 속에서 지내다 자살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데, 드는 의문이 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있는데, 왕따를 시키는 아이는 없다!!
자기 아이가 왕따를 당할까 걱정하는 부모는 많지만, 자기 아이가 왕따를 시킬 거라 생각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도 있기 마련이건만,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상황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다 자살을 한 아이는 죽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왕따를 시킨 것으로 지목당한 아이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상한 아이가 괜히 멀쩡한 자기 아이를 트집 잡았다며 시비를 걸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우리는 흔히 왕따 문제는 아이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얼마 전 뉴스를 보면 직장 내의 왕따 문제도 아주 심각하다고 한다. 이 말은 결국 왕따 문제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이 책은 일본의 명문여자중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자살을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아이는 유서에 다섯 학생의 이름을 써 놓았고, 가해 학생들의 부모는 학교 회의실에 소집된다.
아이들의 왕따 이야기지만, 이야기 속에 아이들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오로지 회의실에 모인 가해 학생들의 부모와 선생님들로만 한정된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선생님들은 잠깐 잠깐 이야기 연결고리로만 등장할 뿐 가해 학생들의 부모 이야기만 나온다.
그런데 가해 학생들의 부모 모습이 정말 가관이다.
자기 아이가 가해 학생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다른 부모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까가 고민이다.
그리고 자기 아이는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말한다. 유서가 억지스럽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기 아이들 이름이 알려질까만 두려워한다. 만약 자기 아이가 왕따를 시키지 않았다면 이건 누명이며 명예훼손이고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자살한 아이가 죽기 직전 다른 사람에게 편지로 전한 유서를 선생님으로부터 빼앗아 삼켜 버리기까지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은 잠시, ‘충분히 이럴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이 든다. 어떻게든 자기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은 부모라면 다 있을 테니까 말이다. 부모는 마지막까지 아이를 믿고 보호해줘야 하는 보루니까 말이다. 실제로 이런 일도 여러 번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게 자기 아이를 대하는 기본 원칙이라 해도 진실을 왜곡하고, 내 아이만을 위해 다른 아이를 희생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아이의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 이건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다. 어쩌면 그건 아이가 아닌 자신을 사랑하고 포장하고자 하는 데서 나오는 모습일지 모른다. 이 책에서 자신의 모습이 다른 부모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를 고민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왕따 문제의 핵심은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소통은 거부한 채 자신이 꿈꾸는 아이의 상을 만들고, 거기에 갇혀 버리고 만 어른들에게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출판사 다른의 제안으로 원작자가 희곡을 소설로 다시 쓴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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