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반대합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스티나 비르센 그림/이유진 옮김/위고/2021. 5. 5.
이 책은 110*205mm 크기에 68쪽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척 무겁기만 합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우리에게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산적의 딸 로냐》 등의 작품으로 너무 익숙한 작가입니다. 2002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스웨덴 정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제정해 그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또 2005년 그의 필사본 등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이는 동화작가로서 그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동화작가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와 여성, 동물과 같이 약하고 억압받는 존재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실천해 나간 활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1978년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며 발표한 연설문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평화상을 시상하는 주최 측에서는 린드그렌의 연설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전에 연설문을 받아보고는 “짧고 듣기 좋게” 수정해 달라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린드그렌은 이를 거부하고 연설문을 그대로 읽어내려갔습니다.
린드그렌은 평화의 근본은 어린이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들이 폭력 속에서 자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러면 폭력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강자인 어른이 어린이에 대한 폭력을 단호히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어린이들이 폭력이라 여기는 체벌을 어른들은 폭력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체벌은 아주 흔했습니다. 저는 집안에서는 체벌을 받지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무지막지한 체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번 체벌이 시작되면 나무로 만든 지휘봉이 몇 개씩 부러져 나갔고, 그걸 보고 겪는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스타킹을 신을 때는 종아리를 때리고, 여름엔 발바닥을 때리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목 뒷덜미, 손목, 손끝, 엉덩이. 때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체벌이 가해졌습니다. 교묘하게 팔뚝 안쪽을 꼬집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두 아이를 마주 세워놓고 ‘서로를 위해 따귀를 때리라’고 지시하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이런 체벌을 받으며 선생님의 체벌에 감사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린드그렌은 연설문에서 어린이가 체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 수 있는 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 내용을 옮겨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라는 말을 믿고 있을 때 그녀는 젊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사실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이 말썽을 저지른 어느 날, 이날만큼은 난생 처음 아이에게 매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아이에게 나가서 회초리를 구해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아이가 울면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초리는 못 찾았어요. 그치만 엄마가 저한테 던질 수 있는 돌멩이를 구해 왔어요.”
그 말을 듣고 엄마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불현듯 아이의 눈에서 모든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나를 아프게 하고 싶어 해. 그렇다면 돌멩이도 괜찮을 거야.”
엄마는 두 팔을 벌려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둘은 그렇게 함께 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아이가 가져온 돌멩이를 부엌 선반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돌멩이는 계속 그곳에 놓여 있으면서 엄마가 그 순간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영원히 일깨우게 되었습니다. 폭력은 절대로 안 된다는 약속 말입니다.
린드그렌의 연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음 해인 1979년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법으로 아동 체벌을 금지했습니다. 스웨덴은 이미 학교를 비롯해 어린이들이 거주하는 기관에서는 신체적 체벌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체벌을 금지하게 함으로써 어린이에 대한 체벌이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이후 다른 나라들도 하나둘씩 어린이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요?
민법 제915조(징계권)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법으로 가정에서의 체벌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법이 사라진 건 2021년 1월입니다. 가정에서 체벌이 사라지기까지 스웨덴보다 40여 년이 더 걸린 셈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이 폭력에 관한 뉴스는 끊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린이 폭력을 실질적으로 없앨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는 <내가 신이라면>이라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시도 실려 있습니다. 폭력을 바라보는 린드그렌의 마음이 잘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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