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10.21.
전집 이야기 1
나는 전집보다는 단행본 책들을 적극 권한다. 때문에 가끔 오해도 받는다. 전집에도 좋은 게 많고, 또 전집 가운데는 단행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 있는데 왜 전집을 반대하느냐는 거다.
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전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고충을 알아달라는 말도 듣는다. 아이한테 책을 사주긴 사줘야겠는데 어떤 책을 골라줘야 할지 기준도 없고, 또 바쁜 생활 때문에 그때 그때마다 책을 골라주기 어려워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또 다른 집 아이들도 다 있는데 우리 아이만 없으면 뒤떨어질까 걱정이 된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역설적으로 전집의 한계를 보여준다. 어느 경우건 전집을 선택하는 기준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라는 거다.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아이들인데 전집을 고를 수밖에 없는 엄마의 입장만 일방으로 고려된다.
그러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다. 엄마는 비싼 돈을 주고 한꺼번에 책을 구입했으니 아이가 이 책들을 빨리 읽기를 바라고, 또 집에 책이 많이 있다는 자부심에 오히려 아이들 책 문제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아이가 책을 잘 읽지 않으면 아이가 왜 책을 읽지 않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집에 책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읽지 않느냐고 아이 탓만 하게 된다. 읽고 싶은 다른 책을 사달라는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집에 있는 책도 안 보는 얘가 책은 무슨 책이야” 결국 아이는 책과 멀어진다.
이런 문제는 그 전집이 좋고 나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전집이라는 틀 자체가 일으키는 문제다. 적지 않은 가격 때문에 아이보다는 엄마에게 선택권이 내맡겨질 수밖에 없고, 아이는 무슨무슨 전집이라는 틀로 묶여진 그 틀에 갇혀 허둥거린다. 책꽂이에 빼곡이 꽂힌 전집들은 아이의 마음을 짓누른다.
가끔 전집을 구입하고 난 뒤 문제를 느끼고 과감하게 전집류를 처분하는 분들을 본다. 뒤늦은 결단이지만 훌륭한 결단이다. 전집의 문제는 전집이란 틀을 깨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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