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3. 3.
다시 생각해보는 위인전
지난해 월드컵 열풍이 지나고 난 뒤 히딩크 관련 책들이 수십 권이나 출판되었다. 그 가운데 어린이용 위인전도 여러 권이다. 축구의 전설적인 영웅 펠레 위인전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위인전도 유행을 타는구나 싶다. 한동안은 허준이, 또 그 뒤를 이어 이제마가 인기 있는 위인전 주인공이 됐고, 정주영 위인전도 몇 달 간격으로 여러 권이 나오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위인전 범위가 예전과 견줄 때 정말 넓어졌다 싶기도 하다. 우리 나라 인물로는 이순신, 을지문덕, 강감찬 같은 장군들이나 안중근, 안창호, 김구 같은 독립운동가 중심에, 외국 인물로는 퀴리 부인, 에디슨 같은 과학자들이 주류였던 걸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좋게만 보아주기엔 뭔가 좀 꺼림칙하다.
가만 보니 아이들 위인전의 흐름에 사회 분위기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텔레비전의 힘이 대단하다. 히딩크도 허준도 다 그 흐름 속에 있다. 인물에 대한 이해와 평가 속에서 위인전이 만들어지기보다는 방송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스타 만들기’와 맞물려서 아이들을 상대로 ‘스타 띄우기’ 작전을 펼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물에 대한 이해는 뒷전이고 겉모습에만 신경이 쓰인다.
사회의 흐름과 위인전의 흐름은 참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때론 같은 인물 이야기라도 전혀 다른 방향에서 그 인물이 주목을 받기도 한다. 개항 이후 이어진 일본의 침략 속에서 외세를 물리친 국난극복형 인물이던 을지문덕이나 이순신이 유신 이후에는 반공정신과 맞물려 나라를 지키는 충성스러운(!) 국민의 지향점으로 왜곡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리고 덕분에 이런 인물들은 100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가장 대표적인 위인의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포르르 끓고 마는 반짝 베스트셀러처럼, 잠깐 떴다 사라지는 스타처럼 되어버린 요즘의 위인전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위인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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