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5. 7. 3.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로렌 차일드 글, 그림/조은수 옮김/국민서관
찰리와 여동생 롤라가 나오는 이야기,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다 이 책을 떠올릴 만큼 널리 이름난 책입니다.
찰리는 동생 롤라가 ‘쪼끄맣고 아주 웃기는 아이’라지만 사실 찰리도 보통 아이는 아니지요. 마치 엄마 아빠의 대리인 같은 느낌입니다. 엄마 아빠도 해내기 힘든, 까다로운 롤라를 척척 다루는 솜씨는 혀를 내두르게 하니까요.
도대체 엄마 아빠는 이 힘든 일을 찰리에게 맡겨두고 어디에 가 계신 걸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먹고 특히나 토마토는 절대 안 먹는다고 버티는 롤라에게 밥을 차려 주라니요?
하지만 찰리는 그냥 밥을 차려 주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롤라가 너무나 싫어하는 음식들을 아주 기분 좋게 먹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그것도 억지로 먹이는 게 아니라 롤라 스스로 말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찰리와 여동생 롤라가 나오는 같은 시리즈에서도 찰리는 놀라운 활약을 합니다.
<난 하나도 안 졸려, 잠자기 싫어!>에서는 밤늦게까지 안 자는 걸 좋아하는 롤라가 씻고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게 하기도 합니다. <난 학교 가기 싫어>에서는 학교에 갈 때가 되었는데도 자기는 아직 안 컸고 또 집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학교에 갈 시간이 없다는 롤라를 설득해서 학교에 가도록 하기도 하죠.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인 찰리와 롤라의 모습은 그다지 친근감을 주는 인상은 아닙니다. 위로 올라간 눈에 눈동자 위치도 좀 애매하지요. 게다가 글자는 그림의 빈 공간에 얌전히 배치돼 있지 않습니다. 글자는 그림의 일부처럼 그림 속에 함께 배치돼 있기도 하고, 곡선 모양으로 구불구불 배치돼 있기도 합니다. 글자 배치 자체가 이 책의 장점인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이미지 구실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모범적인 걸 선호하는 어른들에게는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런데도 이 책은 의외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사랑을 받습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편식하는 아이들에게 효과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분도 많지요.
그러나 실망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이가 편식하는 습관을 고쳤으면 하는 마음에 보여 줬더니 오히려 아이가 ‘절대 안 먹어!’만 외치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고요.
하지만 그건 이 책을 단순히 ‘교육용’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당근은 오렌지뽕가지뽕, 콩은 초록방울, 감자는 구름 보푸라기, 생선튀김은 바다얌냠이, 아이들에겐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맘껏 펼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더 다가올 테니까요.
마지막에 롤라는 자신이 그처럼 싫어했던 토마토를 가리키며 말하죠.
“달치익쏴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여기서 다시 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결국 찰리는 엄마 아빠의 대리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가끔 엄마 아빠가 찰리에게 롤라를 부탁했던 건, 혹시 엄마 아빠가 가끔씩 찰리처럼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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