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읽히되 가볍지 않은 이야기
동화작가 임정진은 특별한 재주가 있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들도 임정진의 손끝을 거치고 나면 밝고 재기 발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렇다고 무겁고 어두운 주제 의식들을 다 벗어 던진 건 아니다. 밝고 가볍게 읽히면서도 다 읽고 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교훈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고 나면 저절로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작은 형》(푸른숲, 2001)은 이런 임정진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책이다. 먼저 여기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
표제작인 <나보다 작은 형>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병에 걸린 형을 둔 동생의 마음이 담겨 있고, <빙빙 돌아라, 별 풍차>에서는 별 풍차 아저씨를 등장시켜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준다. <새 친구 왕만두>는 국적과 인종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고, <땡땡이, 줄줄이, 쌕쌕이>에서는 쓸모 없이 버려진 한 짝짜리 양말들이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양들의 패션쇼>는 모피 반대론자들이 홍보물로 써도 좋을 만큼 주제가 뚜렷하다.
이렇게 내용만 보자면 뻔한 이야기로 바질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 이 뻔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재기 넘치는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이건 아마도 독특하면서도 뚜렷한 작중 인물 캐릭터와 짤막하게 툭툭 내뱉는 듯한 문체 덕이 클 것이다. 게다가 군더더기 설명은 쏙 빠지고 모든 상황을 선명한 사건으로 보여 준다. 그러니 아이들은 눈앞에서 사건이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다운 발랄함 또한 임정진의 장점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실린 다섯 작품 가운데 <빙빙 돌아라, 별 풍차>는 조금 아쉽다. 아이들의 아픔을 품어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보다 작은 형》은 오랫동안 기억될 책이다. 지금도 눈앞에선 동식이랑 싸우는 동생의 모습과 철봉에 대롱대롱 매달린 왕만두의 모습, 뽐내며 패션쇼를 하는 양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동화읽는가족>(푸른책들) 2004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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