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다 속에 갇힌 사람들
“우리 역사 속에서 북한이랑 일본 중에 누가 더 나쁜 것 같아?”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초등학생 때였던가, 아님 중학생 때였는지도 몰라요.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던 건 순전히 선생님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딱 꼬집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시곤 했거든요. 이 질문을 받은 아이들은 북한이랑 일본 가운데 누가 더 나쁜지 자기 의견을 세워 가며 이야기를 나눴지요.
저는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누가 더 나쁜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한참 고민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일본이 더 나쁘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북한이 더 나쁘다’는 의견이 훨씬 더 많았어요.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1970년대에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한창 높을 때였거든요. 그에 비해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어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지배했다는 것만 알 뿐이었지요.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강제징용 이야기를 얼핏 듣긴 했어도 그걸로 끝이었어요. 그분들이 어떻게 끌려갔고, 어떤 대우를 받았고,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지요.
책장 넘기기
『검은 바다』(문영숙 글/김세현 그림/문학동네)는 일본 조세이 탄광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이야기예요.
탄광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고 하지요. 그런데 조세이 탄광은 특히나 더 힘들고 위험한 곳이었어요. 보통 산에 있는 다른 탄광과는 달리 바닷속에 있었거든요.
이곳에 끌려온 조선 사람들은 바다 밑으로 통하는 길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서 쉬지 않고 일해야 했어요. 탄광에는 늘 바닷물이 새어 들어왔지요. 천장도 낮아서 불편한 자세로 있어야 했어요. 천장에서 석탄 덩어리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깔려 죽었지요.
그런데 이 조세이 탄광이 무너져 내렸어요. 생산량을 늘리는 데에만 신경 쓰느라 최소한의 안전 장치조차다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바다 밑에 있는 탄광이 무너져 내렸으니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맞아요. 아무도 살아나오지 못했어요.
이 거짓말 같은 일은 1942년 2월 3일 아침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에요. 이때 죽은 희생자는 180여 명. 거의가 조선에서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이었지요.
이 책의 주인공 ‘강재’는 공장에서 2년만 일하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거짓말에 속아 조세이 탄광에 오게 됐어요. 그나마 강재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어요. 강재 친구 ‘천석’이는 나무를 팔러 시장에 나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거든요.
힘든 탄광 일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대개는 다시 잡혀 와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다가 죽곤 했지요. 감독관인 ‘고바야시’는 도망자를 잡으면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고 “도망자는 사형이다!” 하고 따라 외치게 했어요. 그러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도망자를 사정없이 때렸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도망쳤어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여길 만큼 견디기 어려웠으니까요.
강재랑 천석이도 도망을 가요. 다행히 천석이는 도망에 성공하지만, 강재는 다시 잡혀 왔지요. 사정 없이 채찍질 당하던 강재는 죽기를 각오하고 외쳤어요. 조선 사람은 노예가 아니라고, 왜 사람 취급을 안 하느냐고요.
강재의 입을 틀어막던 감독관이 다시 채찍을 내리치려 했어요. 강재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 같은 순간이었지요. 하지만 다행히 채찍질을 당하지 않고 독방에 갇혔어요. 이틀을 굶긴 뒤, 감독관은 죽어도 일이나 하다가 죽으라며 강재를 다시 탄광에 내보냈어요. 일본이 벌이고 있던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석탄이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한 달쯤 지난 뒤 조세이 탄광이 무너져 내린 거예요. 강재가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지요. 강재는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일하던 동료들은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요.
이 일을 겪은 강재는 실재 인물, 김경봉 할아버지예요. 징용에 끌려가게 된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도망치다 붙잡혀 오고 탄광이 무너졌을 때 기적처럼 살아남은 상황 모두는 깅경봉 할아버지가 겪은 그대로지요. 결국 이 책의 주인공 강재의 이야기는 그 당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책을 보는 내내 이런 엄청난 일을 왜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답답했어요.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확실히 알 수 있었지요. 김경봉 할아버지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지금도 살아 계신 것은 물론이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 또한 너무나 많으니까 말이에요.
함께 읽으면 좋아요!
『뿔난 바다』(박예분 글/정하영 그림/청개구리)
작가 선생님은 2007년에 있었던 ‘조세이 탄광 수몰 희생자 위령제’에 직접 참석하셨대요. 이 책은 그 당시 기자 회견 내용은 물론이고 사고 이후의 상황,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어요. 조세이 탄광에 끌려갔던 할아버지 세 분의 증언도 직접 들을 수 있답니다.
'이것저것 > 초등 독서평설 - 책읽어주는선생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6월] 마음대로봇 (0) | 2021.06.22 |
---|---|
[2011년 5월] 해일 (0) | 2021.06.21 |
[2011년 3월] 바람처럼 달렸다 (0) | 2021.06.19 |
[2010년 3월] 자유와 평화를 향한 걸음 (0) | 2010.10.20 |
[2010년 2월] 아메리카, 신세계를 찾아서 (0) | 2010.10.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