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만나다
『바람처럼 달렸다』(김남중 글/김중석 그림/창비)
제가 지금껏 배우지 못한 것, 그래서 꼭 한번 배워 보고 싶은 것, 하지만 상상만 해도 무서운 것이 있어요. 바로 ‘자전거 타기’예요.
물론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에요. 초등학생 때에도, 어른이 되고 난 뒤에도 시도해 봤지요. 하지만 결과는 늘 실패였어요.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굴욕을 당하기도 했어요. 어느 더운 여름날, 두 정거장이나 되는 거리를 낑낑대며 자전거를 끌고 간 적이 있었지요. 동생 때문이었어요. 동생이 저한테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를 찾아다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어쩔 수 없이 가긴 갔는데, 자전거를 못 타니 집까지 가지고 올 방법이 없는 거예요. 결국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왔답니다. 덥고 힘든 것도 괴로웠지만, 견디기 어려운 건 따로 있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가는 제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거든요.
그래서 저는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러워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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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달렸다』(김남중 글/김중석 그림/창비)는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진 아이, ‘동주’의 이야기예요. 동주는 어른이 될 때까지 열네 대나 되는 자전거를 잃어버렸대요. 정말 기가 막히지 않나요? 만약 저라면 두세 대만 잃어버렸어도 자전거 타기를 포기해 버렸을 거예요. 엄마 눈치도 눈치지만, 무엇보다 ‘나랑 자전거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인 동주가 바로 이 책의 작가 선생님이라는 점이에요. 작가 선생님은 어른이 되고 난 뒤에도 두 대의 자전거를 더 잃어버려서 지금껏 모두 열여섯 대를 잃어버렸고, 지금은 열일곱 번째 자전거를 타고 있대요. 앞으로 몇 대를 더 잃어버리게 될지, 자전거 신의 저주가 언제 풀릴지 모르겠지만 자전거 신에게 결코 지지 않을 거래요. 다행히 새로 산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고 지키는 기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나요.
이 책에는 동주가 처음 자전거를 갖게 된 여덟 살 때부터 아홉 번째 자전거를 타게 된 중학생 때까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그러니까 이 책은 동주가 자전거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동주의 첫 번째 자전거는 선원이었던 삼촌이 갖다준 자전거였어요. 다른 나라에서 바다를 건너온 오렌지색 자전거였지요. 하지만 수수깡을 사러 문구점에 들른 사이, 자전거는 사라져 버렸어요.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얼마 뒤 동주는 잃어버린 자전거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6학년쯤 되어 보이는 형이 나타나 자기 아빠가 사 준 자전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 형은 자기 아빠를 데려올 테니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죠.
이렇게 동주의 자전거는 자꾸만 사라졌어요. 자물쇠를 채워도 소용이 없었지요. 동주는 ‘자전거 신이 나한테 저주를 퍼붓는 건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지만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자전거와 함께 항상 새로운 도전에 나서곤 했답니다. 기찻길 위에 세운 구름다리를 오르내리기도 했고, 말을 잘 안 듣는 브레이크 때문에 자꾸 넘어지던 중구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법도 알아냈고, 오른손과 왼손을 반대로 해서 핸들을 잡고 타는 법도 익혔지요.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됐고, 때로는 자전거 목이 부러지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자전거가 없었더라면 하지 못했을 경험도 많이 했어요. 한번은 교회에서 처음 만난 친구 승제와 함께 2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강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지요. 친구 병훈이와 함께 도시 북쪽에 있는 채석장까지 자전거를 타러 가기도 했고요. 학원에서 소풍을 갔을 땐 마음에 두고 있던 은지를 2인용 자전거 뒤에 태웠다가 무리가 요구를 들어주느라 고생하기도 했어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경험은 펑크 난 자전거 타이어를 혼자서 때운 거예요. 펑크를 때우러 간 자전거 가게에서 돈은 돈대로 다 받으면서 자기에게 펑크를 때우게 했을 땐 화도 났어요. 하지만 펑크를 때우는 기술을 배우게 됐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지요. 게다가 펑크를 때우는 도구도 선물로 받았고요.
동주는 자전거와 함께 세상을 만났어요. 그리고 세상을 배워 나갔지요. 자전거가 쓰러졌을 때 그 자전거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답니다. 동주의 세계는 자전거와 함께 점점 넓어진 거예요.
동주가 점점 더 부러워져요. 동주가 자전거를 통해 만난 세상을 저는 자전거를 못 타기 때문에 만나지 못한 것만 같거든요. 혹시 자전거를 못 타는 친구들이 있다면, 저처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전거 타기에 꼭 한번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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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불량한 자전거 여행 2』 (김남중 글/문인혜 그림/창비)도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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