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그리고 해일
『해일』(펄벅 글/류충렬 그림/내인생의책)
제가 어렸을 때 본 만화에는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지는 장면이 나오곤 했어요. 하지만 그 정도의 지진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지요. 우리나라에는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저는 땅이 쩍쩍 갈라지는 무서운 지진은 만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봤던 만화는 대부분 일본 것이었어요. 만화에서 이런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건 일본에 지진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임을 나중에야 알게 됐지요.
얼마 전 일본에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났어요. 지금껏 발생한 전 세계 지진 가운데 그 크기가 5위나 된다는 엄청난 지진이었지요. 만화에서처럼 땅이 갈라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진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는 걸 이번 일본 지진을 통해 알게 됐어요. 지진 해일 말이에요. 해일이 휩쓸고 간 자리는 지진이 남긴 상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어요.
책장넘기기
그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 책이 있어요. 바로 일본의 해일 이야기를 들려주는 『해일』(펄벅 글/류충렬 그림/내인생의책)이라는 책이지요.
제가 이 책을 읽은 건 10년 전쯤의 일이에요. 해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도저히 짐작하지 못했던 때라고 할 수 있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다 읽고나서도 해일의 위력을 실감할 수 없었어요.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았으니까요.
대신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어요. 바닷가에 있는 집들의 모습 말이에요. 이야기 속의 바닷가 사람들은 바다 쪽으로는 절대 창을 내지 않는다고 했어요. 흔히 바닷가에 집을 지을 때 바다 풍경이 잘 보이도록 바다 쪽으로 큰 창을 내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였지요.
그런데 그 이유가 놀라웠어요. 그들은 바다가 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하면서도 ‘바다는 원수’라고 했지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다 때문에 많은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바다 쪽으로 창조차 내지 않고 원수라고까지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지요.
저만 그런 건 아니었나 봐요. 이 책의 주인공 ‘키노’도 바다가 원수라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어요. 키노네는 산비탈에 논밭을 일궈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거든요. 또 해일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일도 없었어요.
키노는 바닷가에 사는 어부 집안의 ‘지야’와 친했어요. 키노는 지야를 부러워하기도 했지요. 바다에 널린 물고기를 거둬들이기만 하면 되는 고기잡이는, 1년 내내 땡볕에서 땀 흘려야 하는 농사에 비하면 훨씬 쉽게 느껴졌으니까요. 지야는 키노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어요. 바다에 폭풍이 몰아닥치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요. 그럴 때는 ‘제발 땅에 있었으면’ 하고 두 손 모아 빌게 될 거라고도 말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키노가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걸 하늘에 감사드리게 된 사건이 발생했어요. 깊은 바닷속 화산이 폭발한 거예요.
성에 붉은 깃발이 올라갔어요. 위험에 대비하라는 신호를 보낸 거였지요. 키노는 처음 보는 깃발이었어요. 이어서 종소리가 났는데, 상황이 심각해졌으니 마을을 빠져나와 성 안의 대피소로 피하라는 신호였지요. 바닷가 사람들이 성을 향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지야도 언덕을 올랐지요. 집과 배를 포기할 수 없다며 끝내 떠나지 못한 식구들을 뒤로 한 채, 엉엉 울면서 말이에요.
언덕 위에서 지야와 키노가 겨우 만났을 때였어요. 다시 종이 울렸고, 바닷물이 하늘 높이 치솟았어요. 검푸른 해일은 단 몇 초 만에 마을을 덮쳤지요. 얼마 뒤, 바닷물이 빠져나간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마치 지금껏 단 한 번도 사람이 살았던 적 없는 바닷가처럼 말이에요.
얼마 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일본의 해일 피해 현장은 책 속의 이 장면과 똑같았어요 제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해일의 공포가 엄습해 왔지요.
이 책을 쓴 작가 펄 벅은 『대지』라는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사람이에요 오랫동안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서 살기도 했지요. 펄 벅이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일본에서 해일의 엄청난 위력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지야는 바다 때문에 비극을 겪었어요. 다시는 바다 쪽을 쳐다보기도 싫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른이 된 지야는 다시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아가기로 해요. 용감해야만 한다면서요. 그리고 해일에 대비해 이미 많은 준비를 했다면서요.
지금 일본에는 지야처럼 해일 때문에 가족을 잃은 고아들이 많아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그 아이들도 지야처럼 아픔을 딛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길 빌어요.
함께 읽으면 좋아요!
『체르노빌의 아이들』(히로세 다카시 글/프로메테우스)
일본 지진의 영향은 해일로 끝나지 않았어요.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폭발은 더 큰 문제가 됐지요. 가장 심각한 원자력 사고로 꼽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과 견주어질 만큼요.
이 책은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참사 이야기를 들려줘요. 원자력 발전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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