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난 절대 유명한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
아마도 15년 전쯤 일일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유치하지만, 그땐 나름대로 심각했어요.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도 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예요.
그때, 저는 친구 몇 명과 「고향의 봄」이란 동시로 유명한 아동 문학가 이원수 선생님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어요. 이원수 선생님 작품들도 읽고, 선생님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보자는 뜻이었지요. 선생님이 태어나고 자랐던 마을, 학교에도 가 보았어요. 그리고 선생님의 생활기록부도 보게 됐죠. 생활기록부에는 선생님의 여러 정보가 담겨 있었어요. 또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분들도 찾아뵈었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저는 두려워졌어요. 혹시라도 내가 유명해지면 누군가 이렇게 내 자료를 찾으러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아무래도 제 과거가 자랑스럽지만은 않았거든요. 성적도 뛰어나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한테 제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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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전 이 기억이 참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기록한다는 것』(오항녕 글/김진화 그림/너머학교)을 보니, 저의 이런 감정들은 ‘떠든 아이 효과’와 비슷한 것 같아요. 떠든 아이 효과가 뭐냐고요?
왜 칠판 한구석에 ‘떠든 아이’라고 쓰고, 반장이 그 아래 떠드는 아이들 이름을 쓰잖아요. 그럼 괜히 주눅이 들곤 하지요. 사실 칠판에 이름이 적힌다고 해서 선생님께 크게 야단을 맞는 일은 거의 없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방법으로 반장에게 그 일을 맡겼던 거니까요. 하지만 막상 이름이 적힌 아이들 입장에서는, 많이 떠들고 말고를 떠나서 칠판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기록이란 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는 흔히 ‘기록’하면 무척 거창한 걸 떠올리곤 해요. 이를테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됐다는 『훈민정음』, 『동의보감』, 『승정원일기』, 『직지심체요절』, 『조선왕조실록』, 조선 왕조의 의궤, 해인사 팔만대장경 같은 것들이요. 물론 그 기록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관한 관심이 생기기도 하겠죠. 그런데 그 기록이라는 것이 과연 왜 중요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아마 별로 없을 거예요.
인류는 끊임없이 기록을 해 왔어요. 기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지요. 여러분도 아마 기억하기 위해서 무언가 써 본 일이 있을 거예요. 시험을 보고 ‘오답 노트’를 만드는 것도 기록을 통해 좀더 확실하게 기억을 하기 위해서죠.
기록을 늘 문자만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사진이나 그림도 훌륭한 기록 수단이지요. 또 문자가 없던 때에는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중요한 기록의 수단이었고요.
물론 기록이라는 것이 늘 완전하지는 않았어요. 흔히 율곡 이이가 전쟁에 대비해 10만 명의 병사를 기르자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먼 옛날 율곡 이이는 송나라의 훌륭한 신하 이문정과 비슷하다고 칭찬을 받았어요.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이를 옮겨 적으면서 이문정을 몰라 이문성이라고 고쳤죠. 율곡 이이는 이문성이란 시호(사람이 세상을 뜻 뒤에 높여서 부르는 이름)을 썼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10만 양병성을 주장했다는 기록이 남은 거예요. 이렇듯 기록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여러 가지 상황을 따져 보고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할 거예요.
특히 역사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부분이래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기 때문에 적어 놓을 필요가 없어서 기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또 많은 정보 가운데 기록할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때 누구의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기록이 남기도 하고요.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펴낼 때 여러 번 다시 만들기도 했어요. 「선조실록」은 「선조 수정 실록」으로 다시 펴냈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들의 활약은 「선조 수정 실록」에 담겨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선조실록」을 없애진 않았어요. 그건 아마도 후대 사람들에게 누구의 입장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을 맡기려고 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기록들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기도 했어요. 프랑스는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의 문서들을 몽땅 가져갔고요, 미국은 6.25 전쟁 때 종이란 종이는 모두 자루에 넣어 미국으로 실어 갔대요. 그러고 보면 기록을 하는 것뿐 아니라 그 기록을 지키는 일 역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함께 읽으면 좋아요!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 찾기』(신병주 저/이혜술 글/책과함께어린이)
규장각은 정조가 창덕궁에 세운 왕실 도서관이에요. 직접 책을 펴내기도 했고, 외국의 귀한 책들을 모아서 보관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일본이 나라를 빼앗으며 그 책들을 서울대학교로 옮겼어요. 또 외규장각의 자료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가져가기도 했고요. 아쉽지요? 우리 그 아쉬움을 이 책을 통해 달래 보아요. 왕이 쓴 글씨, 나라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 우리나라의 지도와 지리책 등 보물 같은 우리 기록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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