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는 나의 힘!
'반쪽이' 이야기
1.
나는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는 늘 콤플렉스 투성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콤플렉스라는 건 모르는 듯, 언제나 자신만만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2.
반쪽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눈도 하나, 코도 하나, 다리도 하나… 밖에 없다는 표현 때문이었다. ‘아기 장수 우투리’처럼 몸의 아랫부분이 없는 아이는 상상이 갔지만 세로로 반쪽밖에 없는 아이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자꾸자꾸 반쪽이가 한 발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모습이 떠올랐고, 원래 하나뿐인 입은 어찌 생겼을까 궁금해서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특히나 호랑이를 물리치는 장면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호랑이를 상대하려면 한쪽 팔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요란 뻑적지근한 사건과 함께 반쪽이가 승리하는 이야기는 속이 후련했다.
아이는 3-4살 무렵부터 ‘반쪽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 ‘반쪽이’는 잠자기 전 들려달라는 옛이야기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덕분에 나는 아이를 키우며 밤이면 밤마다 ‘반쪽이’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다. 아이 덕분에 덩달아 ‘반쪽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4살 때였다. 《도둑나라를 친 새신랑》(김중철 글/강우근 그림/웅진주니어) 속의 <반쪽이>를 보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
“엄마, 반쪽이가 이렇게 몸을 돌리면 또 이쪽에 몸이 있는 거지?”
아마 아이도 반쪽이 몸이 궁금했던 것 같다. 그림 속의 반쪽이는 분명 반만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반쪽이가 몸을 돌리면 똑같은 몸이 있고, 그래서 숨겨진 부분과 하나가 된 온쪽이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부터 나는 ‘반쪽이’가 덜 불편해졌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이 반쪽이가 진짜 몸이 반밖에 없는 존재로만 여기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쪽이를 그릴 때 진짜로 반쪽이 모습을 반쪽으로만 그릴 것이 아니라 숨겨진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반쪽을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옆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많은 <반쪽이> 그림책이 나왔지만 정승각이 그린 <반쪽이>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안타까운 건 이 책이 전집으로 두손미디어에서 나온 뒤 노벨과개미를 거쳐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길!
3.
아이들은 스스로를 반쪽이처럼 느낀다고 한다. 물론 이야기 속 반쪽이처럼은 아니다. 어른들에 비해 형편없이 작은 몸 때문이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반쪽이>는 자아가 생기는 시기 아이들에게 딱 맞는 이야기일 듯싶다. 보통 아이들은 18개월~24개월 사이에 다른 사람과 다른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좀 더 분명히 자신과 다른 사람의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으려면 30개월 이상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작은 몸 때문에 자신을 반쪽이처럼 느끼는 건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어깨하는 거대한 사람을 만나면 괜히 움츠러들곤 한다. 키가 작은 나는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키가 큰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때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쪼그라들곤 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스스로 반쪽이처럼 느껴지는 건 단지 작은 몸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가는 데는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이 너무 많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걸 나만 모르고 있을 때, 남들은 쉽게 하는 일을 나만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을 못 할 때…….
아니, 남들보다 몸이 작은 건 이런 일에 비하면 오히려 별 문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좀 안타깝긴 해도 내가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간혹 키가 작은 걸 놀리는 사람이 있어도 얼마든지 웃으면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키처럼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고 여겨졌을 때였다. 비록 반쪽이는 아니라도 스스로 바보 같다고, 반편 같다고 느낄 때였다. 마음속에 일종의 콤플렉스가 나를 짖누를 때면 나는 마치 반쪽이처럼 느껴졌다.
4.
반쪽이의 두 형의 반쪽이와 대비되는 인물들이다. 반쪽이와 달리 온전한 몸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두 형은 반쪽이가 마음에 안 든다.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 따라오려는 반쪽이를 죽이려 한다.
반쪽짜리 동생이 창피해서 사라지길 바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흔히 옛이야기에서 형제란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두 형은 반쪽이가 속으로 부러워했을 완벽함이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혐오하고 있는 마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두 형은 따라오는 반쪽이를 바위에, 커다란 나무에, 호랑이굴에 묶어두고 떠난다.
“떠난다!”
지금까지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두 형의 떠남이 이번엔 특별하게 다가왔다. 두 형은 과거 시험을 보러 떠난다. 반쪽이 같은 찌질한 마음은 두고 자신만만하게 가야 하는 길이다. 두 형이 반쪽이를 죽이고 가려는 이유다.
하지만 완벽해 보였던 두 형이 반쪽이를 바위에, 커다란 나무에, 호랑이굴에 묶어두고 떠나자 반쪽이는 숨겨져 있던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무거운 바위는 땅에 박혀 있고, 커다란 나무는 땅속에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호랑이굴은 말 그대로 땅속에 존재한다. 말할 것도 없이 땅속이란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힘이다. 반쪽이는 ‘끙’하고 숨겨져 있던 잠재된 힘을 순간적이고, 폭발적으로 발휘한다.
이처럼 형들이 떠난 뒤에 반쪽이가 자기 내면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완벽해 보였던 형들에게 자신의 콤플렉스가 생겼고, 콤플렉스에 묶여 꼼짝 못 하게 됐던 것이라 볼 수 있다. 하기야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사람이 불안감을 꽁꽁 잡아 매두고 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반쪽이는 내면의 무의식적인 힘을 발휘해 다시 형들을 따라잡고, 따라잡고 한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완전해졌다고 여겨지지만, 곧 또 다른 문제가 끊임없이 생기는 것과 같다. 반쪽이가 반복해서 형들에게 묶이고, 이를 풀고, 형들을 쫓아가는 건 이 때문이다.
반쪽이는 호랑이굴에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고, 호랑이들을 다 잡은 뒤에야 형들을 쫓아가는 걸 멈춘다. 아마도 반쪽이는 앞으로도 콤플렉스 때문에 힘들어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콤플렉스에 매몰되지 않는 상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5.
이제부터 반쪽이에겐 자신과의 대결이 아닌 외부세계와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 대결은 반쪽이의 지혜가 돋보인다. 반쪽이의 지혜는 두 번에 걸쳐 나타난다. 장자와의 장기두기, 장자 집에서 딸을 데려가기.
호랑이 가죽을 빼앗으려는 장자는 장기두기 내기를 해서 반쪽이가 이기면 딸과 결혼시켜 주기로 한다. 반쪽이가 연거퍼 이기자 딸을 데려가라고 하면서도 못 데려가게 하려고 온 집안 사람들을 동원해서 지킨다.
하지만 반쪽이는 가기로 한 날짜에 가지 않고, 못 간 핑계를 댄다. 결국 장자는 하루, 이틀, 사흘 연거퍼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깊은 잠에 빠져들고, 그 사이 반쪽이는 딸을 데리고 나온다.
이 장면은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다. 난리가 난 집안 풍경은 유쾌하고 속 시원하다. 욕심 사나운 장자의 이빨이 가족들에 의해 박살나는 장면은 특히나 통쾌하다.
반쪽이가 딸을 데려간 날 데려가지 않은 걸 과연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호랑이 가죽을 빼앗고 싶은 마음에 반쪽이를 얕보고 장기 내기를 제안했던 장자는, 막상 내기에서 지자 어떻게서든 딸을 못 데려가려고 막는다. 애초에 잘못은 장자에 있다. 더구나 신분의 차이도 있다. 반쪽이는 계약대로 장자의 딸을 데려오기 위한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이야기는 해피 엔딩이다. 반쪽이는 형들을 따라 과거를 보러 가진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장자와의 대결을 통해 장자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줬다.
6.
여기서 잠깐, 장자의 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반쪽이는 해피 엔딩인데 과연 딸도 그럴까?
“엄마, 근데 딸도 반쪽이는 딸한테 결혼하자고 물어봤어? 그래서 결혼한 거야?”
‘반쪽이’ 이야기를 듣던 딸아이가 문득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5-6살 때쯤의 일이다.
나는 그다음부터 ‘반쪽이’ 이야기를 해줄 때면 꼭 이 대목을 넣어서 들려줬다.
“반쪽이는 딸에게 물었어. 나랑 결혼해 주겠소? 딸은 반쪽이가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지.”
어린 딸도 여성의 입장이라 딸의 태도는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반쪽이’ 이야기에서 겉으로 볼 때 딸은 아버지에게 거래대금 취급을 받았고, 반쪽이에게 마치 납치당하듯 결혼을 한다. 과거에 딸을 장자처럼 취급하는 이야기도 많고 실재로 이런 일도 많았지만 이런 모습이 부당하다는 건 여성으로서 당연히 느꼈을 것이다. 딸 입장에서 이런 집안은 탈출하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반쪽이가 딸을 업어가는 장면을 보면 반쪽이가 딸 방에 들어가 직접 업고 나오는 게 아니다. 방안에 슬쩍 벼룩과 빈대를 넣어두어 딸이 스스로 방안에서 뛰어나오게 한다. 딸이 스스로 방 안에서 나온다는 것은 어쩌면 딸이 각성하고 탈출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7.
언제부턴가 나는 콤플렉스가 두렵지 않게 됐다.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콤플렉스가 있다고 해서 예전처럼 크게 기죽거나 하는 일은 적어졌다.
부족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일시적으로 쪼그라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마음속 또 다른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엔 내가 너무나 많아서 각자 한마디씩 해 대는 통에 정신이 나가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이곤 한다. 노력해서 가능한 건 노력을 해보고, 노력해도 소용없을 땐 ‘그럴 수도 있지 뭐.’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그래서 때로는 콤플렉스가 무척 고마워질 때도 있다. 이런 계기가 없었다면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일이 별로 없었을 것 같아서다. 그런 점에서 때때로 ‘콤플렉스는 나의 힘!’이다. 나는 반쪽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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