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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by 오른발왼발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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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1. 나뭇가지에 걸린 붉은 어머니

 

아들이 집에 돌아오자 집 앞 나뭇가지에 붉은 것이 걸쳐 있었다. 찢겨 죽은 어머니의 거죽이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한다.

끔찍한 사건의 현장이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 범인은 금방 밝혀진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인 새!

아들은 어머니 복수를 하러 집을 나선다.

 

2. 범인이 있는 곳을 찾아라!

 

아들은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디에 사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은 무작정 길을 떠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가 사는 곳을 아는지 묻는다.

많은 옛이야기에서 그렇듯 이들은 쉽게 답해주지 않는다. 저마다 특별한 일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아들이 그 일을 마쳤을 때야 답을 해준다. 그 답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결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다음 단계를 알려주는 정도다. 경우에 따라서 가는 길에 벼룩, 빈대, 모기를 가져가라고 말해주거나 길을 안내해 주는 갈퀴를 주기도 한다. 마치 게임에서 퀘스트를 수행하고 아이템을 얻는 식이다. 옛이야기에서 이 같은 구성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에 몰입을 할 수 있게 하는 건 이런 요소 때문일 것 같다.

아들이 수행하는 퀘스트는 길 떠나는 옛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과제와 비슷하다. 빨래를 하고, 농사를 지어주고, 까마귀에겐 벌레를, 멧돼지에겐 상수리를 주워다 주거나 준다. 이야기에 따라 담배를 심고, 글공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들이 그 일을 하는 동안 시간이 흐르고 성장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아들은 마침내 모든 퀘스트를 수행하고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3.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격퇴

 

마침내 아들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가 사는 곳에 도착한다.

하지만 힘이 약한 아들은 땅속 나라 도둑 괴물을 물리치는 신랑처럼 당장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를 무찌를 수가 없다. 일단은 숨어서 상대를 지켜본다. 자연스레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가 하는 행동을 엿본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는 마치 엄마가 일을 하듯 떡을 하고, 밥을 하고, 죽을 한다. 하지만 뭔가 어설프다. 떡을 하고 칼을 빌리러 가고, 밥을 하고 주걱을 빌리러 가고, 죽을 하고 바가지를 빌리러 간다. 그 사이 아들은 남겨진 떡과 밥과 죽을 먹고 힘을 기르지만 연달아 아무것도 먹지 못한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는 기운이 없어 쓰러진다.

이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참으로 이상해 보이던 장면이었다. 빌리러 간 물건들이라는 게 떡과 밥과 죽을 하는 집이라면 당연히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혹시 없다 해도 떡과 밥과 죽이 완성되기 전에 미리 빌려다 놓을 수도 있을 텐데 굳이 다 해 놓고 빌리러 간다.

이 때문에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는 미련하고 만만해 보인다. 아마도 아들이 이런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의 허점 덕분에 새를 물리치게 될 것이란 암시를 주긴 하지만 뭔가 찜찜했다. 혹시나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가 일부러 아들에게 떡과 밥과 죽을 먹으라고 자리를 피해준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래 가사처럼 아들을 잘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어머니가 진짜로 짜장면을 싫어한다고 생각한 아들이 신이 나서 짜장면을 먹듯이, 아들은 떡과 밥과 죽을 먹는다. 덕분에 아들은 힘이 세지고,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는 약해진다.

힘이 빠진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는 잠을 청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물어대는 벌레들을 피해 가마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들은 가마솥 뚜껑을 닫고 불을 때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를 물리친다.

 

4. 나뭇가지의 붉은 어머니 그리고 호랑이가 떨어진 붉은 수숫대

 

이야기의 서두에 나오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어머니의 거죽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이 장면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또 있다. ‘조마구라는 이야기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어머니한테 달려들어 두 눈을 빼서 내던지고 꽁꽁 묶어 마당가에 서 있는 대추나무에다 매달아 놓고는 어디론지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이상하게도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가 떨어진 붉은 수숫대가 연상된다. 그래서일까?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는 실은 괴물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야기를 보면 볼수록 더욱 그렇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다. 대부분 판본이 어머니와 아들이 산다고 하고, 다른 가족이 있다 해도 마치 전시물처럼 나뭇가지에 처참하게 걸리는 건 어머니뿐이다. 형제(남매. 자매)가 나오기도 하지만 길을 떠나는 건 기본적으로 혼자다. 제주도 이야기에서는 세 자매가 함께 떠나지만, 말만 세 자매지 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꼬랭이 닷 발 주딩이 닷 발’(진순이 구술, 경남 거제군 동부면, 1979)에서는 동생과 함께 떠난다고 하지만 이야기에서 보이는 건 오빠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간 곳에서 본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는 영락없이 어머니처럼 행동한다. 이쯤 되면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가 엄마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머니는 왜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가 됐을까? 아니, 어머니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가 된 게 아니라 아들이 어머니를 그렇게 본 것은 아닐까?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다시 보자. 아들이 나뭇가지에 걸린 어머니 거죽을 발견하는 것은 밖에 나갔다 돌아왔을 때이다. 흔히 옛이야기에서 길을 떠난다는 건 오랜 시련과 성장을 뜻한다. 그렇다면 일을 하기 위해서 잠깐이지만 밖에 나갔다 돌아왔다는 건(집을 떠나 있었다는 건) 아들이 한 단계 성장한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의 모습을 부정하는 시기가 온다. 부모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가깝게 지내는 어머니에 대한 부정은 더욱 심하다. 그 부정은 대개는 각자가 그리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완벽한 상에 비해, 실제 엄마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엄마는 괴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혹시 우리 엄마가 계모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그 하나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에서 찢겨서 나뭇가지에 걸린 엄마의 거죽은 바로 아들 자신이 엄마를 부정하며 찢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엄마를 그렇게 만든 책임을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에게 돌리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잘못된 오해에서 문제가 생겼음에도 그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며 엄마 때문이야!”를 외치듯이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아들이 엄마의 복수하러 떠나는 것은 실은 엄마 모습에서 없애고 싶은 것을 좇아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완벽해야 할 엄마의 모습에 부정적인 것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실로 오랜 세월이 걸린다. 아들이 길을 떠나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의 집으로 가는 기간만큼이나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이르러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가만히 지켜보며 떡과 밥과 죽을 얻어먹고도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힘이 없어진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를 죽이고야 만다.

 

이렇게 보면 나뭇가지에 걸린 어머니 거죽과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가 떨어진 붉은 수숫대와는 같은 듯 다른 면이 있다. 나뭇가지와 수숫대의 붉은빛이 어머니를 상징한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어머니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가 된 것이 아들의 감정 때문이었다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어머니가 호랑이로 변한 것은 어머니 감정 때문이라 할 수 있다.

 

5. 모기

 

아들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를 물리친다. 이제 모두 끝이 난 걸까?

이야기의 마무리에서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는 모기가 된다. 모기의 모습에서 새의 모습이 연상되므로 아주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런데 보통 이렇듯 모기가 되었다로 끝나는 이야기는 그것의 유래담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모기는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새를 물리칠 때 도구로 썼던 것 가운데 하나가 모기다. 모기는 밖에서 잠을 청하는 새를 물어서 가마솥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새가 모기가 되어 사람들을 문다. 아들도 물론 그 모기에 물릴 것이다.

아들은 모기가 엄마를 물게 하고, 모기가 된 엄마는 아들을 문다. 자식과 부모는 이렇듯 서로 조금씩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관계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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