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오누이 힘내기' 혹은 '전강동과 그 누이'

by 오른발왼발 2022. 12. 5.
728x90

'힘'나를 강하게 하거나 망가지게 하거나

 ‘오누이 힘내기혹은 전강동과 그 누이

 

 

 

1.

 

더 힘이 세지고 싶어!”

딸아이는 가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스무 살도 넘은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좀 뜬금없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그러다 궁금해 물었다.

?”

아이의 대답은 단순했다.

좋잖아!”

뭐가 좋은지 묻지는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아이가 말하는 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진짜 을 뜻하기도 했지만, 뭐든지 잘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2.

 

흔하지는 않지만, 옛이야기에도 힘이 센 여자 이야기가 있다. ‘힘센 전강동과 누이’, ‘오누이 힘내기에 나오는 누이다.

 

힘이 세면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오누이 힘내기’에 나오는 누이는 그렇지 못했다. 그 힘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동생은 자기보다 힘이 센 누나를 없애려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하자고 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누이는 내기에서 진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내기였으나, 동생이 이기길 바라는 엄마의 방해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그 흔적으로 누나가 쌓던 성이 증거로 제시되곤 한다. 이는 이 이야기가 민담이 아니라 분명한 증거물이 있는 전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전설에서 주인공이 비극적 결말을 맺는 것처럼 누이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만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설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고,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마다 그 증거물인 성곽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누구보다 힘이 셌지만, 힘이 세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던 불행한 여성의 처지를 보여주는 암울한 이야기인 셈이다.

 

다행히 ‘힘센 전강동과 누이’ 이야기는 다르다. 힘자랑만 일삼고 다니던 동생 전강동은 누이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힘자랑을 멈춘다.

그렇다면 힘자랑은 나쁠까?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전강동이 힘이 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중들은 누이가 대문에 매달아 놓은 바위를 머리로 박고 그대로 쓰러진다. 힘자랑을 좋아하는 중들이 전강동이 힘을 기를 때 쓰는 바위라는 말을 듣고 가만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알게 됐을 때 가장 통쾌했던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 만약 전강동이 계속 힘자랑을 하고 다녔다면 전강동의 신세도 중들의 신세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 전강동의 누이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힘도 세고 지혜롭기도 한 누이가 여자라서 더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전강동의 누이를 보는데, 이상하게도 오누이 힘내기속의 누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쩌면 전강동의 누이가 힘이 세다고 으스대거나 힘내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 것이 여자라서 그 힘을 드러내지 못하며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땐 자신이 힘이 센 걸 자랑하고도 싶었을 테고, 그러다 야단도 맞았을 테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힘을 절제하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전강동의 누이가 이런 이유로 힘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해도 그건 잘된 일이다. 힘내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남들과 힘겨루기를 통해 최고가 되는 법만 알기 때문이다. 만약 전강동의 누이도 어려서부터 맘껏 힘자랑을 할 수 있었다면 전강동의 모습과 똑같았을 것이다.

삶의 지혜란 자신의 힘을 맘껏 자랑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힘자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즉 뭔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가운데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강동의 누나의 힘든 어린 시절은 전강동의 누나가 지혜로워질 수 있는 과정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난 전강동의 누이를 볼 때면 이 말이 생각난다. 너무 뛰어나서 주머니 속에 넣어놔도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송곳.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던 중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낭중지추란 말이 학교나 군대,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뛰어나서 주위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란 뜻으로 말이다. 뛰어난 재능은 주머니 속에 감춰도 튀어나오는 송곳처럼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아주 뜻밖이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학교, 군대, 사회는 겨루기가 가장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자신이 열심히 했다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곳, 어떻게든지 순위를 정해야 하는 곳, 그래서 뛰어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전강동의 누이가 아무리 지혜를 발휘한다 해도 힘자랑과 힘겨루기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3.

 

오누이 힘내기는 슬프지만 전강동과 그 누이는 재밌다.

오누이 힘내기전설은 구체적인 인물과 연결된 경우도 많은데 바로 김덕령, 이몽학처럼 비극적인 인물이다. 내기에서 누이는 억울하게 지고 죽임을 당하지만 그렇다고 남동생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나라의 허락 없이는 성을 쌓아서는 안 되는데 성을 쌓았기 때문에 멸족을 당하기도 한다.

전강동과 그 누이에 나오는 중들처럼 힘자랑을 한 결과는 좋지 않다. 누이는 비록 내기는 하지만 자신이 내기에 이기더라도 동생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니 만약 누이가 이겼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과는 비슷했을 것 같다. 성을 쌓은 건 여전히 역적 행위였으니 말이다.

 

반면 전강동과 그 누이에는 슬픔의 흔적은 없다. 전강동이 힘이 세어진 내력도 재밌다. 애초에 엄마가 아이를 가졌을 때 힘센 아이를 낳으려 소를 잡아먹었다는 화소는 남녀 차별의 흔적이 보이긴 하나 누이가 힘이 더 센 이유까지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 힘센 중들이 마시는 샘물에 대나무막대를 밀어 넣어 마시며 힘을 길렀다는 화소에서는 전강동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재미있다.

전강동이가 누이와 씨름을 해서 지는 장면이나 중들이 바위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게다가 힘자랑을 하며 으스대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한 교훈까지! 만약 이 교훈을 말로만 떠들었다면 그야말로 따분한 교훈이었겠지만, 이야기는 중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한 편의 코미디같이 보여주며 자연스레 교훈을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 과연 자체일까?

힘은 본래 의미로는 근육을 통해 나오는 힘을 뜻하지만, 실생활에서 우리는 힘을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권력의 힘’. ‘공부의 힘’, ‘나라의 힘……. 힘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힘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다. 힘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이 세다고 자만하거나 상대를 무시한다면 힘은 자신을 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어쩌면 오누이 힘내기에서 누이가 죽은 것은 엄마 탓만은 아닐 것이다. 힘내기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힘내기를 안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는 사람을 죽이기로 한 내기에서 이기더라도 동생을 안 죽이려 했다는 서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 미리 말했더라면 엄마도 그런 방법을 안 썼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보면 볼수록 예전에 봤던 것과는 다른 느낌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4.

 

나는 어쩌다 보니 이 두 이야기와 인연이 깊다.

삼 대째 내려온 불씨(해와나무/2015)에서는 <천하장사 오누이의 힘겨루기>를 썼고, 여자답게? 나답게(우리교육/2019)에서는 <힘센 전강동과 그 누이>를 썼다.

원고를 쓸 때와 지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여자답게? 나답게에서는 동생 전강동보다 훨씬 힘이 세면서도 이름조차 갖지 못한 누이에 방점을 찍었지만, 지금 다시 쓴다면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우선은 나를 점검하게 된다. 힘이라고는 별로 없으면서도 힘센 척 했던 순간들…….

더 힘이 세지고 싶다는 아이에게 엄마가 잘난 척하다 망했던 이야기들도 좀 들려줘야겠다. 중들이 바위를 머리로 박으며 코미디를 벌이듯 말이다.

 

 
728x90
반응형

'옛날이야기 책 > 옛날이야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이와 버들도령  (2) 2022.12.20
이야기 주머니  (0) 2022.12.07
반쪽이  (0) 2022.12.04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0) 2022.12.03
손 없는 색시  (0) 2022.12.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