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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특재있는 형제' 또는 '재주 많은 여섯 형제'

by 오른발왼발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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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의 재주를 꺼내 봐

 

 

 

1. 특별한 재주를 가진 형제들 이야기

 

아주아주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형제가 있었다. 이야기마다 형제의 수는 다르게 나온다. 8형제, 6형제, 혹은 4형제, 3형제라고도 한다. 하지만 어느 이야기나 공통점이 있다. 저마다 다 다른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생긴 모습도 똑같아서 사람들이 누가 누군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쌍둥이냐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쌍둥이 형제라는 말은 그 어떤 이야기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형제는 위기가 닥치면 그때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재주를 가진 형제가 나서며 문제를 해결한다.

 

그럼 형제들의 재주를 한번 살펴보자. 형제들이 각각 어떤 재주를 가졌는지를 알려면 이들의 이름만 알면 된다.

 

옛날에 어떤 곳에 만리보기천리보기, 진둥만둥, 자른둥만둥, 여니딸깍, 줄었다늘었다, 깊으니얕으니, 더우니차니, 올려치기내리치기라고 하는 8형제가 있었다. 이 8형제는 이름은 달라도 그 얼굴은 다 똑같았다.

 - 《한국구전설화 1-평북 1》, <특재있는 8형제>, 임석재 채록, 평민사

 

평북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렇듯 모두 형제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이 무슨 재주가 있다는 말이 나오기 전이지만, 이름만으로도 이들이 무슨 재주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천리보기만리보기는 앞날을 내다보고(혹은 먼 곳을 볼 수 있고),

진둥만둥은 짐을 지면 질 수로 아무것도 지지 않은 것처럼 가볍게 여기고,

자른둥만둥은 아무리 목을 베도 베어지지 않고

여니딸깍은 무슨 열쇠든지 딸깍 열 수 있고,

줄었다늘었다는 연자방아에 넣어 갈아 죽이려 해도 몸이 줄었다늘었다 해서 죽지 않고,

올려치기내리치기는 벼랑에서 굴러떨어져도 죽지 않고,

더우니차니는 아무리 뜨거운 것도 차게 느끼고,

깊으니얕으니는 깊은 바다에서도 빠져 죽지 않는 재주가 있다.

 

다른 이야기도 비슷하다. 형제 수가 다르다 보니 빠지는 재주가 있고, 이름이 조금 달라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전남 지역에서 전하는 이야기에서는 아버지가 죽기 전에야 아들들 이름을 지어준다. 그 이름이 천리만리, 열때잠글때, 지나마나, 깊으나얕으나, 뜨거나차나, 베나마나였는데, 아들들은 아버지가 이름 지어준 대로 각각 특별한 재주를 지니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통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단번에 이야기를 기억한다. 이름이 워낙 재밌기도 하지만 이름과 딱 들어맞는 형제의 재주가 펼쳐내는 이야기가 흥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2. 위기, 옥에 갇히다!

 

형제의 재주가 빛을 발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형제가 옥에 갇히면서다. 처음 옥에 갇히는 건 진둥만둥이다. 왕 혹은 부잣집 곳간을 털어서 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제는 왕(부자)이 진둥만둥의 목을 베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진둥만둥을 빼오고 자른둥만둥을 들여보낸다. 또 연자방아에 넣고 갈아 죽이려 하자 자른둥만둥을 빼오고 줄었다늘었다를 들여보낸다. 이런 식으로 형제들은 계속 바꿔치기하며 왕을 골탕 먹인다. 이 과정에서 천리보기만리보기나 먼말듣기가 이런 상황을 보거나 듣는 역할을 하고, 여니딸깍은 옥문을 열고 바꿔치기를 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상황에 따라 형제가 서로를 바꿔치기하며 위기를 모면하는 상황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다. 형제들이 상황에 딱 맞는 형제들로 바꿔치기하는 과정이 형제들의 재주와 딱 맞아떨어지며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름 때문에, 어쩌면 다음 사건이 어떻게 펼쳐질지가 뻔히 드러나지만, 그 뻔함이 맞아떨어질 때 오는 쾌감이 너무 커서 앞서 이들이 왜 옥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잊게 될 정도다.

이야기의 결말은 당연히 해피앤딩이다. 형제를 죽이려던 왕이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거나, 형제에게 상을 주는 것으로 끝난다.

 

3. 형제들이 서로 바꿔치기 할 수 있었던 까닭

 

그런데 이쯤 되면 한편으로 궁금해지기도 한다. 바꿔치기가 어떻게 탄로나지 않았을까?

형제들의 모습이 똑같지 않다면 이런 바꿔치기는 불가능하다. 보통 형제들이 서로 닮는 경우가 많기는 하나, 누가 봐도 똑같을 정도로 닮은 경우는 일란성 쌍둥이 외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야기에서 쌍둥이란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곰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들 형제가 실은 모두 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보통 옛이야기에서 형제가 등장할 경우 그 형제가 실은 한 사람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해석되곤 한다.

콩쥐 팥쥐에서 콩쥐와 팥쥐가 각각 다른 인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두 모습으로 해석되는 식이다. 이때 콩쥐와 팥쥐의 모습이 콩쥐는 예쁘고 팥쥐는 못생긴 듯 이야기가 전개되곤 하는데, 이는 두 내면의 모습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이 눈치 못 챌 정도로 모습도 똑같은 형제를 한 사람으로 보는 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내가 형제를 한 사람의 모습이라 생각하게 된 까닭 가운데 하나는 이들의 재주가 마치 만화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톰과 제리에서 몸이 잘리고 눌리고 해도 바로 몸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형제들의 재주가 비슷해 보였다. 만화에서 이런 발상이 가능한 것은 어린아이들의 사고 체계와도 관련이 있다. 아이들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긴다. 혼자서 특정 상황을 만들어내고 그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연극 놀이를 펼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자신만의 세계에서는 진실이라 믿는 그런 상황을 얼마든지 상상한다. 그 상황은 그대로 아이들의 연극 무대가 되고, 아이는 1인 다역을 얼마든지 해낸다. 말도 안 되는 특별한 재능을 펼치면서 말이다. 아이들의 상상 속 세계에서 아이들은 톰과 제리의 한 장면처럼 얼마든지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부활시키며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천리보기만리보기가 되어 자신 안의 여러 재주를 하나의 캐릭터처럼 소환해내면서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러 형제의 모습이 똑같은 것이 너무 당연해진다.

 

4. 아이들을 꼭 닮은 이야기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일단은 형제의 이름이 주는 재미 때문이다. 아이들은 말놀이를 즐기듯 형제의 이름을 외운다.

천리 보고 만리 보고, 여니 딸깍, 진둥 만둥, 자른둥 만둥, 줄었다 늘었다, 깊으니 얕으니, 더우니 차니…….”

한번 소리를 내서 읽어 보라. 리듬감도 살려서 말이다. 형제의 이름을 외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말놀이가 된다.

게다가 형제는 어른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재주로 문제를 해결한다. 몸이 작고, 그래서 어른들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늘 커졌어?” “!”란 말을 자주 한다. 이 몸의 열등감은 몸으로 극복될 수 있다. 이야기에서 형제의 재주는 모두 상상으로만 가능한 몸의 재주다. 이 상상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상상 속에서 어른들은 못하는 몸의 재주를 펼쳐내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며 열등감을 떨쳐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진짜 재주를 소환해내는 능력도 갖게 될 것이다. 아직은 자신의 진짜 재주가 뭔지 모르고 있지만, 그 가능성을 가득 품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는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 그림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 조금 의외다.
이미 절판된 그림책과 전집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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