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뱃속이 어떻게 생겼냐 하면……
- ‘호랑이 뱃속 구경’, ‘호랑이 뱃속 잔치’ -
1.
호랑이에게 꿀꺽 삼켜져 호랑이 뱃속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1>
어떤 사람이 호랑이에게 통째로 삼켜졌는데, 배가 고파지자, 가지고 있던 칼로 호랑이 뱃속에 있는 간이며 쓸개를 잘라 먹었다. 호랑이는 아파서 펄쩍펄쩍 뛰다 죽고 그 사람은 호랑이 배를 가르고 빠져나왔다.
<2>
어떤 사람이 호랑이에게 통째로 삼켜졌다. 삼켜질 때 호랑이 목에 올가미를 걸거나 혹은 삼켜진 뒤 똥구멍 사이로 꼬리를 끌고 들어오거나 한다. 그 사람은 꼬리(올가미, 끈 등)를 손에 꼭 쥐고 있다가 호랑이 똥구멍 혹은 입을 통해 탈출한다. 그 결과 호랑이는 뒤집어진다.
두 유형 이외에 뱃속이 뜨거워진 호랑이가 바닷가에 갔다가 고래한테 삼켜지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람들이 호랑이 배에 이어 고래 배까지 가르고 나온다는 점에서 <1>의 유형이라 볼 수 있다.
2.
호랑이가 꿀꺽 삼키는 바람에 호랑이 뱃속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 이 사람들은 지독하게 운이 나쁜 걸까? 아님 지독하게 운이 좋은 걸까?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지독하게 운이 좋은 쪽이 맞는 것 같다. 호랑이 가죽을 팔아서 다들 엄청 부자가 됐으니까. 게다가 호랑이 가죽 한 장에서 끝나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호랑이 가죽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삼켰던 호랑이가 다른 호랑이들을 다 물어 죽였기 때문이다.
아, 물론 호랑이 가죽을 얻지 못한 경우도 있다. 호랑이가 뒤집어진 경우는 가죽을 벗겨 판다는 이야기가 없다. 심지어 ‘호랑이 뱃속’(대계, 권영복 구술, 강원, 1983 채록)에서는 호랑이가 뒤집힌 걸 보고 가죽을 이미 다른 사람이 벗겨갔다고 생각한다. 범의 가죽을 얻게 되는 건 단 한 편, ‘범 잡은 풍물쟁이 팔 형제’(대계_민영곤 구술, 경남, 1981 채록)뿐이다. 아마도 뒤집힌 호랑이를 또다시 뒤집어 가죽을 벗기려면 팔 형제의 힘 정도는 필요하기 때문인 듯 싶다.
아무튼 호랑이 뱃속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세상으로 나온다. 호랑이 가죽을 얻은 사람은 풍족한 삶을 살게 됐다. 그렇다면 호랑이를 뒤집어 탈출하는 바람에 호랑이 가죽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될까?
호랑이가 뒤집히는 경우는 대개 뒤집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그 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한 편 있다. 앞서 언급한 ‘호랑이 뱃속’ 이야기다. 여기서는 서울에서 개를 훔쳐서 팔아먹던 사람이 주인공인데, ‘시골엔 도둑놈 없다더니 눈만 감으면 전부 도둑놈이니 난 서울 올라가 도로 개 훔쳐먹고 살아야겠다’면서 돌아간다. 즉,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도 그들 역시 예전보다는 더 잘살게 됐을 거라 믿는다. 적어도 그들은 호랑이 뱃속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니 말이다.
3.
호랑이 배를 가르고 나오거나 호랑이를 통째로 뒤집어버리거나 사람들이 호랑이 뱃속에서 나온 방법은 다르지만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이 호랑이로 상징되는 무서운 존재의 은밀한 내면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둘째는 호랑이의 배를 가르거나 뒤집음으로써 무서운 존재인 호랑이를 죽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물건들이 있다.
호랑이 배를 가르고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칼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칼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호랑이 내장을 잘라 먹을 수 있었고, 호랑이는 칼로 베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 죽는다. 또 칼이 있었기에 호랑이 배를 가르고 나올 수 있었고, 호랑이 가죽도 벗길 수 있었다.
이렇게 ‘칼’의 역할이 중요해서인지는 몰라도 이 이야기에서는 유난히 ‘신 장수’가 많이 등장한다. 신 장수가 가지고 다니는 칼은 무사들이 차고 다니는 근사한 칼이 아니다. 짚신을 만들고 겉에 붙어 있는 잔털들을 정리하기 위한 작은 칼이다. 주인공이 신 장수가 아닌 경우에도 칼은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작은 (접는) 칼로 나온다. 만약 긴 칼을 옆에 찬 사람이었다면 호랑이는 꿀꺽 삼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호랑이는 칼의 존재를 몰랐기에 맘 놓고 꿀꺽 삼킬 수 있었을 것이다.
칼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궁금했다. 자료를 찾다 보니 이런 내용이 눈에 띠었다.
칼은 복수와 죽음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희생도 상징한다. 이런 사정을 전제로 짧은 칼날은 그 칼을 휘두르는 사람의 본능적인 힘을 상징하고, 긴 칼날은 정신적 고양을 상징한다.
-《문학으로 읽는 문화 상징 사전》(이승훈/푸른사상)
어쩌면 이야기 속 ‘칼’의 의미도 마찬가지일 듯 싶었다. 호랑이에게 삼켜진 사람은 호랑이 뱃속에서 자신도 미처 몰랐던 본능적 힘을 발휘했고, 그 결과 호랑이를 죽이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됐다.
그렇다면 호랑이를 뒤집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건은 무엇일까? 이야기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꼬리, 낚싯줄, 올가미 같은 것들이 보인다. 이들은 긴 끈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호랑이 뱃속에 들어간 사람은 그 안에서도 그 끈을 절대로 놓지 않는다. 그리고 낚싯줄이나 올가미로 호랑이 머리를 낚았던 사람은 그 줄을 잡고 똥구멍으로 나온다. 반대로 꼬리를 끌고 들어갔던 사람은 아가리를 통해 나오고 말이다.
호랑이 뱃속에 있던 사람에게 끈은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의 끈이었다. 그래서 온힘을 다해 붙잡아야 했다. 그리고 빛이 들어오는 곳을 향해 그 끈을 잡고 나간다. 희망의 끈은 결코 그 사람을 배신하지 않았다. 끈 덕분에 그 사람은 호랑이 뱃속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끈은 ‘이어짐’을 상징하기도 한다. 몸이란 사실 겉과 속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구조다. 뱃속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구멍으로 통해 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가죽과 똑같이 겉면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구멍이 뚫린 도넛의 안쪽 역시 겉면인 것처럼. 그래서 끌고 들어왔던 끈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끌고 나가면 뒤집힐 수밖에 없다. 즉. 속에 감춰져 있던 겉이 드러나는 것이다.
호랑이라는 무시무시한 가죽을 쓰고 있을 때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감춰져 있던 속은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간이며 쓸개며…… 우리와 똑같다.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아마도 그들은 예전의 일상과는 또 다른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줄 알았던 호랑이도 알고 보면 그 속은 자신의 뱃속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더 이상 호랑이가 두려울 까닭은 사라졌다.
4.
이야기의 주인공이 호랑이를 잡으러 나서는 장면을 보며 문득 그림형제의 <용감한 꼬마 재봉사>가 떠올랐다.
<용감한 꼬마 재봉사>에서 꼬마 재봉사는 빵에 잼을 발라놓고는 파리가 모여들자 천을 휘둘러 파리 일곱 마리를 잡는다. 그리고 ‘한 방에 일곱’이라 옷에 써 붙이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물론 호랑이 뱃속에 들어가는 주인공은 재봉사처럼 일부러 파리가 몰려오도록 판을 깔아 놓지는 않는다. 아주 우연히, 자신의 의도하지 않았지만 엉겁결에 호랑이를 잡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호랑이를 잡으러 나서게 된다.
즉 이들은 호랑이를 잡을 만한 능력 없이 자신감에 불타올라 호랑이를 잡으러 나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주막에서 말리기도 한다.
“아이가. 이 양반아. 일등 포수도 오먼, 저 들어가는 포수는 있어도 나가는 포수는 없다 쿠는데, 당신이 무슨 호랑이로 잡아?”
(‘신장수의 호랑이 잡기’ 대계-이필녀 구술_경남)
하지만 한번 마음먹은 일은 누가 말린다고 해서 듣지 않는 이들이다. 한번 마음먹으면 그대로 앞을 향해 나갈 뿐이다. 전형적인 옛이야기형 인간이다. 그리고 조금(?) 무모해 보이긴 해도 이렇게 움직이는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 변화는 일상적 삶에서는 결코 발휘되지 않을 내면의 힘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거기서 멈췄더라면 호랑이에게 꿀꺽 삼켜지는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 호랑이 뱃속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도 없었을 테고, 호랑이 배를 가르고 나와 호랑이 가죽으로 부자가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이야말로 자신을 바꾸고(부자가 되고), 세상을 뒤집어 보일 수도 있는 혁명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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