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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메추리와 여우

by 오른발왼발 202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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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웃으며 즐기다 보면……

- 메추리와 여우-

 

 

 

 

1. 움직이는 이야기의 맛

크크크크.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온다. 메추리의 움직임을 따라갈 때마다 벌어지는 사건 때문이다.
메추리는 평범하다 못해 조금은 볼품없는 새다. 움직임도 크지 않다. 이야기에서 메추리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의태어에서도 그 느낌이 드러난다.
발발발발, 홀짝홀짝, 달랑달랑, 까불까불.
이야기는 여우에게 붙잡힌 메추리가 여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를 쓰고 꾀를 생각해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지만 이런 마음은 곧 사라진다. 밥 광주리를 이고 가는 아주머니 앞에서 발발발발 조는 척하며 결국 아주머니가 밥 광주리를 내려놓고 자신을 쫓아오게 하는 장면은 그것만으로도 우습고도 재미나다. 앞서 가는 옹기장수의 옹기짐에 달랑달랑 붙어가며 뒤에 오는 옹기장수가 자신을 잡으려 작대기를 휘두르게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 재밌는 건 메추리의 작은 움직임에 비해 일어나는 사건은 제법 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딱 맞아떨어지지는 건 아니지만 나비효과란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움직임이 큰 이야기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법이다. 움직임이 크면 사람들의 눈길이 저절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메추리를 잡으려 계속 실패하면서도 메추리 뒤를 쫓는 아주머니를 따라가고, 옹기장수들의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으로 가고, 작대기에 얻어맞고 도망가는 여우를 따라가며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2. 희노애락의 현장

그런데 더 재밌는 건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웃다 보면 문득 인생의 희노애락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메추리는 여우에게 말한다.

 

“배부르게 해 드릴게요.”
“우스운 꼴 보게 해 드릴게요.”
“눈물 나게 아픈 맛을 보게 해 드릴게요.”

 

배가 고팠던 여우는 메추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메추리의 말대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부른 여우는 우스운 걸 보여준다는 메추리의 말에 또다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배가 부르면 재미있는 걸 보고 싶은 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메추리는 약속대로 배부를 만큼 충분히 먹게 해줬으니 신뢰도 쌓인 상태다. 그러니 눈물 나게 아픈 것도 보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럽다.
메추리의 꾀에 빠져드는 건 여우만이 아니다. 밥 광주리를 이고 가던 아주머니는 딱 한 발짝씩 앞서가는 메추리를 보는 순간 메추라기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고 가던 밥 광주리마저 내려놓고 메추리만 쫓는다. 메추리가 한 발짝씩 앞서가는 것이 계략이라는 걸 모른 채 말이다. 옹기장수들도 마찬가지다. 메추리 잡기에 실패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밥 광주리의 밥은 모두 사라지고, 옹기도 다 깨지고 난 뒤다. 아주머니나 옹기장수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망연자실할 상황이다. 하지만 구경꾼의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우습고 재미난 것도 없다. 물론 한편으론 아주머니나 옹기장수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며 한심하게 여기거나 측은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경꾼이라고 늘 구경꾼 역할만 할 수는 없다.
두 번이나 메추리의 제안에 재미를 본 여우는 세 번째 제안도 얼른 받아들인다. 하지만 결과는 여우의 예상과는 달랐다. 이번엔 작대기가 여우의 콧등을 후려갈기며 구경꾼이 아닌 피해자가 되고 만다. 여우는 메추리가 보여줄 재미만 생각하다 아픈 맛을 본 셈이다. 결국 눈앞의 메추리를 잡을 욕심에 화를 자초했던 아주머니나 옹기장수의 처지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3. 꽁지 빠진 메추리

여기까지만 보면 메추리는 늘 승자인 듯싶지만, 누군가를 늘 승자로만 두지 않는 게 이야기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메추리는 화가 난 여우에게 잡히고, 도망가다 그만 꽁지가 빠지고 만다. 덕분에 마치 메추리의 꽁지가 없는 까닭을 알려주는 유래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한 유래담으로만 보기엔 이야기가 품고 있는 함의가 더 커 보인다.
이야기에서 메추리는 비록 몸은 왜소하지만 지혜롭고 상황 대처력도 뛰어난 모습으로 보인다. 메추리 꽁지가 빠지는 결말은 같지만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이야기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메추리는 토끼의 역할로 나온다. 옛이야기의 대표적인 트릭스터 동물인 토끼와 메추리가 동일선상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메추리가 여우에게 잡혔다 도망을 가다 그만 꽁지를 물리는 바람에 꽁지를 잃고 만다. 덕분에 지혜롭고 상황 대처력이 뛰어난 메추리지만 꼬리가 없는 볼품없는 새로 인식되게 된다.
그렇다면 메추리는 왜 꼬리를 잃어야 했을까?

“이제 이놈도 두 번을 그랬으니까, 세 번만은 안 그래야 하는데.”
 - 메추리의 꽁지가 없고 여우의 콧잔등이 빨갛게 된 이유, 구비문학대계, 신광우

메추리는 거듭해서 자신의 전략이 성공하자 주의가 흐려진 듯싶다. 사람이 계속 성공하다 보면 자신에게 실패란 없다고 믿듯이 말이다. 구술자는 메추리가 이런 성공의 맛에 취해 멈춰야 할 때를 알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하는 듯 싶다. 어떤 면에서는 맞는 것 같다. <호랑이와 곶감> 가운데 토끼가 등장하는 판본을 보면 겁에 질린 호랑이를 놀리던 토끼는 결국 꼬리가 빠진다.(혹은 끊어진다)

 

4. 그림책 옛날에 여우가 메추리를 잡았는데

오호선 글/박재철 그림/길벗어린이

 

이상하게 그림책 옛날에 여우가 메추리를 잡았는데를 보면 조금 싱겁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번에 구비문학대계한국구전설화 1-12에서 이야기를 찾아 읽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메추리다. 이야기에서 모든 사건은 메추리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림책에서는 주인공인 메추리 캐릭터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우의 모습이 강조되어 보인다. 제목부터 여우가 주어로 들어가 있다. 첫 문장도 배고픈 여우로부터 시작한다. 아주머니가 밥 광주리를 내려놓고 메추리를 잡으러 가는 모습만으로도 그 사이 여우가 광주리 밥을 충분히 먹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여우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강조해 보여준다. 이렇다 보니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메추리가 아닌 여우다. 마치 여우가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림책 뒷부분에는 이야기에 대한 해설이 있는데,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다.

“메추리 쪽에서 사건을 보면서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맛 보시기 바랍니다.”

안타깝다. 해설과 달리 그림책은 아무래도 메추리보다는 여우 쪽에서 보게 된다.

 

5. 바로 내 모습! 내가 사는 세상!

이야기를 읽다 보니 자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처음엔 같은 사람인 아주머니와 옹기장수처럼 눈앞의 이익에 눈이 팔려 진짜 중요한 것을 놓쳐 버렸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우와 메추리의 관계를 보며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픈 여우는 메추리를 잡으려 하고, 메추리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착하고 나쁜 기준은 없다. 그 과정에서 여우는 메추리를 믿고 자신의 본능을 충족하려 하고, 메추리는 이를 이용해 여우를 골탕먹인다. 약자처럼 보였던 메추리는 자신만만해져 있다 다시 잡아먹힐 뻔한다. 결국 도망은 치지만 그 대가로 꼬리를 잃어야 했다.


동물이 주인공인 이야기지만 단순한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보며 메추리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메추리 알은 알아도 메추리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본 적도 없었다. 백과사전을 살펴보니 겨울철새라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모내기철, 겨울 철새가 등장할 리가 없었다. 다른 옛 자료들을 살펴봐도 여름철에 메추리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그러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나온 조류도감( 메추라기 - Daum 백과)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관찰되는 텃새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참고로 메추리와 메추라기는 같은 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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