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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삼살을 면한 사람

by 오른발왼발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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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살(三煞)을 면한 사람

 

 

 

 

한국구전설화 1 평북 1에는 삼살(三煞)을 면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세 편 있다.

삼살이라는 말은 무척 낯설었지만,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야기 주머니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니, 비슷하다기보다는 이야기 주머니의 뒷부분과 똑같은 이야기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야기 주머니에서 아이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글로 써서 주머니에 가둬두는데, 그 갇혀있던 이야기들이 삿된 것()가 되어 장가가는 아이를 해치려 딸기가 되고, 샘물이 되고, 송곳이 되고 한다.

삼살을 면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해치려는 존재가 사()가 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만 다를 뿐 딸기가 되고, 샘물이 되고, 송곳이 되어 장가가는 아이를 해치려 하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두 이야기는 비슷하면서도 어쩐지 하고자 하는 말은 다른 이야기 같았다.

 

삼살(三煞).

 

참으로 낯선 말이었다. 어학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뒤진 뒤에야 삼살이란 말이 점술에서 쓰이는 것으로 겁살(劫煞), 재살(災煞), 세살(歲煞), 이 세 가지를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겁살은 재물에 손해가, 재살은 몸에 횡액이, 세살은 한 해의 주 운세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살로 그쪽 방면으로는 혼인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삼살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과 살()

 

그런데 이번에는 살()자가 궁금해졌다. 한자사전을 찾아보니 죽일 살자인데, 내가 알고 있는 죽일 살()자와는 달랐다. 왜 같은 의미인데 글자는 다를까 궁금했다.

두 글자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자료를 찾으러 이리저리 헤매다가 유튜브에서 정확하게 이 두 글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됐다. 하지만 시청을 하는 건 꺼려졌다. 이 유튜브가 허경영의 강연짤을 모아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자료를 찾지 못했으니 별 수 없었다.

허경영의 설명은 이랬다.https://www.youtube.com/watch?v=uJkuw90JLZA&t=236s

()은 죽이는 자가 귀신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일 때 쓴다고 했다. 즉 살()을 맞았다고 할 때, 때린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 했다. 안 보이는 살()은 보이지 않기에 도망갈 수도 없어 더 무섭다고 했다.

반면 살()은 사람이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죽일 때는 살인(殺人)이라 쓴다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허경영의 설명대로라면 이 이야기에서 살()자를 쓰는 건 너무 당연했다.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보길 잘했다 싶었다.

 

다시 이야기를 봤다.

 

설명대로라면 한국구전설화 1-평북 1에 있는 세 편의 판본은 살()자를 쓰는 게 맞았다. 1935년 채록된 유준용 판본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농막살이하는 집의 아들을 죽이는 거친 말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2편에서는 무덤에서 귀신이 말하고 있었다.

()을 맞을 날은 모두 장가가는 날이다. ‘이야기 주머니에서는 그 아이가 살을 맞는 이유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고 적어서 주머니에 넣어두기만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즉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데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삼살을 맞은 사람이야기에서는 그럴만한 원인이 없었다. 예전엔 혹시 이 이야기가 앞부분이 빠진 채 구전됐던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아닌 듯 싶다. ()이란 특별한 이유 없이도 나에게 닥칠 수 있다. 마치 벼락을 맞는 사람이 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 벼락을 맞는 사람이 랜덤이듯이 살()을 맞는 사람 역시 램덤인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살()이 닥친다고 다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이야기에서는 살()들이 누군가를 해치려 모의(?)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꼭 있다. ‘이야기 주머니에서 머슴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삼살을 면한 사람에서도 살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농막살이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부잣집 머슴살이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냥 근처에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에게 닥칠 액은 아니지만, 이들은 살()들이 모의를 듣고 가만 있질 않는다. 장가가는 사람의 견마잡이로 따라가며 장가가는 사람이 그 액에 다가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어쩌면 살을 맞을 사람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액을 면하는 것 역시 그 사람의 복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역시도 랜덤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만 살()이 아닌 살()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높은 인성이 상대를 감복케 하고, 그래서 그 사람이 자신이 은혜를 입은 상대를 위해 그 액을 막아주기도 한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있는 우정’(전남 승주군, 1984, 정금선 구술), ‘주인 아들 목숨 구하여 부자된 머슴’(전북 정읍군, 1984, 서봉님 구술)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때 장가가는 아들에게 닥치는 액은 삼살관련 이야기에 나오는 액과는 다르다. 사람이 상대를 죽이려 하는 살()이기에 사람들의 직접적인 살해 계획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은 왜 생기는 걸까?

 

이번에도 또 자료를 찾아 뒤지다 유튜브를 보게 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DAvOXiM8zBU)

여기에서는 오래된 것에 살()의 기운이 쌓여 뭉쳐 있다가 그것이 잘못 건드려졌을 때 터진다고 했다.

오래된 것에는 살()의 기운이 누적되곤 하는데, 집이나 땅 혹은 음울한 것들도 뭉쳤다가 터질 수 있다고 한다. ‘()가 된 돈이나 이야기 주머니역시 살()의 기운이 누적된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살()이 터지면 그것이 누구에게 튀는가는 모른다고 한다. 살이 뻗어나가는 방향에 있던 사람이 재수 없게 그 살을 맞기도 한다고 한다. 풍선을 불다 터졌을 때 풍선 조각이 누구에게 얼마만한 크기의 조각으로 튈지, 어느 방향으로 튀어서 누구에게 맞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 설사 살()이 누군가에게 튀었다 해도 모든 사람이 그 살의 피해를 받지는 않는다고 한다. 방어막이 있는 사람은 살을 맞아도 까딱없다고 한다.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는 그 살이 잘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또 독한 사람은 살을 맞아도 끄떡없다고 한다. 문득 전두환이 떠오른다. 자신 때문에 죽은 수많은 원혼들의 살을 수없이 맞았음직한 전두환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아마 전두환은 그 많은 원혼들의 살도 다 막아낼 만큼 독하디 독한 사람이었나 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내 뜻대로 움직이진 않는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기도 한다. 또 반대로 뜻밖의 행운이 다가오기도 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운이 칠이라 해도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운도 피해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서 튈지 모르는 살()이 아무리 무서워도 우리의 의지만 강하다면 피해갈 수 있다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야겠다. 내 중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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