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그림책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요
“아이가 그림책만 보려고 하고, 읽기 책은 도통 보려하지 않아요. 초등학생이면 아무래도 읽기 책을 보는 훈련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려서부터 책을 아주 좋아해서, 책 문제 때문에 이렇게 고민할 줄은 몰랐어요.”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전 저희 아이가 먼저 떠올랐답니다. 저희 아이도 2학년 무렵까지는 직접 꺼내 읽는 책의 70% 이상이 그림책이었으니까요. 나머지는 대부분 만화책이었고, 읽기 책은 거의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볼 뿐이었지요.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책도 그 단계에 적당한 책으로 옮아가면 참 좋을 텐데, 엄마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아이가 크면서 보여주었던 독서 패턴이었습니다. 아이는 5-6살 때까지도 ‘0-3세 그림책’을 참 좋아했답니다. 어려서 볼 때보다 더 재미나게 아기 책에 빠져 지낼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창 아기 책에 빠져있다가도 아주 가끔씩은 아이가 보기에 버거워 보이는 책들을 열심히 보기도 했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아기 책과는 아주 작별을 했답니다.
아이는 그림책에서 풍부한 감성을 찾습니다
저는 그 후 아이가 한 단계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는 자기 수준보다 아래 단계의 책들을 아주 열심히 보면서 자기 수준의 책도 보고, 또 가끔은 꽤 어려운 단계의 책까지 여러 수준의 책을 넘나들면서 보고 있었죠.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요.
저는 아이가 그림책만 보는 걸 그냥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가끔은 답답하고 불안해질 때도 있었죠. 솔직히 말해 이성적으로는 ‘괜찮다’고 해도 엄마의 감성은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마음이 생기곤 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림책이 아닌 읽기 책을 꺼내 보고 있었죠. 아이는 쉬지도 않고 단숨에 읽어내더니 말했습니다. “이 책 재미있다!”
물론 아이는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림책에 빠져 지냈지요. 하지만 아이가 읽기 능력이 부족해서 보지 않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읽기 능력과 상관없이 그림책만 보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이한테 넌지시 물어봅니다.
“왜 읽기 책보다 그림책이 더 좋으니?”
“그림책은 종류가 아주 많아서 보고 싶은 걸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 읽기 책은 그림도 별로고 책 종류도 많지 않아서 보고 싶은 게 별로 없잖아.”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저학년들이 볼 수 있는 읽기 책이 아무래도 적습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정말 좋지만, 읽기 책의 그림은 좀 쉽게 그린 듯싶습니다. 그림책을 보며 좋은 그림과 친해지고 다양한 이야기와 만났던 아이에게 저학년 읽기 책은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읽기 책은 아무래도 좀더 부담스럽습니다.
원하는 만큼 충분히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래도 아이는 조금씩 읽기 책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학교에 갈 때면 늘 책을 한 권씩 들고 가야 하는데, 요즘 들어 ‘두꺼운 책’을 찾는 경우가 참 많아졌지요.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아이는 읽기 책 가운데서도 매력적인 책들을 찾아냈고, 긴 글을 읽는 재미에도 조금씩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지요.
역시 그림책을 충분히 보게 내버려 두길 잘 한 것 같습니다. 그림책이 어린 아이들만 보는 책은 아니잖아요. 때로는 아주 어려운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풀어내기도 하니까요. 이제 아이가 그림책만 봐서 걱정이라던 분께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그림책만 보려고 한다면 충분히 보게 해 주세요. 아주 가끔씩 아이가 좋아할 만한 내용의 읽기 책을 골라서 권해 주세요. 만약 혼자서 보려 하지 않으면 읽어주시는 것도 좋아요. 아이가 조금은 낯선 읽기 책의 세계에서 매력적인 책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만 마련해 주고 기다리세요. 책의 재미를 아는 아이라면 읽기 책의 세계에도 곧 빠져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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