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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개와 고양이( 2)

by 오른발왼발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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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의 의미

‘개와 고양이’ 속의 구슬

 

 

 

<개와 고양이>는 어릴 적 교과서에서 봤던 기억이 강렬한 이야기다. 가난한 어부가 어렵게 잡은 잉어를 살려주고, 그 보답으로 뭐든지 나오는 구슬을 얻는다. 하지만 욕심쟁이 할머니가 그 구슬을 훔쳐 가면서 다시 가난해지고, 개와 고양이가 그 구슬을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잉어의 보은담 혹은 개와 고양이의 보은담처럼 느껴진 이야기다.
하지만 《임석재 전집》과 《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된 이야기들을 보면 볼수록 <개와 고양이> 이야기의 본질은 단순한 ‘보은담’이 아닌 것 같다. 이야기의 중심은 구슬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구슬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려 한다.

1. 구슬(줄. 연적. 야광주. 한 치 길이의 뼈. 구멍이 있는 구슬. 세모난 구슬. 보패. 구멍 있는 야광주...) 

사건은 주인공이 뭐든지 나오는 구슬을 얻게 되면서 시작한다. 구슬이라면 완벽한 구의 형태를 생각하게 되지만 이야기 속의 구슬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구슬이라 하면서도 구멍이 있다고 하거나, 연적인 경우도 있다. 연적 역시도 구멍이 있다는 점에서 구멍 있는 구슬과 같다. 때로는 줄이나 뼈 같은 길쭉한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 구슬을 얻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흔히 가난한 어부 할아버지가 잉어 또는 자라를 살려준 대가라는 보은담적 성격이 강조된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구렁이(뱀)가 주인공을 잡아먹으려 했는데 색시가 ‘남편을 잡아먹으려면 먹고살 것을 달라’ 해서 받기도 한다. 또 살려준 뱀이 바닷속에서 구슬을 가져오기도 한다. 즉, 잉어를 살려줘서 구슬을 얻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공통점은 구렁이가 주인공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크게 하나로 모인다. 구렁이가 잡아먹어야 용이 될 수 있는 꿩을 할머니가 잡아먹고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렁이 처지에서 주인공은 원수나 다름없다. 그래서 구렁이는 주인공을 잡아먹고 용이 되고야 말겠다는 강박을 갖는다. 잉어의 보은담이라는 성격에서 멀어져도 한참 멀어진 사연이다. 주인공이 구렁이 주변에 붙은 불을 꺼줬기 때문에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은 구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는 조건이었는데 그 불이 꺼짐으로써 용이 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잉어 또는 자라의 용궁 구슬, 구렁이의 연적 또는 모난(구멍 난) 구슬. 가져다준 이도 구슬의 모양도 저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이 구슬이 용의 여의주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잉어 또는 용왕은 용의 또 다른 모습이다. 구렁이 역시 용으로 승천한다고 믿는 동물이다. 게다가 용의 턱 아래에 있다는 여의주는 어떤 소원도 이룰 수 있고 말이다. 
대체로 용왕이 준 구슬은 구의 형태인 데 반해 구렁이가 준 구슬은 모가 나거나 구멍이 있는 것은 구렁이가 아직 제대로 용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여의주를 갖지 못했던 것이라 여겨진다.
용왕이 준 구슬과 구렁이가 준 구슬의 차이는 또 있다. 용왕의 구슬은 아무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었으나, 구렁이의 구슬은 각 모마다 혹은 구멍마다 빌 수 있는 소원이 있으니 용왕 구슬보다는 아무래도 덜 완벽한 상태다. 게다가 구렁이는 남자를 잡아먹으려 하는 존재니, 위협적이다. 구렁이가 사라져야만 안심할 수 있다. 색시는 구렁이가 알려주지 않는 마지막 한 구멍(모)에 대해 알려달라 하고, 그 구멍이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아낸다. 그리고 구렁이가 준 구슬로 구렁이를 죽인 뒤 구슬을 가져가 잘 산다.

2. 개와 고양이

구슬을 중심으로 생각하니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한 ‘개와 고양이’는 별다른 의미로 다가오질 않는다.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고, 여기에 사람과 더불어 사는 개와 고양이가 왜 서로 사이가 안 좋아졌는지의 유래를 알려주는 요소 정도로만 보인다. 
구슬을 훔쳐 가는 사람이 이웃집 욕심 많은 할머니든, 친구가 빌려 가 돌려주지 않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구슬이 사라지면서 구슬로 부자가 됐던 부부가 다시 가난해졌고, 그 때문에 배를 곯게 된 개와 고양이가 구슬을 찾으러 떠나는 계기가 된다. 개와 고양이가 은혜를 갚기 위해 구슬을 찾으러 간다는 경우도 있으나 별로 보은담으로 보이진 않는다. 

고냥이가 “야야 개야, 이 집이 구실이 엄서서 살기가 곤란하기 돼서 우리꺼지 배가 고프게 됐이이께네 우리 강건너 사는 그 사람 집이 가서 그 구실을 째비다가 이 집 주인한티 주자” 카이 개도 그렇가자 캤다. 
                           - 개와 고양이의 보은, 《임석재 전집 10-경남 1》 

점점 살림이 주니깐 고니더러,
“가서 그걸 팔모 야광주를 가져오라.”
고, 개하고, 게 이렇, 고내이더러 그랬대.
“너이가 그거 팔모 야광주를 가져와야 밥을 해야 넌도 밥먹구 난도 밥먹는대,”
게 갔대,
                           - 개와 고양이의 구슬 다툼, 《구비문학대계 2집 7책》

위에서 보듯 배가 고파서 스스로 찾으러 떠나거나 주인이 개와 고양이에게 구슬을 찾아오라고 한다. 이만큼 개와 고양이는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와 고양이의 활약에서 중요한 건 구슬을 다시 찾아오는 것도 있지만, 이야기에서 웃음을 담 당한다는 점인 것 같다. 고양이가 쥐들을 협박해서 구슬을 찾는 장면에서 ‘송곳’과 ‘톱’이라는 이름의 쥐들이 활약하는 것도 재밌고, 개가 물 위에 떠내려오는 똥을 먹으려고 입을 벌리는 바람에 구슬을 떨어뜨리는 것도 재밌다. 

3. 다시 돌아온 구슬

구슬은 다시 주인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오는 과정도 쉽지는 않다. 고양이 덕분에 찾았던 구슬은 개 때문에 다시 한번 사라지고, 다시 잉어의 배 속에서 발견된다. 구슬은 세 번 만에야 완전히 주인에게 온 셈이다.(처음 받았을 때, 고양이가 찾았을 때, 잉어 배 속에서 발견했을 때)
아마 구슬을 처음 받았을 때와 다시 온전히 찾았을 때는 구슬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구슬의 소중함을 더욱더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4. 구슬의 의미

그런데 문득 구슬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용왕의 구슬은 용궁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귀한 구슬이었다. 
구렁이의 구슬 역시 마찬가지다. 용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구렁이는 아이를 잡아먹어야만 한다는 욕심에 구멍 있는 구슬을 색시에게 내준다. 구슬은 구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하기 위해서는 계속 갈고 닦아서 완벽한 여의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꿩을 잡아먹지 못해 용이 못 된 것만 생각하고, 꿩을 먹고 낳은 남자를 잡아먹을 생각만 한다. 이 강박이 커지다 보니 남자를 잡아먹을 욕심에 자신에겐 가장 중요한, 자신이 지켜야 할 여의주를 색시에게 내주고 만다. 그러니 구렁이는 죽을 수밖에 없다. 엉뚱한 강박감이 때로는 진짜 소중한 것을 놓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구렁이를 보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든다. 
구슬을 다시 찾은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구슬을 더욱 소중히 여겼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 구슬로 필요할 때마다 뭔가 해 달라고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언젠가는 그 구슬을 쓰지 않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완전한 용인 용왕이 구슬을 함에 두고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구슬을 잃어버린 뒤 부부가 구슬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는 점은 부부가 구슬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비문학 대계 2집 7책》의 <개와 고양이의 구슬 다툼>에서 주인이 개와 고양이에게 구슬을 찾아오라고 말하긴 하지만 이는 수많은 판본 가운데 하나뿐이다. 대신 구슬을 찾으러 가는 것은 주인이 가난해져서 제대로 못 먹게 된 개와 고양이였다. 부부에게는 뭐든지 나오는 구슬은 있으면 좋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생활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돈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그 돈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볼 때 구슬은 단순히 여의주만을 뜻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렁이가 용이 되기 위해 모나고 구멍 난 구슬을 갈고 닦아야 용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실은 갈고 닦아야 할 구슬이 내재해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가 갈고 닦아야 할 것은 구렁이의 구슬이 아니라 내 속의 구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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