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거듭난 죽음에 관한 이야기
《살아난다면 살아난다》
(최은영 글/최정인 그림/우리교육/2009년)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동시에 삶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게다가 재혼 가정, 한부모 가정 등 순탄치만은 않은 여러 복잡한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다. 내용만 따지자면 무겁고 침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는 간데없고 유쾌하고 따뜻한 마음에 저절로 가슴 짠한 미소를 짓게 한다. ‘살아난다면 살아난다’는 제목처럼, 마치 주문을 외우듯 희망을 갖게 한다.
이 책에는 세 사람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있다. 동우, 근호, 그리고 703호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 서로 사정은 다르지만 이들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병원에 오게 됐고, 세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동우는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병원에선 5학년 형의 보호자다. 형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나빠 집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다. 동우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형이랑 동우만 데리고 집을 나왔다. 걸핏하면 술 먹고 엄마를 때리던 아빠를 기억하는 형은 아빠를 미워하지만, 아빠가 번쩍 안아서 비행기 태워주던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 동우는 아빠를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날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병원에 와야 하기 때문에 친구도 없다. 동우가 703호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할머니는 동오한테 형이랑 오래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해줬다.
703호 할머니는 좀 특별한 사람이다. 몸이 나쁜 것도 아닌데 특실에서 혼자 지내며 심통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머니는 남편이 세상을 버리면서부터 걸핏하면 깨질 듯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꾸 나타나 말을 걸었고, 그때부터 머리가 걸핏하면 깨질듯 아팠다. 할머니는 그런 이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 자신을 떠났던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나마 병원에 있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특별히 아프지도 않으면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할머니는 천진난만한 동우에게서 맑고 깨끗한 기운을 느낀다. 하지만 갑자기 다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다 죽어가는 몸으로 근호가 병원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다.
근호는 초등학교 5학년. 동우의 형과 같은 학년이다. 근호는 공사 중인 자전거 도로를 무시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에서 튕겨져 나가면서 차와 부딪쳐 뇌사 상태에 빠지고 아빠가 사무장으로 있는 병원으로 실려 온다. 근호는 자전거를 정말 좋아했다. 바늘방석처럼 불편한 집을 빠져나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가슴이 탁 트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공부에 방해가 되니 친구도 사귀지 말고 공부를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제깟 녀석이 하면 얼마나 한다고 돈 벌어오는 아들만 애먹는다며 타박하던 할머니도, 가족에겐 관심도 없이 일만 아는 아빠도 잊을 수 있었다. 근호는 자신이 뇌사 상태에서 혼이 빠져 나온 줄도 모른 채 가볍게 병원을 돌아다니다 703호 할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깨닫는다.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외롭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이 바로 가족에게 있다는 것이다. 동우는 아빠에게서 도망쳐 힘들게 일을 하는 엄마와 아픈 형 때문에 친구도 없이 지내면서도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가족이잖아요’라는 이유만으로 아빠를 그리워한다.
할머니는 가족도 없이 홀로 지낸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버리면서 생긴 별난 재주를 아들은 도저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할머니 곁을 떠났다.
근호 엄마는 근호를 위해 근호가 다섯 살 때 아빠랑 다시 결혼을 했다. 아이 딸린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는 시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으로 근호의 공부에만 매달렸다. 서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엄마, 아빠, 할머니는 서로 고집을 부리다가 입을 꾹 다물어버리곤 했다. 근호는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스스로 부딪치는 걸 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집에는 가족사진 한 장 없다. 근호의 소원은 엄마 아빠랑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로 여행을 가는 것일 정도로 소박하기만 하다.
이 세 사람이 만난다.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갖고 있는 703호 할머니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할머니는 맑고 깨끗한 기를 갖고 있는 동우와 손을 맞잡고 근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한다. 근호도 동우 덕에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까지도.
하지만 뇌사 상태에 빠진 근호에게 희망은 없었다. 두 번의 검사에서 두 번 다 양성 판정을 받았다. 깨어날 희망은 없다. 그리고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동우의 형 형우다. 형우가 살기 위해서는 심장을 이식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근호와 형우는 똑같이 죽음과 마주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숨이 넘어갈 듯 힘들어하는 형우는 심장을 이식받기만 하면 살 수 있지만, 근호에겐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 근호를 향해 할머니가 말한다.
“정 억울하면 다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라!”
살 수 있는 방법이라니? 근호에게 살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는 걸까? 할머니가 동우에게서 형이랑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걸 읽어냈던 것처럼 근호한테도 살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아낸 것일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 방법은 근호의 심장을 형우에게 이식해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래야 근호의 몸은 죽어도 심장은 형우의 몸에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독자라도 이 사실을 빤히 읽어낼 수밖에 없다.
작가도 이를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자칫 빤한 이야기로 빠질 수 있는 이 대목에서 감동을 연출한다. 근호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한을 풀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근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던 엄마를 설득하는 것 또한 근호의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할머니의 도움이 있었다. 할머니는 근호 집에 찾아가 근호의 뜻을 전하고 근호가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도와준다.
덕분에 뇌사에 빠졌던 한 아이가 장기를 기증하며 끝날 수도 있었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기억나는 건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근호가 아니라 자신이 안고 있던 원망을 내려놓고 새롭게 삶을 발견한 근호, 그리고 근호를 통해 역시나 새로운 삶을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이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비록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동우가 아빠를 만나지 못했고, 할머니가 아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미 다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쩐지 책 제목을 주문처럼 외우고 싶어진다.
‘살아난다면 살아난다. 살아난다면 살아난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58호(2009년 10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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