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야, 조선을 적셔라
조경숙, 이지수 글/원유미 그림/청어람주니어/2019. 11./11,000원
학창 시절 세종의 업적 중 하나로 외웠던 것이 ‘측우기의 발명’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뒤 새로운 정보가 더해졌다. 측우기가 세종 대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장영실의 발명품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종이건 장영실이건 나에겐 별로 와 닿지 않는 정보였다. 필통처럼 단순하게 생긴 측우기가 얼마나 강수량을 정확하게 재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벼농사를 위해서는 비가 제때에 제대로 내려줘야 하기 때문에 측우기가 중요했다 보다 여기고 지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번엔 측우기를 만든 사람이 세종의 아들인 ‘문종’이라는 이야길 듣게 됐다.
문종은 역사 시간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단종 역시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종은 왕위에 오른 기간이 짧을 뿐,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한 인물이었다. 20년간 세자로 지내며 몸이 안 좋던 세종을 대신해 세종 말년의 업무를 대신했다. 측우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문종이 측우기를 만들던 당시를 배경으로 한 역사동화다. 이야기는 문종의 딸인 평창군주(*왕의 딸은 공주, 세자의 딸은 군주)를 중심으로 생기발랄하게 펼쳐진다. 측우기가 없던 시절 비의 양을 재는 방법,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 측우기를 만든 이치, 측우기로 비의 양을 재는 방법, 측우기에 이어 하천의 수위를 재는 수표까지. 농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비와 관련한 이야기들로 촘촘하게 엮여있다.
측우기가 왜 중요한지 일부러 설명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하게 한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이라면 측우기와 관련된 내용은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역사책으로 읽을 때는 감이 잡히지 않았을 내용들이 평창과 문종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현장에 함께 있는 듯 사건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역사동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린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생기발랄하고 씩씩한 평창군주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런데 찾아보니 단종의 누이였던 탓에 그리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듯 싶다.
나중에 복권이 되기는 했지만, 한때는 노비의 신분까지 내려가야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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