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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선영이, 그리고 인철이의 경우

by 오른발왼발 202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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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처지, 하지만 다른 경우

 

선영이, 그리고 인철이의 경우》 (김소연 글/손명숙 그림/사계절/2009년)

 


언제부턴가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에 빠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린이책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만큼 이혼이 아이들의 현실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아이들 앞에 던져진 부모의 이혼이란 현실은 가족의 해체라는 점에서는 같아 보여도, 아이들마다 처해있던 경우의 수는 다 다르다.
선영이와 인철이도 그렇다. 두 아이 모두 부모가 이혼을 했다. 물론 이 문제가 자신한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로 인한 고민을 다른 누군가에게 털어놓음으로써 부모가 이혼했다는 걸 알리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부모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부모가 이혼을 했다는 점에서 두 아이는 같은 처지인 것 같지만 많은 부분이 서로 다르다. 부모가 이혼을 한 시기도 다르고, 지금의 처지도 다르고, 이혼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물론 두 아이의 경우가 수많은 이혼 가정을 대변할 수는 없다. 똑같이 부모의 이혼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렸다 해도 아이마다 그 처지는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의 경우만을 보여주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같은 문제라도 아이에 따라 겪는 마음의 고통이나 해결 방법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선영이와 인철이 두 아이가 부모의 이혼이라는 문제를 딛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다. 작가는 선영이와 인철이 두 아이의 이야기를 각각 일인칭 시점에서 들려준다. 두 아이의 이야기는 서로 번갈아가며 나온다. 두 아이 이야기 속에는 두 아이가 처해있는 시시콜콜한 집안 상황과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런데 만약 선영이와 인철이 두 아이의 이야기가 이렇게 서로 나열만 되고 끝났다면 이 책의 매력은 분명 반감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이 남다른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었던 건 따로 따로 두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아이가 서로를 통해 성장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아이의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힘은 상대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다. 이야기는 인철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인철이는 짝꿍 선영이가 갑자기 변해버려서 겪는 어려움과 함께 아버지만 같은 반만 친동생인 상철이 이야기를 꺼낸다.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 인철이의 현재 관심과 고민이 녹아있다. 선영이에 대한 관심, 그리고 부모의 이혼과 재혼에서 생긴 문제. 이 두 가지는 비록 인철이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단순히 인철이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선영이 이야기로 그대로 이어진다. 즉, 인철이와 선영이의 관계, 그리고 부모의 이혼이라는 두 가지는 이 책을 전체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철이의 첫 번째 이야기는 꼼꼼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인철이 이야기에서 좀더 중심에 있는 건 선영이다. 선영이 문제가 앞부분에 자세하게 다뤄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인철이 이야기는 만사가 태평이었던 선영이가 2학기 들어서면서 갑자기 변해서 뭐든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인철이에게 선영이는 특별한 짝꿍이다. 1학년 때부터 연거푸 사내 녀석들과 짝만 하다가 6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여자 아이와 짝이 되었는데 그게 바로 선영이다. 선영이는 아주 마음에 드는 짝이었다. 방학 내내 그리워할 만큼. 2학기가 되자 다시 선영이와 짝꿍을 할 만큼. 하지만 방학동안 선영이는 아주 변해버렸다. 인철이는 선영이 때문에 속이 썩으면서도 선영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렇게 학교에서 선영이에게 시달리다 집에 가면 이번엔 반쪽짜리 친동생 상철이를 돌봐주어야 한다. 인철이가 세 살 때 아빠는 친엄마랑 이혼을 하고 그 이듬해 새엄마랑 결혼을 했다. 그리고 바로 동생이 태어났다. 물론 새엄마는 인철이에게 잘 해주고, 너무 어렸을 때의 일이라 3학년 때 친엄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런 사정조차 몰랐다. 지금까지도 동생이 이런 사정을 모르듯이 말이다. 하지만 동생에겐 비밀로 하고 새엄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마음이 거북해진다. 사정을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난 뒤에는 가끔씩 엄마 아빠의 행동에서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 선영이의 경우는 어떨까? 선영이는 방학 동안 큰일을 겪었다. 늘 소리치고 싸우던 엄마 아빠가 싸움을 멈추더니,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아빠가 집을 나가버렸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근을 하고, 집을 리모델링이라도 하듯 가구며 벽지까지 싹 바꿔버렸다. 짝꿍을 정할 때 인철이가 옆에 와서 앉건 말건 관심도 없었다.
얼핏 인철이와 선영이는 부모가 똑같이 이혼을 하긴 했어도 그 사정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친엄마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 새엄마가 들어온 인철이와 사춘기 한창 예민하고 알 것 다 아는 시기에 부모가 이혼을 하는 건 그 충격이 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 여겨진다. 인철이도 어쩔 수 없이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철없던 때이고, 그동안 쌓인 정이 있기에 큰 문제가 생기기보다는 자잘한 일상에서 문제를 느낄 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상황은 책 전체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인철이와 선영이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나오지만 그 내용은 참 많이 다르다. 인철이의 관심은 선영이와 집안 문제 두 가지로 나뉘어 있는 반면, 선영이의 관심은 오로지 이혼한 엄마와의 관계뿐이다. 인철이와는 달리 선영이에게 부모의 이혼은 느닷없이 다가왔고 그래서 모든 감정이 그쪽으로만 쏠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 중반쯤 되면 선영이 이야기에도 인철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선영이가 인철이한테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선영이는 가슴이 시원해졌다. 하지만 인철이는 반대다. 인철이는 선영이의 고백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막상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못했다.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왔지만 인철이는 자신에게도 선영이와 똑같은 짐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선영이처럼 부모님께 감정을 내지르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인철이는 서서히 지쳐간다. 새엄마와 아빠에게, 그리고 그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자신에게 지쳐간다.
결국 인철이는 선영이한테 자신의 사정을 고백한다. 비록 아주 어릴 때이긴 하지만 아빠가 이혼하고 재혼했다고. 그리고 선영이와 이야기를 하며 알게 된다. 선영이를 도우려 했던 것이 실은 자신 속에 묻혀 있던 문제를 끄집어낸 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결론? 사실 이 책에서 결론은 다소 싱겁다. 결론만 생각한다면 이 책은 매력없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결론 대신 두 아이가 대신 부모의 이혼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서로 의지하고 공유하면서 풀어나가는 과정에 의미를 두고 보고 싶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56호(2009년 9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 이 책은 <내 책꿍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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