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읽다
- 시간에 관한 그림책 세 권
《나의 과학 - 시간 : 1초에서 1000년까지》(조앤 스위니 글/아네트 케이블 그림/웅진주니어/2003년 초판/절판)
《딸꾹질 한 번에 1초 : 시간이란 무엇일까?》(헤이즐 허친스 글/케이디 맥도널드 덴톤 그림/북뱅크/2010년 초판)
《시간이 보이니?》(페르닐라 스탈펠트 글, 그림/시금치/2018년 초판)
《나의 과학 - 시간 : 1초에서 1000년까지》은 오래 전 봤던, 익숙한 책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추천을 해줬던 기억도 있다. 시간의 개념을 초, 분, 시간, 일, 달, 년, 세기, 밀레니엄까지 차근차근 설명을 하고 이어서 거꾸로 되돌아가며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구성은 여전히 매력이 넘친다.
그런데 처음 봤던 때로부터 15년가량이나 시간이 지나서일까? 그땐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많이 보였다.
시간을 알려주는 주인공은 이제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여자 아이다. 우리 나이라면 8살 내지 9살. 그러니까 초등학교 1~2학년 정도다. 시간은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개념이다. 그런데 아이는 마치 선생님처럼 완벽하게 시간을 설명하고 있다. 1세기, 밀레니엄, 윤년의 개념까지 말이다. 게다가 눈을 한 번 깜박이는 시간을 1초로 하면 천 년은 31,556,926,000번 눈을 깜박이는 시간, 7년은 220,898,482번 깜박이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또래 아이들로서는 도저히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숫자다. 숫자를 제시한 것은 구체성을 위해서일 텐데 오히려 막연해진 느낌이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건 분명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였겠지만, 너무 애어른 같은 주인공이 되고 만 것은 아닌가 싶다.
《딸꾹질 한 번에 1초 : 시간이란 무엇일까?》는 1초에서 1년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이처럼 기간을 짧게 잡은 것은 아마도 《나의 과학 - 시간》보다 대상 연령을 낮게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초, 분, 시간, 하루, 1주일, 1달, 1년의 시간을 또래 아이들의 생활에 맞춰 설명한다.
1초란 딸꾹질 한 번 하는 시간, 쪽! 엄마 뺨에 뽀뽀 한 번 하는 시간, 폴짝! 줄넘기 한 번 하는 시간, 뱅글! 몸을 한 번 돌리는 시간……, 이런 식이다.
1분은 60초라는 설명 대신에 1초 보다 좀 더 긴 시간, 노래를 부르거나, 합창을 하거나, 시를 읊기에 알맞은 시간이라 설명한다. 정확한 개념은 아니지만 ‘아하!’하고 충분히 공감은 할 수 있는 설명이다.
그 가운데 시간의 의미를 알려주는 말들이 눈길을 끈다.
‘새로운 하루는 비어 있는 컵.
이것저것 여러 가지로 채울 수 있지.
딸꾹질이랑, 뽀뽀랑, 노래랑, 물놀이랑, 나무랑 꽃들로 채울 수 있는 컵.’
하루라는 비어 있는 컵을 누구나 다른 방식으로 채울 수 있듯이 시간이란 각자 어떻게 쓰는지 저마다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더불어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한 달 동안 변화하는 것들 가운데는 달의 모양이 변화하는 것 같은 자연의 변화도 있지만, 못 매던 신발 끈을 단단히 맬 수 있게 되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는 예를 들어주기도 한다.
시간을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채워나갈 수 있게 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해나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건 분명 이 책의 장점이다. 또한 시처럼 느껴지는 글과 다양한 인종과 남녀가 등장하는 그림도 좋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글은 기억에 남는다. 시간의 변화와 함께 변하지 않는 것에 관한 글이다. 여기에 잠깐 옮겨본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모든 것들은 바뀌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지.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지.
딸꾹질 한 번에 1초,
딱 1초밖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네가 사랑을 받는 것,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거야.
《시간이 보이니?》의 면지에는 이런 글이 써 있다.
시간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른다. 시간이 있기에 우리는
지나간 일들과 지금 일어나는 일,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건의 질서를 만든다.
앞서 두 권의 책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관한 책이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다. 이 책은 시간을 철학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엔 수많은 질문들이 있다. 첫 장면부터가 그렇다.
“시간에 대해 생각할 시간 있는 사람?”
“나! 생각해 볼래. 시간이 있어!”
“나는 됐어. 시간이 없거든. 빨래할 시간이라.”
“안녕? 우리는 시간이 있어. 같이 생각해 보자.”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시간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던지는 사소한 질문들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떤 질문은 무척 사소한 것 같았고, 또 어떤 질문은 재미있었고, 또 어떤 질문은 놀라웠는데, 그 어떤 질문이든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점이 좋았다. 이 책이 그림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있지만, 이 책이 일반적인 그림책의 장면 구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그림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듯 싶다.
아무런 형태도 없는 시간을 보는 방법,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모두 다 다르게 시간을 사는 사람들, 시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다 보면 시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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