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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밴드마녀와 빵공주

by 오른발왼발 2021.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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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 위의 아이들

《밴드마녀와 빵공주 》(김녹두 글/이지선 그림/한겨레아이들/2007년)

작은 상처에 울음을 터트린 아이들에게 최고의 특효약은 일회용 반창고, 즉 밴드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밴드의 위력은 대단하다. 밴드만 붙이면 바로 아프지 않게 되고,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밴드를 붙인다고 상처가 바로 낫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밴드가 특효약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눈으로 상처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밴드는 비록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지는 못하지만 대신 마음의 위안을 준다. 게다가 밴드는 상처를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밴드에 환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알록달록 예쁜 무늬가 있는 밴드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커가면서 밴드의 매력에 빠지는 아이들은 줄어든다. 작은 상처라면 몰라도 큰 상처엔 밴드가 별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밴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두 아이가 나온다. 이야기는 두 아이가 교실 뒤에서 벌을 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두 아이는 새학기 시작한 지 15일만에 벌써 여러 번 함께 벌을 섰다. 두 아이가 밴드마녀와 빵공주로 불리게 된 것도 그 날 벌을 서면서부터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둘이 단짝이 된 계기가 이때부터라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밴드마녀란 별명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이날은 빵공주란 별명만 새롭게 탄생했으니까 말이다.
5학년이었던 작년 10월 전학 온 은수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주 다퉜고, 그러면서 몸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그때마다 은수는 예쁜 그림이 그려진 컬러 밴드를 붙이고 다녔고, 5학년 담임 선생님은 그런 은수에게 밴드마녀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빵공주의 이름은 방공주다. 선생님이 공주를 야단치며 ‘빵공주’라 부르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별명이 빵공주가 되었다.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얗고 뚱뚱한 몸 때문에 빵공주라는 별명은 단숨에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두 아이가 단골로 벌을 선다는 건 두 아이에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음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통점을 빼고는 두 아이는 여러 모로 다른 점이 많다. 그 다른 점이 너무나 확연히 대비되기 때문에 두 아이에게 맞춰진 초점은 더욱 선명해진다. 둘의 캐릭터도 보다 분명해지고 말이다.
둘은 외모부터 다르다. 밴드마녀 하은수는 새까맣고 깡마르고, 빵공주는 하얗고 뚱뚱하다. 성격도 다르다. 은수는 상처받은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밖으로 상처를 내서 여기에 밴드를 붙이며 위안을 얻는다. 반면 공주는 마음의 상처를 먹을 것을 쓸어넣는 것으로 해소한다. 속이 허하거나 쓰라릴 때 무언가를 먹으면 잠깐이나마 괜찮아지는 것처럼 마음 속 상처를 음식으로 덮어버리는 셈이다. 호호아줌마라 불리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랑 함께 사는 은수는 ‘먹어라 먹어라’하는 괜한 관심이 지겨워 먹는 게 싫고, 거의 혼자서 집을 지키다시피 하는 외로운 공주는 먹으라고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서럽고 그래서 혼자서 열심히 찾아 먹는다. 누가 조금만 뭐라 해도 발끈해서 치고 받는 은수와 달리 공주는 누가 자신을 놀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또 자기 고민을 꺼내 이야기하지 않는 은수와 달리 공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하기도 한다. 똑같이 마음 속의 상처를 갖고 있지만 이를 감추고 밖으로 일부러 생채기를 내서 아파하는 아이와, 마음 속의 상처를 먹을 걸로 덮어버리고 무관심한 듯 견디는 아이. 작가는 이처럼 다른 듯 닮아 있는 두 아이의 힘겨운 현실을 그리고 있다.
두 아이의 마음 속 상처는 불안전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생겨난다. 은수의 경우 은수가 처한 환경이 어떤 상황인지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빠랑 살게 되면서 박은수에서 하은수로 성이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이 은수가 처한 환경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성이 바뀌었다는 것이 보통 엄마가 재혼을 했기 때문에 생긴다. 하지만 호호아줌마라 불리는 엄마는 친엄마가 아닌 듯 싶지만 무척 친절하고, 친아빠인 듯 싶은 아빠는 같이 살게 된 은수를 마땅찮아 여기거나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듯 여겨진다. 이런 상황이라면 은수의 가출은 자연스럽지만 여기서는 은수가 아닌 언니가 가출을 하며 집안을 뒤집어 놓는다. 공주의 경우는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는 엄마를 찾으러 다니기 때문에 집안에 혼자 있는 일이 잦다. 겉으로 보자면 은수보다 훨씬 외로워 보이지만 대신 상황은 단순해 보인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아이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이런 공통점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벌을 단골로 설 수밖에 없던 까닭은 바로 ‘엄마의 부재’ 상황이었다. 비밀에 감춰져 있는 은수의 엄마, 집 나간 공주의 엄마를 찾는 것이야말로 두 아이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그 기회은 우연히 찾아온다. 공주는 우연히 아빠한테 온 엄마의 이혼 소송 우편물을 본다. 은수는 조금은 망설이는 공주를 데리고 마산으로 공주 엄마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공주는 엄마가 결혼해서 다른 아이와 살 사람이지 결코 집으로 돌아와 자신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다. 두 아이는 이번엔 은수 엄마를 찾아 광주로 간다. 하지만 함께 살던 집에 엄마는 없고 옆집 아줌마를 통해 엄마가 팔자 고쳐 갔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두 아이 모두 엄마를 찾아 길을 나섰지만 결국 실패를 한 셈이다. 그렇다면 두 아이의 상처를 치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공주는 엄마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엄마와 이별을 한다. 엄마랑 깨끗하게 이혼을 한 아빠는 공주가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걸 돕는다. 은수는 엄마가 결혼을 한 게 아니라 뇌종양에 걸려 병원에 있음을 알게 된다. 엄마를 만난 지 3주 뒤 엄마는 돌아가신다. 은수 또한 엄마와 이별을 한 것이다.
어울리지 않던 두 아이의 만남, 소통, 여행, 엄마와 이별. 두 아이는 힘든 과정을 통해 현실 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제 두 아이에게는 밴드도 빵도 예전처럼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다. 물론 은수에겐 아직도 아빠와의 관계 회복이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다는 문제 해결이 조금은 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18호(2008년 1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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