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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불가사리>, <꿀꿀돼지>

by 오른발왼발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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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다시 본 옛이야기 그림책 두 권

《불가사리》(김중철 글/이형진 그림/웅진주니어)

《꿀꿀돼지》(김중철 글/최민오 그림/웅진주니어)

 

 

 

들어가는 말

삼 사년전부터 옛이야기 책이 많이 나온다 싶더니, 바로 그 뒤를 이어서 옛이야기 그림책 출판이 늘어나고 있다. 옛이야기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 환영할만한 일이다.옛이야기 그림책의 질도 예전에 '전래 동화 그림책'이란 이름으로 나오던 것들과 견줄어 볼 때 훨씬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아이들이 옛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시기가 만 5-6세 정도이라는 점과, 옛이야기의 구성 요소가 그림책의 구성 요소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을 생각할 땐 우리 옛이야기가 그림책으로 나오는 일은 더욱 환영할 일이다. 요즘 나오고 있는 옛이야기 그림책을 모두 살펴보면 좋겠지만, 여기서는 그 가운데 두 편만 살펴보려고 한다. 웅진출판사에서 '두껍아 두껍아 옛날옛적에'라는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옛이야기 그림책 가운데 세 번째와 네 번째 권인《불가사리》와 《꿀꿀돼지》이다.
이 두 권의 그림책은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뿐만 아니라 어린이도서연구회 책선정위원회에서도 올챙이 4마리와 5마리를 받아 일단은 좋은 옛이야기 그림책으로 낙점이 된 책이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권의 옛이야기 그림책들을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이게 아닌데……'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런 느낌은 그림책을 구성하는 글과 그림 가운데 아무래도 글쪽에서 왔다. 두 편 모두 옛이야기의 형식과 내용에서 벗어난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책선정위원회의 결과와는 달리 조금은 삐딱한 눈으로 보게 됐다. 그리고 그 느낌이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그 타당성을 가져야겠기에 한 편 한 편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아쉬운 점은 이 두 권은 옛이야기 그림책이기 때문에 옛이야기와 그림책 두 가지 관점에서 함께 봐야하는데, 아무래도 그림책 쪽은 옛이야기 쪽에 비해 아는 것이 부족한 관계로 글쪽에 중심이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불가사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불가사리'란 이야기가 처음 나온 건 고려 말때인 것으로 추정된다. 불가사리는 쇠붙이란 쇠붙이는 무조건 먹어치우고, 먹는 만큼 몸집이 늘어나는 상상의 동물이다. 다른 상상의 동물들이 그러하듯이 불가사리 역시 여러 가지 동물들의 모습이 혼합된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통 코끼리 몸에 소의 발, 곰의 목에 사자 턱, 범의 얼굴에 물소의 입, 말의 머리에 기린의 꼬리를 단 모습이 가장 흔하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지만 대개는 '신돈'과 관련이 있다. 고려 말 공민왕 때의 인물인 신돈은 공민왕을 도와 반원(反元), 개혁정책을 편 인물이다. 노비 출신인 신돈은 권문세족들을 내쫓고 전민변정도감이라는 기구를 두고 권문세족 등 농장주들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한편, 원래 양인으로서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인 신분으로 되돌리는 등의 개혁정치를 펴나갔다. 이러한 신돈의 개혁정치는 당연히 민중들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권문세족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들은 결국 신돈이 왕권을 노린다면서 반역죄로 몰아 쳐형하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어릴 적 수업 시간에 들은 기억으로는 신돈에 대한 기억이 비열하고 나쁜 중이었던 것으로 남아있다. 그 때와 지금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가 신돈에 대해 이처럼 엄청남 견해 차이를 낳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 계급 가운데 가장 천대받는 계급이었던 노비 출신인 신돈의 입지전적인 위치와 개혁적인 정치는 당시 계속되는 원나라의 침입과 권문세족들의 탄압 속에서 살고 있던 민중들에게 하나의 힘이 되었으리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불가사리가 다른 것은 안 먹고 쇠만 먹는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 하다. '쇠'라는 것은 전쟁의 무기, 또는 힘을 상징하는 금속이다. 청동기 시대 이후 금속(쇠)은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특히 쇠는 전쟁 무기를 만드는 재료이고, 지배계급은 전쟁을 통해 자신의 부와 권력을 다져나갈 수 있었다. 반면 백성들에겐 청동기, 철기 문화가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다 주긴 했지만, 지배계급이 전쟁 등을 통해 부와 권력을 키워나갈수록 피지배계급으로서의 설움도 함께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불가사리는 민중들에게 상서러운 상상의 동물이기도 했다. 쇠를 먹어지우는 불가사리가 나쁜 꿈을 물리치고 병이 들어오는 걸 막아 준다며 굴뚝에 불가사리 모습을 새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돈'이나 '불가사리'나 지배계층에게는 무서운 괴물이었겠지만, 민중들에게는 하나의 수호신처럼 여겨졌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너무 장황했지만, 옛이야기 그림책 《불가사리》를 조금은 삐딱한 시각으로 보게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중의 수호신이어야 할 불가사리가 이 책에서는 오히려 민중들을 괴롭히고, 또 마지막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본래의 때뭉치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마치 민중들을 우롱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을 엮은 김중철은 임석재 전집 5권 《한국구전설화 경기도 편》(아래 참조)에 있는 이야기를 참고로 했다고 한다. 그래 책을 찾아보니, 과연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였다. 때를 뭉쳐서 불가사리를 만든 것도 그렇고, 불로 녹여 죽이지도 못하고 결국 송도를 불바다로 만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기본 줄거리가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불가사리를 만든 사람이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할머니가 아니라 '신돈'이라는 점이다. 신돈이 아들 아흔 아홉을 두기 위해 절을 짓고 법당 마루 밑에 방 하나를 꾸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불공을 드리러 오면 법당 마루가 밑으로 꺼져 신돈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게 한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 아흔 아홉 번째에는 높은 벼슬아치의 부인이 와서 관계를 맺게 됐는데 이 부인이 나라에 고발을 하게 되었다. 결국 신돈은 옥에 갇히게 되어 씻지도 못해 몸에 때가 덕지덕지 붙게 되는데, 신돈이 심심풀이로 이 때를 뭉쳐서 만든 것이 바로 불가사리라는 점이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불가사리》에서는 마지막에 할머니가 부채로 불가사리 등을 탁탁 치자 그 동안 먹은 쇠붙이를 다 토해내고 처음 모습인 때로 돌아간 반면, 《한국구전설화》에는 불가사리가 그냥 어디론가 가 버렸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신돈' 이야기에서 '어느 할머니'로 바뀐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옛이야기 그림책에 신돈 이야기는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신돈 이야기를 피해가다 보니 논리적인 면에서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가 생겼던 것 같다.
첫째, 《한국구전설화》에서는 신돈이 옥에 갇혀 씻지 못해 때를 밀게 되었고, 그 때를 가지고 만든 조그마한 돼지 모양의 불가사리가 돌아다니며 쇠를 먹었다는 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여름 날 날씨가 너무 더워 때가 덕지덕지 끼게 되어 그 걸로 때뭉치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 때뭉치가 혼자 방안을 돌아다니며 바늘을 집어먹고 머리도 생기고 입도 생기고, 눈도 생기고 발도 생겨 불가사리가 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둘째, 《불가사리》를 보면 포졸들이 불가사리를 불에 태우자 불가사리가 불똥을 싸고 돌아다녀 마을이 불바다가 된다. 그러나 불똥을 싼다는 건 먹은 쇠붙이가 소화가 이미 되었다는 말인데, 할머니가 부채로 불가사리를 치자 먹었던 쇠붙이를 그대로 토해낸다 게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구전설화》에서는 사람들이 불가사리를 불에 녹여 죽이려하자 녹아 없어지지는 않고 쇠불덩이가 되어 여기 저기 돌아다녀서 송도가 불난리가 난 것으로 되어 있다. 두 가지 모두 송도를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아무래도 《한국구전설화》쪽이 더 그럴듯하다.
셋째, 불가사리가 사라지게 되는 부분이다. 《불가사리》에서는 무책임한 할머니가 불가사리를 만들어놓고 잠들어버려 마을이 불바다가 되었는데, 할머니는 잠이 깬 뒤 태연스럽게 불가사리한테 왜 이리 장난이 심하냐며 등을 탁탁 친다. 그러자 불가사리는 본래의 자기 모습인 때뭉치로 돌아간다. 할머니는 때뭉치를 가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이다. 이 할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신선 마냥 그려져 있지만,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되어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겨우 불가사리의 '심한 장난'쯤으로 치부해버리다니…….
반면 《한국구전설화》의 불가사리는 그냥 한참 돌아다니다가 어디론가 가 버린다. 그리고 그 뒤 더 이상 본 사람이 없기에 불가사리는 상상의 동물로 남아있게 되고 말이다. 물론 불가사리 이야기는 그냥 어떤 중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때가 아니라 밥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불가사리(不可殺伊)는 말 그대로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지만 불가사리(불(火)可殺伊), 즉 불로써만 죽일 수 있다하여 불화살을 쏴서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는 얼마든지 다른 유형의 이야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민중성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된다. 물론 옛이야기 가운데는 지배계급의 논리를 대변한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지배계급에 의해 변질된 이야기들이 상황을 잘 몰랐던 민중들 사이에 떠돌게 되는 경우이다. 마치 1980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 수 없었던 국민들이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 마냥 폭도들이 날뛰고 있다고,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민중들의 조그마한 삶도 무시하고 마치 '한 여름밤의 꿈'인냥 그냥 사라지는 할머니의 모습은 지배 계급에겐 하나의 신비감으로 남아있을지 몰라도 민중들에게 피를 말리는 일이다.
'송도 불가사리'란 속담이 있다. 불가사리가 나타나 송도를 불바다로 만들어 인심이 흉흉해졌던 것을 이르는 말로 개망나니 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가르켜 '송도 불가사리'라 한다. 그런데 이 속담 역시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계속되었던 신돈에 대한 역적 취급이 그대로 이어진 결과라 여겨진다. 고려의 우왕과 창왕을 신돈 아들이라 하여 폐위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에게 신돈은 멸망의 길을 가던 고려를 개혁시키는 위대한 인물로서가 아닌, 역적으로 남아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옛이야기 그림책 《불가사리》(이형진 그림/김중철 글/웅진주니어)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야기를 했으니, 그림책으로서 《불가사리》에 대해 중심을 두고 살펴보기로 했다. 물론 이야기에 민중성과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미리 전제해 둔다.
그림책으로서 《불가사리》는 일단 글과 그림이 잘 조화되어 글 없이도 그림만으로 아이들이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그림이 역동적으로 그려 있어 실감이 난다. 사람들의 표정도 잘 살아 있어서 불가사리 때문에 놀라는 모습이나, 불가사리가 불에 탈 때 기뻐하는 표정이 아주 자연스럽다. 다만 흠이라면 그림책에서는 불가사리가 쇠를 먹고 점점 몸이 커나가는 모습이 중요할 듯 싶은데, 마을 사람들을 앞면에 크게 배치하고 불가사리는 멀리 작은 모습으로 잡아 불가사리의 변화 모습을 살피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또한 유아에게 좀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리듬감 있게 살려 써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갔다는 것도 높이 평가할 점이다.
하지만 앞서도 계속 밝힌 것처럼 반민중적인 옛이야기는 이미 옛이야기로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른 그림책과는 달리 옛이야기 그림책은 글의 리듬감, 반복구성 등 일반적인 글과 그림의 조화가 아니라 옛이야기 그 자체의 이야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나온 《쇠를 먹는 불가사리》(임연기 그림/정하섭 그림/길벗어린이)가 불가사리 본래의 뜻은 더 잘 살려냈다고 보인다. 물론 그림책으로서의 평가는 뺀, 불가사리의 의미 면에서 말이다. 두 작품을 함께 견줘보는 일도 필요하리라 본다.

옛이야기 그림책 《꿀꿀돼지》(최민오 그림/김중철 글/웅진주니어)

아이들은 《꿀꿀돼지》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왜 그럴까?
일단 아이들은 '꿀꿀돼지'라는 말 자체를 좋아한다. 마치 아이들이 '똥'이나 '방구'처럼 그냥 그 단어만 나오면 웃어 재끼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돼지', '꿀돼지'란 말에서도 그런 느낌을 갖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돼지'란 말을 자주 쓴다. 자기가 들을 때는 기분 나빠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할 때는 그것처럼 재미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몸이 조금만 통통해도 '돼지'요, 밥 많이 먹는 친구들도 '돼지'다. 또 조금만 욕심이 많아도 그 아이는 '돼지'가 된다. 예전에 어른들이 이야기하던 '복돼지'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고, '돼지'하면 주로 부정적이면서 상대방을 놀리고 업신여기는 의미가 강하게 남아 있다.
이 책은 아이들의 이러한 기대 심리에 딱 들어맞는다. 그림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아이들은 '꿀꿀돼지'가 바로 욕심많은 사또를 말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사또가 새끼 돼지로 환생하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자신이 예측한 결과와 그림책의 결론이 맞아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만족감을 얻는다.
《꿀꿀돼지》의 기본 이야기는 간단하다. 욕심많은 사또가 지나치게 꿀 욕심을 내다가 사람들에게 잡혀 죽고, 돼지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읽어도 이야기의 교훈은 '지나치게 욕심을 내면 벌을 받는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확실한 교훈은 아이들이 갖고 있는 돼지에 대한 생각과 일치됨으로써 아이들에겐 더 호응을 얻는다.
하지만 이 책 역시 《불가사리》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걸기는 부분이 있다.
첫째, 아이들의 반응과는 달리 돼지가 너무 불쌍해(?) 보인다는 점이다.
산신령이 소, 말, 개, 닭들에게 사또를 새끼로 태어나게 해도 좋으냐고 물었을 때 다른 동물들은 싫다고 소리치며 난리를 쳤다. 그렇지만 돼지는 산신령의 물음에도 대답을 안 하고 먹이만 먹고 있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산신령은 돼지가 사또처럼 욕심이 많다며 사또를 새끼 돼지로 태어나게 한다. 그 뒤로 사람들은 욕심많은 사람을 '꿀꿀돼지'라고 하거나 '꿀돼지'라고 하게 되었고 말이다.
산신령의 물음에 대답을 안 하고 먹이만 먹었던 것이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도 있는데, 밥 먹는데 정신이 팔려 산신령의 물음에 대답을 안 했다고 욕심쟁이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버린다는 사실이 돼지에게 억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이야기를 읽다보면 엣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북한 동화를 읽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는 교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람들이 사또를 혼내주려고 사또를 묶는 장면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 엣이야기에서 나쁜 사람은 주로 천벌을 받게 된다. 사건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하지만 《꿀꿀돼지》에서는 사람들이 사또를 '묶고' 직접 징벌을 가한다. 욕심많은 사또가 벌을 받는 건 당연하지만, 옛이야기 속에서 벌을 받는다기 보다는 인민재판을 받는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든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일이 없기에 이게 진짜 옛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은 더 커진다.
이 글을 엮은 김중철 씨께서는 이 이야기가 우리 나라 옛이야기 책 가운데는 없고, 북한에서 나온 옛이야기 책에 수록된 것이라 하셨다. 부탁을 드려 그 원본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원본의 내용과 이 책의 내용은 거의 같았다. 단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또가 돼지로 태어나게 된 건 돼지가 사또처럼 욕심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꿀꿀돼지》에는 빠져 있지만 북한 옛이야기 원본에는 사또가 벌에게 쏘여 입술이 나발처럼 부어 올라 사람들이 "이 놈! 이제야 네 죄를 알겠느냐?"는 물음에 말을 못하고 "꿀꿀"하는 신음소리만 계속 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산신령은 사또를 돼지로 태어나게 하는 것에 대해 아무 불평없이 "꿀꿀"하는 소리만 내는 돼지를 보고, "그 놈이 꿀을 먹고 죽을 때처럼 '꿀꿀'하는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자기 종족으로 태어나는 것을 승낙하는 모양이다"며 사또를 돼지로 환생시킨 것이다.
사또의 "꿀꿀"거리는 소리와 돼지의 "꿀꿀"거리는 울음 소리의 공통점이 사또가 돼지로 태어나게 된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다. 옛이야기 그림책 《꿀꿀돼지》에서 걸렸던 부분을 다소 해소시켜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옛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지는 못했다. 북한이 이미 사회주의화된 이후에 채록된 이야기인 듯 한데, 만일 그렇다면 사회주의화 과정에서 과거에 전해내려오던 이야기가 조금은 바뀔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옛이야기 그림책 《꿀꿀돼지》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재미있다. 적절한 장면 구성과 옛이야기의 반복구성이 잘 살아있다.
욕심 많은 사또는 네 번이나 계속해서 "꿀을 가져와라. 다디단 꿀을 가져와라"고 한다. 처음엔 사람들이 꿀을 사또에게 바치고, 다음엔 꿀이 없으면 돈이나 옷감을 갖다 바쳤다. 가뭄이 들어도 갖다 바쳤지만 더 이상 갖다 바칠 꿀도 돈도 옷감도 떨어지자 사또에게 매를 맞는다. 사또의 꿀 욕심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반복되며 점층되어 가는 걸 볼 수 있다. 욕심 많은 사또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이라면 좀 미약한 듯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반복은 산신령이 사또를 동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부분에서 더욱 그 효과를 발휘한다. 산신령은 소, 말, 개, 닭에게 차례로 "사또를 OO로 태어나게 해도 좋으냐?"고 묻는데, 소나 말, 개, 닭은 모두 싫다고 소리친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돼지에게 묻기 전에 동물들이 싫다고 난리를 치는 장면을 추가함으로써 단지 네 동물이 아니라 마을 동물들 - 돼지를 뺀 모든 마을 동물들, 즉 염소, 고양이, 오리까지 - 이 다 싫다고 난리를 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돼지는 제일 마지막에 등장한다. 산신령의 입장에서 돼지 외엔 다른 대안이 없었을 거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옛이야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그림이다. 사또의 욕심스런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을뿐 아니라 이야기가 미처 설명해주지 않는 부분까지 그림에서 표현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사또에게 징벌을 가하는 과정에서 벌이 더 많이 쏘게 하기 위해 사또 입 주위에 꿀을 더 바르는 모습이 그렇고, 자칫 잔인하게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인 사또가 벌에 쏘여 죽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표현이 잘 됐다. 또한 사또가 죽은 뒤 혼이 되어 산신령과 함께 있는 모습이나 돼지로 다시 태어난 모습에서 사또가 살아있을 때처럼 코 밑에 점이 찍혀 있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사또의 모습을 연결시킬 수 있다. 산신령이 동물들을 찾아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소에게 갔을 땐 벌만 따라 왔지만 다른 동물들에게 갈 때마다 앞서의 동물들이 화면 왼편에 함께 나오고, 마을 동물들이 모두 싫다고 난리를 칠 땐 앞에 등장하지 않은 동물들까지 등장함으로써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아쉬움도 남는다. 보통 아이들은 돼지에 대해 '욕심쟁이', '미련둥이' 느낌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이야기의 첫 시작부터 '욕심많은 사또'로 시작해서 마무리를 '돼지가 사또처럼 욕심이 많아' 사또를 새끼 돼지로 태어나게 하고 그 뒤로 사람들은 욕심많은 사람을 '꿀꿀돼지' 또는 '꿀돼지'라고 한다고 끝맺고 있는 구성 때문이다. 돼지를 비하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아니, 아이들이 돼지에 대해 갖고 있는 '욕심쟁이', '미련둥이'라는 인상을 벗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역시 그렇다'는 확신을 줄 소지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원본에 있던 대로 지나치게 꿀을 밝히던 사또가 벌에 쏘여 말을 못하고 사람들이 묻는 말에 "꿀꿀"이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는 상황만 전달이 되었다면 이런 아쉬움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꿀'을 좋아하는 사또, 사람들의 물음에 "꿀꿀"하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던 사또의 모습이 "꿀꿀"거리며 우는 돼지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김중철 씨는 아이들이 사또가 벌에 쏘여 "꿀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걸 이해하지 못해서 내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읽어줘 보니 아이들이 '꿀'을 좋아하는 사또와 꿀꿀거리며 우는 돼지를 연결시키더라고 하셨다. 하지만 몇 몇 아이들의 이런 반응을 보편화시키기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대상 연령이 유아(만 5세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밖에 북한동화 같다는 느낌 등은 지금 확인하기는 어렵다. 우리 나라에 수록된 책 가운데는 같은 이야기가 없고, 북한 책 한 권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책이라도 더 많은 책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서로 견줘가며 확인해볼 수가 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마무리

옛이야기 그림책 《불가사리》와 《꿀꿀 돼지》 두 편을 살펴보았다.
삐딱하게 본다고 전제를 하고 본만큼 어쩌면 두 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편향된 눈으로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림책이 갖고 있는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너무 옛이야기 글에만 집착했을 수도 있다. 또 《불가사리》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시각 차이를 무시했을 수도 있고, 《꿀꿀돼지》에서는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 것 아닌 것까지 지나치게 물고 넘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나은 옛이야기 그림책의 출판을 위해서는 이런 부정적인 시각 또한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아이들, 특히 유아에게 꼭 필요한 옛이야기 그림책 출판이 더욱 활성화 되고 발전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 글은 <동화읽는어른>(어린이도서연구회)  199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임석재 전집 5 한국구전설화(경기도편)
<불가사리>

 

송도 말년에 불가사리란 괴상한 짐승이 나타나서 쇠붙이라는 쇠붙이는 모두 다 집어먹어서 세상을 소란케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불가사리란 것이 어떻게 돼서 생겨났는가 하면 송도 말년 그러니까 고려 말년께쯤이지. 그때 신돈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이 신돈이는 자기가 자기 상을 보니까 아들을 아흔아홉을 둘 팔자이드라. 아들 아흔 아홉을 두자면 마누라를 많이 둔다 해도 평생 동안에 다 둘 수는 없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해봤더니 전에 아들 낳기를 불공 드리러 오는 여자와 상관해서 아들 아흔아홉을 두기로 했다. 그래서 신돈이는 새로 절을 짓고 동자 부처를 모셔 놓고 법당 마루 밑에는 방 하나를 잘 꾸며 놓고 신돈이는 그 방 안에 있고 법당에서 정성껏 불공을 들이고 있는 여자가 앉아 있는 법당 마루가 아래로 풍 꺼져 내려가서 신돈이가 들어앉은 방으로 여자가 들어가게 그렇게 꾸며 났다.
신돈이는 이렇게 절을 지어 놓고 이 절에 와서 아이 낳지 못하는 여자가 불공을 들이면 아들을 낳는다고 소문을 퍼트렸다. 이런 소문을 듣고 아이 못 낳는 여자는 많이 모여와서 불공을 들였다. 불공 들이러 온 여자는 아래로 내려앉아서 신돈이와 관계하게 되고 그리고 애를 베서 아들을 낳다. 이런 줄을 모르고 그 절에 가서 불공 드리면 아이를 꼭꼭 낳게 되니 소문은 더 나서 많은 여자들이 모여왔다.
이렇게 해서 신돈은 아들 아흔 여덟을 두었는데 아흔 아홉째에는 어떤 높은 벼슬아치의 부인이 와서 불공을 드리게 됐다. 그런데 그 분인이 신돈이한테 겁탈을 당하게 됐는데 신돈이 한 짓이 괘씸해서 이 사실을 나라에다 고발했다. 나라에서는 이 신돈이가 한 짓이 너무나 고약하고 선량한 많은 여자를 음행했다 해서 옥에다 가두었다.
신돈이는 옥에 갖힌 후 오랫동안 세수도 못하고 씻지 못하고 지내니라니까 온 몸에는 때가 더덕더덕 늘어붙었다. 여름날이 되어 날은 더웁고 땀은 나고 해서 몸이 끈적거려 끕끕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신돈이는 손으로 때를 밀어내는데 그 때가 어찌나 많이 밀려나오는지 앞에 수북히 쌓여서 그 때 심심풀이로 조물락조물락 뭉쳐서 조그마한 돼지 같은 것을 만들었다. 머리도 만들어 붙이고 입도 만들어 붙이고 눈도 만들어 붙이고 발도 만들어 붙이고 해서 세워놨다.
그랬더니 이놈이 설설 기어나가더니 마당에 돌아다니면서 땅에 떨어진 못조각을 집어먹고 쇠자박지도 집어먹고 하더니 좀 커졌다. 그러더니 더 활기있게 제 맘애도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쇠자박을 줏어먹고서는 점점 더 컸다. 이렇게 며칠 동안 돌아다니면서 쇠자박을 주어 먹더니 인제는 큰 돼지만큼 커지더니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문돌조구를 빼서 먹고 문고리도 떼어먹고 부엌에 들어가서 식칼이며 솥이며 주발이며 숟갈이며 마구 집어먹었다. 쇠붙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놈은 점점 더 커져서 커다란 송아지만큼 커졌다. 사람들은 그만 놀라서 몰아낼라고 하는데 이놈은 힘이 여가 세지 않아서 꿈쩍도 안 했다. 낫이며 호미며 괭이며 쟁기 같은 것도 마구 집어 삼켰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일나겠다 하고 이것을 죽여 없앨라고 베어 죽이려 하니 칼만 부러지고 활로 쏘아 죽이려 하니 화살은 튕겨 나오고 죽지 안 했다. 불에다 집어넣서 녹여 죽이겠다고 숯을 수백 가마니 쌓아서 불을 피우고 그 안에 이놈을 집어넣고 풀무질을 해서 벌겋게 달궈놨다. 그런데도 이놈은 녹아 없어지지 않고 쇠불덩이가 되어 가지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데 가는 데마다 불이 나서 송도가 불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이것을 불가사리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한참 돌아다니다가 어디론가 가 버려서 송도는 더 이상 불타지  안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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