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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전학 간 윤주 전학 온 윤주

by 오른발왼발 202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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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원이와 윤주의 우정

《전학간 윤주 전학온 윤주》(장주식 글/정문주 그림/문학동네어린이/2006년)

 

“어? 어떻게 같은 아이가 전학도 가고 전학을 오기도 해?”
이제 3월이면 2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물었다.
“왜 이름이 같은 아이도 많잖아. 윤주라는 아이가 전학을 가고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전학을 왔나 보지.”
책을 읽으려 꺼내놓고서 미처 읽지 못하고 있던 나는 제목만 보고 슬쩍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는
“이상하다. 정말 그런 건가?”
하며 슬그머니 책을 갖고 나가더니 꼼짝않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아, 이제 알았다. 윤주라는 아이가 전학을 왔는데 다시 전학을 갔어. 재밌다. 엄마도 읽어 봐.”
지금껏 그림책이 아닌 창작동화를 처음부터 혼자서 읽고 재미있다고 한 건 처음이다. 게다가 엄마한테 추천까지? 그동안 내가 보지 못한 그림책을 하루종일 혼자서 보고도 이렇게 엄마한테 읽어보라고까지 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결국 난 읽으려고 뽑아놓은 다른 몇 권의 책을 제치고 이 책을 꺼내 읽었다.

책은 술술 잘 읽혔다. 딱 저학년 동화답다고나 할까? ‘저학년 동화답다’니 말이 좀 어색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다. 저학년인 1-2학년 아이들 수준에 딱 맞는 책이다. 이는 작가가 이 책의 독자가 될 대상 연령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 저학년 아이들의 책읽기 호흡에도 적당하고, 이 책의 주인공인 세원이가 던지는 말이나 행동은 비록 좀 철없어 보이긴 해도 또래 아이들의 말과 행동의 전형이다. 마을에 같은 나이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에 사는 세원이가 같은 나이 친구가 이사왔다는 말을 듣고 확인하는 장면이다.
“정말이야? 나하고 나이 똑같은 애가 이사왔어? 여자야, 남자야?”
아이의 관심이 순서대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아이가 전학올 거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자랑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심리까지.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주인공과 관심있는 소재, 아이들이 읽어내기에 무리가 없는 문장 호흡. 이런 요소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저학년 동화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이의 생활 속에 끼어든 건 세원이네 마을에 이사를 온, 그래서 한 반 친구가 된 윤주다. 윤주는 4월에 전학을 왔다가 7월에 다시 전학을 간다. 3개월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세원이와 지냈을 뿐이다. 하지만 세원이에게 윤주와의 만남은 아주 특별하다. 그건 같은 나이 친구라곤 한 명도 없는 곳에 이사왔던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윤주랑 가까워질 수 있는 하나의 동기였을 뿐이다.
윤주랑 세원이는 나이가 같다는 걸 빼면 별로 공통점은 없다. 세원이는 욕심많고 어리광도 많고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아이다. 잘 때 분명히 엄마 옆에서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언니가 엄마를 끌어안고 자고 자신은 벽쪽에 밀려서 자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서럽고 서러워서 학교에 가서까지 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크게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반면 윤주의 집안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 일단 세원이네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 사정부터가 그렇다. 아빠가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리가 벽돌에 깔리는 바람에 다리를 크게 다쳐서 다른 일을 못 하게 되자 소를 돌봐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낯선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엄마도 아프셔서 어린 동생들까지 돌봐야 하는 처지다. 엄마가 심하게 아플 때마다 집안 일을 챙기도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날도 많다. 엄마랑 자 본 적이 거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혼자서 빈 집을 지키며 지냈던 적도 있다. 겨우 1학년 때! 집 열쇠도 그래서 갖게 됐다. 그래서 집 열쇠에 대한 생각도 서로 너무나 다르다. 세원이는 학원에서 오래 기다리기 싫어서, 집에 일찍 오고 싶어서 열쇠를 달라고 엄마한테 조르는 처지였고 윤주는 빈집에서 혼자서 학교에 오고 가고 잠자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철부지같은 세원이와 어른스러운 윤주와의 관계, 어쩌면 굉장히 교훈적이고 뻔한 이야기처럼 흘러갈 여지가 있는 설정이다. 그런데 뻔할 듯한 이 이야기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원이나 윤주 두 아이의 선명한 캐릭터가 어느 한쪽에 쏠림 없이 이야기에서 똑같은 몫을 해내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세원이가 윤주의 영향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뻔한 결말을 선보이면서도 아주 자연스럽다. 이는 작가가 이야기의 중심 흐름을 두 아이가 자연스럽게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정이란 어느 한쪽이 일방으로 다가간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엔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더라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을 때 가능하다. 여기서는 친구가 필요했던 상황, 엄마 옆에서 잔다는 것, 열쇠를 갖는다는 것 등이 소통의 공통 분모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같은 나이 친구를 원했던 세원이는 젖소 똥오줌으로 질척거리는 길을 마다 않고 윤주를 찾아갔고, 늘 엄마 병 간호와 동생들 뒤치닥거리에 바빠 친구랑 놀 수 없던 윤주와 세원이는 친구가 됐다.
엄마 옆에서 잔다는 것, 열쇠를 갖는다는 것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엔 두 아이를 소통하게 해 주는 것들이다. 이런 우정에서라면 세원이가 윤주에게 영향을 받아 바뀌어나가는 모습도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별명 짓기 시간의 모습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한창 서로 별명을 부르며 싸우기도 하는 게 이 시기다. 이 책에서도 별명 짓기 시간을 갖는데, 재미있는 건 누가 장난스럽게 별명을 붙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갖고 싶은 별명을 말하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별명이라는 관심을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면서도 윤주의 감춰진 모습을 보게 해주는 의미있는 장면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전학 간 윤주 전학 온 윤주』다. 윤주가 전학을 왔다가 다시 전학을 간 이야기니 순서를 따지자면 뒤바뀐 제목이다. 하지만 다시 혼자가 된 세원이 입장에서는 맞는 제목이다. 윤주는 전학을 갔지만 세원이 마음 속에는 전학을 왔던 윤주가 남아있으니 말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192호(2007년 1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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