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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플로라의 비밀

by 오른발왼발 202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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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원이 오진원 책을 말하다

《플로라의 비밀》(오진원 글/박해남 그림/문학과지성사/2007년)

 

오진원.
이 책에 관심이 간 건 순전히 작가 이름 때문이었다. 내 이름이나 성이 결코 흔하지는 않았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성과 이름이 모두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그리 넓지만은 않다고 여겨지는 아동문학계에서 말이다. 자연 내가 모르는 척 하려고 해도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닌 작가 오진원은 2006년 『꼰꼴라베』로 대상창작기금을 받으며 등단했고, 2007년에는 바로 이 책으로 문예진흥기금을 수혜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덕분에 나는 “그 동안 동화 쓰셨어요?” “선생님이 이번에 문예진흥기금 수혜받은 오진원 맞지요?” 하는 질문을 꽤나 받았다. 그러니 관심을 안 갖을래야 안 갖을 수가 없었다.
1981년 생. 지금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 그리고 이 책은 스물넷에 처음 써 본 동화라고 한다. 이토록 젊은 나이에 동화에 관심을 갖고 쓰게 됐는지 궁금해진다. 지금 당장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들을 계속 본다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참 반가웠다. 나와 이름이 같아서가 아니라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그 작품이 대단히 매력적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조금은 낯선 그러나 사람을 잡아끄는 이야기
처음 이 책을 볼 때의 느낌은 낯설음, 그 자체였다. 파피시, 플로라니 하는 말들이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이 우리 창작이라 생각하고 집어든 나로서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또 우주라는 공간 배경 때문인지 영화 스타워즈나 비슷한 영화를 연상케 했다. 플로라의 생성이나 플로라의 고리들의 역할은 우주 자체에 대한 신비와 더해져 더욱더 신비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게다가 처음부터 등장하는 여러 의미심장한 말들은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추상적인 말들을 내세우며 뭔가 너무 뭔가를 주제만 앞세우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낯설어서 ‘어? 이거 뭐야!’ 하면서도, ‘이거 너무 어려운 거 아냐?’ 하면서도 책을 결코 놓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 모든 요소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건 이야기를 시작하는 ‘제1장’이다.  ‘그 날을 기억하라’는 소제목이 붙은 제1장은 이 책의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이 책의 주제나 다름없다. 따라서 첫 시작을 이 책의 주제와 직접 관련있는 플로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담대함을 보여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이는 누군지는 몰라도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여러 아이들에게 야단을 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 때문이다. 비록 무슨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거창한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쉽게 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그 내용이 파피시에 살고 있는 여섯 종족과 파피시에서 추방된 안싼 종족, 그리고 안싼 종족이 사람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어 그 두려움으로 플로라의 고리가 끊어지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는 결론까지 이어지다 보면 자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쯤되면 이 1장이 이 책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한다. 다소 낯선 배경의 환타지를 펼쳐나가기 위해 처음부터 상황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소의 낯설음은 오히려 득이 되기도 한다. 낯설음은 오히려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다.

이어지는 사건, 그리고 비밀
1장에서 상황을 분명하게 밝힌 만큼 다음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마로, 코코, 로링. 파피시를 구할 세 명의 아이들의 모습을 흘깃 그리고 나면 바로 사건이 정신없이 벌어진다. 마로는 열세 번째 생일날 리티토 종족의 대표인 엘리윈으로부터 파피시의 숨결을 담고 있는 새 리쉬를 받고 심상치 않은 예언을 듣는다. 그리고 푸르니에 할머니한테 돌아와서는 자신처럼 열세 번째 생일을 맞은 코코와 로링과 함께 정오가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함을 듣는다. 리티토 종족의 세 명의 아이가 페페르온(열세 번째 생일을 맞은 작은 어른)이 되는 날 안싼 종족이 리티토 종족을 공격해 오게 되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마로, 코코, 로링은 안싼족의 공격을 받아 재가 되고 있는 마을을 뒤로 한 채 푸르니에 할머니가 일러준대로 멜네스프로 공원 물의 언덕에 있는 진리의 여신상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리의 여신의 중재로 육체를 잃어버린 안싼족의 대표인 샤틴과 약속을 한다. 백일 안에 이들에게 줄 육체를 가지고 오기로.
처음부터 비밀스럽게 다음 장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긴 했지만 여기서도 결정적인 비밀이 등장한다. 다만 너무나 비밀스럽기 때문에 ‘왜?’라는 의문을 계속 갖게 하고 어느 정도 읽고 나면 살짝 짐작도 가기에 조금 덜 비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마지막에 확실히 확인을 할 때까지 이야기를 이끄는 힘이기도 하다.

우리 내면의 이야기
이 책을 보며 깨닫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책을 겉에서 볼 때 느끼는 낯설음과는 달리 사실은 우리 내면을 성찰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파피시의 여섯 종족인 리티토(열정), 레스(중립), 미마랑(따뜻한 성품), 쇼포큐링(냉철한 판단력), 텐투(긍정), 아카파(미래 부정적 일들을 계산)는 결국 우리 안의 모습이다. 파피시를 파괴하려는 안싼(지혜)족 역시 마찬가지다. 파피시의 불빛을 고루 나눌 수 있을 땐 참다운 지혜였지만 자신의 세계에만 만족하고 다른 모습을 부정할 땐 결국 스스로도 파멸하고 만다.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지만 건망증 때문에 일행을 종종 위기에 몰아넣기도 하는 코코, 특별히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거라고만 여겼던 주인공 마로, 푸르니에 할머니처럼 예언자로서 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을 지녔던 로링. 이 셋의 페페르온은 모험을 통해 스스로를 극복해 나간다. 모든 게 다 예정되어 있는 듯 보여서 조금은 갑갑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예정된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결국 개인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세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물론 얼마만큼이나 스스로의 내면을 찾을 수 있는가는 자신의 열정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사실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들여다 보는 건 두려운 일이고, 작가의 말처럼 열정이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힘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198호(2007년 4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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