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
《내 생각은 누가 해줘?》(임사라 글/양정아 그림/비룡소/2006년)
이혼이란 단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비록 ‘네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한다는 통계가 발표된 뒤 이 통계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혼이 그만큼 아주 흔한 일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이란 사회의 흐름보다는 늘 몇 박자는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요즘에는 재혼 전문 결혼 회사라는 게 생길 만큼 예전처럼 이혼이나 재혼을 감추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대부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지만 실제로는 무슨 일만 생기면 문제로 대두되곤 하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는 결혼의 실패를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실패라고 여기는 혈연 중심의 사고도 한몫을 한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레 이혼에 대한 이중적 사고로 나타나곤 한다. 이혼을 짐짓 허용하는 듯하면서도 “이혼하면 애만 불쌍하지” 하는 말은 이런 이중적 사고의 대표일 듯싶다. 이혼이 아이에게 대단히 큰 충격인 건 맞다. 하지만 부모가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더 불행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오랜 마음고생 끝에 이혼을 한 당사자도 이런 현실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경우가 생긴다. 주변의 편견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아이가 피해를 입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나래 엄마처럼 말이다.
나래 엄마는 대학 교수에 방송에도 잘 나오는, 이른바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위치에 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듯 싶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혼만은 숨기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나래랑 엄마 둘이 생활하는 게 불행하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엄마는 이혼했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자 바로 먼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나래를 전학시킬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철두철미하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만 좀 지나치다 싶기도 하다. 아마도 지금까지 결혼 말고는 실패해 본 적이 없는, 모든 게 완벽했던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큰 건 아닐까 싶다. 겉으로는 나래가 ‘아빠 없는 아이’ 취급을 받지 않게 해주겠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은 주위의 편견(엄마 자신도 갖고 있을)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길이었을 터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나래지만 엄마의 위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엄마의 태도가 어떻게 변하느냐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나래가 화자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나래 자신은 엄마의 이혼 문제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나래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랑 둘이서만 지내왔기 때문에 이런 생활이 자연스럽다. 또 소심한 엄마와는 성격도 다르고, 무엇보다 중년의 엄마와는 가치관이 다르다. 물론 태어나서 단 두 번 보았을 뿐인 오빠나 아빠한테 끌리는 감정까지도 없는 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록 이혼을 하기는 했지만 잘 나가는 엄마와, 이혼한 사실을 쉬쉬하는 엄마를 답답해하는 나래의 모습은 이혼과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기에는 좀 약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나래와 엄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나래 주변에 여러 형태의 가족을 등장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의 의미와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나래가 전학 간 학교에서 처음 사귄 희주는 엄마가 없다. 아빠랑 같이 동물병원에서 버려진 동물들을 보살피던 엄마는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나래의 지갑을 훔치려다 들켰던 나리는 아빠가 있기는 하지만 같이 살지 못한다. 아빠가 친구 보증을 섰다가 집안이 쫄딱 망한 후 집에서 나가 노숙자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나래 아빠는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어릴 적 소꿉친구와 결혼해서 딸 봄이를 낳는다. 집집마다 사연도 많다.
아이들 사정 또한 비슷하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희주는 학교에서 ‘내시’라 불리며 왕따를 당하고 있다. 나리는 ‘시장통 아이’ ‘도둑’이라는 편견과 함께 선생님으로부터 ‘빨간 신호등에도 마구 달리는 폭주족 같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한다. 또 나래 아빠의 딸 봄이는 뇌성마비로 태어났다. 겉으로 보기엔 조금 걱정스러워 보이지만 오히려 작가는 이들을 통해 희망을 보여준다. 희주는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나리는 억척스럽게 엄마 일을 돕고 동생들을 챙기는 등 삶에 대해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봄이는 몸은 불편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잘 따라서 웃음을 주고 또 그림도 잘 그린다.
이런 희망적인 모습은 희주, 나리, 봄이가 사실 보통의 가족들 사이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준다. 결국 아이 ‘집안’에 대한 편견이 아이를 더욱 불안해 보이게 했던 것이다. 때문에 상대방이나 나나 결국엔 같은 처지라는 걸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런 편견은 단숨에 떨쳐버릴 수 있게 된다.
철저하게 이혼을 숨기려 했던 나래 엄마가 희주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면서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딸 이름을 황금빛나래라고 지을 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나래 엄마는 전문직이라는 틀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희주네를 통해 동병상련을 느끼는 순간 그 틀을 허물고 나온다.
반면 나래로서는 엄마의 이런 모습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희주에 대한 짝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휘주랑 남매지간이 되어버린다는 것도 당황스럽지만 친아빠하고는 하루도 못 살아보고 새아빠랑 살게 된다는 게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나래의 마음은 아빠와 그 가족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자연스럽게 풀어진다. 그리고 꼭 같은 집에 살아야만 아빠하고 딸인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마지막에 엄마가 희주랑 희주 아빠랑 함께 나래를 데리러 나래 아빠 집으로 왔을 때의 장면은 인상적이다. 어느 순간 세 가족은 서로 얽혀서 하나의 커다란 가족의 틀을 만들게 된다. 나래를 중심으로 아빠네 가족하고는 아빠를 공유하고, 희주네하고는 한 가족으로 태어난다. 어느 한쪽도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이혼과 재혼이라는 걸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다. 그럼에도 가볍고 경쾌한 문장과 독자로 하여금 진지하게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구성 덕에 부담감이 없다. 다소 낭만적인 결말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나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대한 대안과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이만하면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182호(2006년 8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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