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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기타

[어린이 시 모음]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by 오른발왼발 202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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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마음 그대로, 아이들 삶 그대로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사북초등학교 64명 어린이 시/임길택 엮음/김환영 그림/보리/2006년)

 

 

“너도 학교에 가면 이제 모두 끝이겠구나. 제도에 길들여질테니 말이야.”
올해 초, 아이가 입학할 무렵 주위의 몇몇 분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이 말을 가볍게 듣고 지나가지 못하고 있는 건 이 말 속에 우리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달라질 거라는, 달라지게 만들거라는 희망을 내심 품고 있지만 한편으론 우리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 10월이니 아이도 1학년 생활을 어지간히 한 셈이다. 아이는 어느새 학교 생활에 지나치게(!) 적응을 잘 해내고 있다. 내딴에는 아이가 학교 생활에 매달리지 않게 한다고 했는데, 또 다행히 담임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잘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스스로 달라지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독서기록였다. 예전엔 자기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건 엄마에게 자기 느낌을 이야기해주고 했었는데, 숙제로 해 가는 독서기록은 가장 하기 편한 책을 골라내고 단답형으로 끝내려는 태도가 확연해진다. 처음 이 조짐이 나타났을 땐 독서기록 숙제를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는데, 아이들이 독서상을 받는 걸 보고는 다시 독서기록에 열심이다. 여전히 자기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일기 쓰기다. 학교에 가서 처음 써보는 일기인지라 처음에는 마치 하루 있었던 일과를 순서대로 일지처럼 적어놓더니 요즘엔 좀 나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 스스로 일기에 써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슬픈 마음, 기분 나쁜 일은 일기에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기를 솔직하게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드러내도 좋을 것과 그렇지 않은 걸 가리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결국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솔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또 있다. 학교에서 동시를 써오라고 했다기에 무심코 “너 동시가 뭔지 알아?” 하고 묻자 아이는 자신있게 이렇게 대답했다. “응. 글을 쓸 때 꾸미는 말을 써서 쓰는 거야.”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을 봤다.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 두 권이 주는 의미는 더욱 컸다.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와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임길택 선생님이 가르쳤던 아이들의 시 모음집이다. 두 권 모두 1980년대 초, 탄광마을과 산골마을이 배경이지만 결코 낯설지만은 않다. 시를 꾸미지 않고 정직하게 썼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 한편 한편을 읽을 때마다 그 시를 쓴 아이의 처지와 마음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인다.
‘시’하면 꾸밈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배우고, 그렇게 쓰는 아이들. 그래서 결국 시라는 게 쓰기도 어렵고 감상하는 것도 어렵다고 여기는 아이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시’라는 건 예쁘게 꾸며놓은 장식품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더불어 어른들과도 함께 보고 싶다. 요즘 아이들이 ‘시’를 이렇게 알고 있는 건, 지금 어른들 역시도 어린 시절 시를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시란 자신이 보고 느낀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뭔가 특별한 표현 방식이 있고, 내용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현실을 벗어난 어떤 세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교과서 때문에 시를 잘못 이해하고 어려워만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러니 어쩌면 ‘시란 어려운 게 아니라 이렇게 솔직하게 너희들 사는 모습과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거란다’ 하며 이 책을 아이들에게 권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싶어진다.

이 두 가지 책 모두 좋지만 그래도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가 좀더 눈길을 끈다. 사실 그동안 산골 아이들의 시는 꽤 찾아볼 수 있었지만 탄광마을 아이들의 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탄광은 근대화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많은 설움과 사연이 담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곳이 다른 곳도 아닌 사북이라는 사실은 더욱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1963년 문을 연 뒤 국내 최대의 민영 탄광으로 자리잡았던 곳, 1980년 4월 사북사태가 휩쓸고 간 곳. 비록 지금은 사라졌지만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시가 쓰여진 시기는 1980년부터 1982년. 사북사태 직후다. 이 시기는 고 임길택 선생님이 아이들과 글쓰기를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 속에 사북사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모든 것을 통제 당하던 당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대신 1980년대 사북에 살던 아이들의 모습, 그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만은 아주 또렷하다. 아이들의 정직한 시 한편 한편이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는 당시 사북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탄광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시들만 있는 건 아니다. 비록 탄광마을의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많은 작품에서 아이들의 설움과 한숨이 묻어나지만, 지금 도시의 아이들이라도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만한 아이들만의 세계도 볼 수 있다.
아이들 시 모음집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누가 뭐래도 직접 아이들 시를 읽어보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당시 광부들의 생활을 잘 보여주는 정말 짧은 시「아버지 월급」, 탄광마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광부」, 두 편의 시를 함께 읽어보고 싶다.

아버지 월급(6학년 정재욱)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아버지 월급 쓸 것도 없네.


광부(5학년 윤중원)

우리 이모부가
일하고 오는 걸
보았다.
얼굴은 검은 얼굴
옷도 검은 옷
내가 인사를 하니
대답 검은 대답 같았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186호(2006년 10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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