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허어 김을 토하며 감자 먹던 기억
《감자를 먹으며》(이오덕 글/신가영 그림/낮은산)
나에게 이오덕 선생님은 늘 꼬장꼬장하고 무섭게만 느껴지던 분이었다. 몇 번인가 만나 뵙긴 했지만 조심스러워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늘 바른말만 하시고, 당신이 생각한 그 방향 말고는 모르고 외곬으로 사시는 선생님 모습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때론 답답함을 느꼈고 또 때론 괜한 반항심이 일기도 했다.
이 책은 이오덕 선생님의 동시집이다. 아니, 동시집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책은 단 한 편의 동시가 실려 있을 뿐이다. 동시 한 편으로 만든 책, 예전에 이런 책을 본 일이 있었던가? 얼른 떠오르는 책이 롱펠로우의 서사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히어와서의 노래》(보림)다. 좋은 시 한편은 훌륭한 노래며 이야기만 되는 게 아니라 한 권의 멋진 책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던 책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책 앞머리에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글이 눈에 띈다.
"이 그림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자 냄새가 난다."
정말 맞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자 냄새가 나는 그림책이다. 감자를 먹으며 자라서 감자를 먹고 살아가는 산골 아이들을 가르치고, 감자를 먹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온 선생님의 일생이 담긴 동시가 그렇고 흙 냄새와 감자 냄새가 금방이라도 풍길 듯한 분위기를 살려 목탄으로 그려낸 그림이 그렇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마치 1주기를 맞는 선생님의 추모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선생님의 일생을 담은 글도 그렇지만 감정의 선을 따라가며 그려낸 그림은 어느 새 이 책을 읽는 사람을 이오덕 선생님의 삶 속으로 잡아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알던 꼬장꼬장한 그 모습만은 아니다.
나는 그 감자를 받아먹으면서
더러 방바닥이나 마당에 떨어뜨리고는
울상이 되기도 했을 것인데
그런 생각은 안 나고
일찍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얼굴도 안 떠오르고
후우 후우 불다가 뜨거운 감자를 입에 한가득
넣고는 하아 허어 김을 토하던 생각만 난다.
이미 70년이 지난 일이지만 일찍이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도 안 떠오르고 감자 먹던 생각만 난다는 고백을 들으며 선생님의 솔직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고무신으로 냇물을 떠다가 파 놓은 옆구리에 부으면
쿵쿵쿵 따닥따닥 쿵쿵 따닥…… 천둥 터지는 소리!
뜨거운 김이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오는 김과 함께
모래쑥 냄새 감자 익는 냄새……
마치 감자묻이 놀이를 하고 있는 곳에 와 있는 듯 생생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감자란 단순히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힘만 주는 게 아니었다. 한편으론 신나는 놀이였다.
책을 보고 나니 선생님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당신의 일생을 조곤조곤 말씀해주시는 모습과 함께 직접 달아 놓으신 설명글은 '역시 이오덕 선생님!'이란 감탄이 나오게끔 한다.
"이오덕 선생님! 하느님과 같이 먹는 뜨끈뜨끈한 감자도 이곳에서 드시던 그 감자 맛 그대로인가요?"
책을 덮으며, 문득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 이 글은 2004년 7월 20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격주간지《기획회의》 1호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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